화성연쇄살인사건 당시 취재기자와 경찰 인터뷰
화성연쇄살인사건 당시 취재기자와 경찰 인터뷰
  • 김혜선 기자
  • 승인 2019.09.19 1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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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화성 연쇄살인 사건 용의자가 특정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그놈이 맞을까?’라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당시 사건 용의자로 수천 명이 지목됐는데 다 아니었으니까요”

화성 연쇄살인 사건 범인 몽타주. (사진=뉴시스)
화성 연쇄살인 사건 범인 몽타주. (사진=뉴시스)

<뉴스포스트>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부녀자 10여명을 끔찍하게 살해해 전 국민적 공분을 산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특정됐다는 소식에 당시 2년여 동안 사건현장을 누비며 취재했던 사회부 기자였던 A 씨를 만나 당시 상황에 대해 물었다. A 씨는 시신 부패가 심했던 앞선 화성 사건들과는 달리 사건발생 다음날 곧바로 발견돼서 범행현장과 시신이 온전히 보존된 9차와 10차 사건의 현장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취재했었다. 경찰이 지목한 용의자는 청주 처제 강간·살인 사건으로 수감 중인 이모씨(56)로, 5차와 7차, 9차 피해자의 유품에서 나온 DNA와 이씨의 것이 같았다.

화성 사건 용의자 특정 소식에 A 씨는 “30여년 동안 기자생활을 하면서 트라우마로 남아 항상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사건었다. 용의자가 나타났다니 얼떨떨하다”고 했다. 33년의 세월에도 그는 당시 사건 현장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9차 사건은 그다지 인적이 드물지 않은 당시 화성군 병점의 석재공장 뒷쪽 오솔길 옆 밭으로 일궈 놓은 풀숲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사람 키를 조금 넘는 소나무 밑에 손발이 묶인 채 교복에 덮여 누워 있던 중학생 당시 13살 김모 양의 시신을 보자 “범인이 사람이라면 어린 애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경악스러웠다”고 회상했다. "범인은 피해자의 필통 속에 있던 면도칼과 스타킹, 속옷 등 모두 피해자의 소지품을 범행도구로 사용했다"고 증언했다.

“모골이 송연했어요. 인간이 한 범행이라고 느꺼지지 않았어요. 어떤 악령이 저지른 사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싹했어요. 사체를 그렇게 훼손하고…도저히 사람이 할 수 있는 범행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어떻게든 잡아야 한다’는게 당시 모든 경찰과 기자들의 생각이었을 겁니다. 그 당시 경찰이 특정하지 않은 용의자는 기자와 경찰 밖에 없었죠. 그래서 범인은 기자나 경찰 중에 있는 것 아니냐는 말들까지 나돌았어요”

10차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사건이 발생한 장소는 화성군 동탄면 마을 입구 대로변에서 불과 수십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다. A씨는 “피해자인 권모 할머니(69)가 발견된 곳은 소나무 사이로 2 ~ 3년생 아카시아 나무들이 많은 약간 비탈진 곳에 사방이 채 2미터도 안되는 파묘한자리였다"고 했다. 그는 "대로변에서 가까워 인기척이 나면 행인들에게 들킬 위험이 크고 주변 지형도 울퉁불퉁한데 유일하게 잡목들 사이에 있는 좁은 공터를 범행장소로 택한 것은 사전에 치밀하게 범행계획을 세운 다음 범행장소를 미리 물색해 놓고 기다리다가 대담하게 사건을 저지른 것으로 보였다"고 회상했다. 피해자의 몸 속에서 피해자가 신고 있던 덧버선이 발견되는 등 전형적인 '화성부녀자연쇄살인사건' 범행 수법과 동일했다. 그 범행 수법의 잔혹함을 보면서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는 현실에 A씨는 참담함을 느꼈다고 했다. A씨는 "화성부녀자연쇄살인사건은 안개가 낀 날 주로 발생했기 때문에 수사관과 검찰, 기자들은 안개 낀 날이면 항상 긴장감이 더욱 고조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 피해자. (그래픽=뉴시스)
화성 연쇄살인 사건 피해자. (그래픽=뉴시스)

