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판이었다. 1987년 봄의 4·13호헌조치는 무지로 인한 무모한 결단이었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린 제5공화국 헌법의 수호자는 그해 시월 새 헌법을 공포해야 했다. 1987년 공포된 헌법은 제32조 1항에 대한민국 헌정사 최초로 ‘최저임금제 시행’을 명문화했다. 근로자의 고용 증진과 적정임금 보장에 대한 국민적 열망과 시대정신을 담은 것이다.

범인은 정치일까, 경제일까, 사회문화적 계층에 따른 관점의 차이일까. 87년 시대정신이었던 최저임금제가 지금은 동네북이 됐다. 보수와 진보, 사용자와 근로자, 중장년과 청년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저마다 다른 이유로 최저임금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최저임금제라는 난제는 몇 차 방정식인지 모를 정도로 수많은 변수들을 씨줄과 날줄로 엮은 모양새다.

<뉴스포스트>는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의 삶을 통해 최저임금제가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지 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살펴보고 우리 사회가 최저임금제라는 헌법 정신을 계승하는 합리적인 방안을 5회에 걸쳐 모색해보고자 한다. - 편집자 주 

(그래픽=김혜선 기자)
(그래픽=김혜선 기자)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헌법이 명문화한 최저임금제는 국가가 근로자와 사용자의 임금 결정과정에 개입해 최저 수준의 임금을 결정하고 보장하는 것이 골자다. 헌법 32조 1항은 근로의 권리를 천명하는 동시에 국가가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을 증진하고 적정임금을 보장하는 데 노력해야 하며, 최저임금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에 명시된 최저임금제 시행에 대한 구체적인 각론은 ‘최저임금법’에 따른다. 87년 헌법에 최저임금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최저임금법이 있었다. 86년 제정, 공포된 최저임금법은 88년 1월 1일부터 실시됐다.

최저임금법 제1조는 “이 법은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해 최저임금법의 가장 시급한 목적이 근로자의 생활 안정임을 명백히 밝혔다.

▲