‘경찰의 숙원’으로 남았던 사건의 용의자가 특정됐다는 소식에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경찰들도 감격에 눈물을 흘렸다. 화성 연쇄살인사건 8차 수사에 참여했던 김복준 현 한국범죄학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간밤에는 거의 뜬 눈으로 지새웠다. 33년만에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가 확인되어 경기남부청 미제사건수사팀에서 수사중임이 밝혀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연구위원은 “어제 소식을 접하고 바로 이 사건의 현장 책임자였던 전 경기청 강력계장 하승균 총경님과 통화했다. (하 총경이) 감격에 겨워 울먹이고 있었고 둘이서 전화기를 잡고 한참 울었다”고 전했다.

당시 사건 현장에 투입되지는 않았지만 화성 사건을 계기로 국내 1호 프로파일러의 길을 걷기 시작한 권일용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도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번 사건을 “과학이 발전하면서 당연히 해결됐어야 한 문제였다”고 평가했다.

권 교수는 프로파일링 기법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지난 2000년 화성 사건을 들여다봤다고 했다. 그는 “예전에는 한국뿐 아니고 미국이나 일본도 DNA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던 시기였다”며 “예전에 비하면 DNA 기술은 완전히 달라졌다고 봐도 된다. 이번에 용의자가 밝혀진 것은 DNA 자료를 현대 방식으로 증폭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기수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장(경기남부청 2부장)이 19일 오전 경기 수원시 장안구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화성 연쇄살인 사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반기수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장(경기남부청 2부장)이 19일 오전 경기 수원시 장안구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화성 연쇄살인 사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용의자 특정에 대한 소감을 묻자 권 교수는 “화성 사건은 당시 투입됐던 경찰 모두가 검거를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던 사례였다. 늦은 감이 있지만, 경찰이 끝까지 노력해 범인을 검거해 굉장히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공소시효가 완료돼 법적인 처벌을 받지는 못하지만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을 위해서라도 (범인의) 실체가 밝혀진 것은 상당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권 교수는 해당 용의자가 ‘죄책감’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지금도 경찰 발표에 의하면 (용의자가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공소시효가 다 끝났는데도 부인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은 무의미한 일인데 그만큼 범인은 이 사건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공소시효가 끝나던 말던 ‘나는 아니다’라고 부인하는 파렴치한 행동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소시효 만료가 사라져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당연하다. 당연히 살인이나 아동성범죄 장애인 성범죄는 공소시효를 만들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한편,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지난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총 10명의 부녀자가 살해된 국내 최장 미제 사건으로 지난 2003년에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재구성돼 국민적 관심이 많은 사건이었다. 당시 범인은 저녁 시간에 돌아다니는 여성들을 상대로 인적이 드문 곳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특히 범인은 자신의 흉기를 사용하지 않고 피해자들의 소지품 등으로 시신을 훼손하는 등 엽기적인 행각을 벌이는 특징을 보였다.

경찰은 3천여 명의 남성을 용의선상에 올리고 연 인원 205만여 명의 경찰병력을 투입하는 등 범인 검거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은 끝까지 잡히지 않고 지난 2006년 4월을 기점으로 모든 공소시효가 완료된 바 있다.

현재 용의자로 특정된 이 씨는 부산 교도소에 수감 중이며, 자신과 관련한 뉴스를 접하고도 담담하게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부산 교도소에서 수감된 후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1급 모범수’로 살고 있다고 한다.

이 씨는 화성 연쇄 살인 사건 10건 가운데 5차(1987년 1월), 7차(1988년 9월), 9차(1990년 11월) 등 3건에서 나온 DNA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씨는 1차 경찰 조사에서 모든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혜선 기자 hyeseonkim9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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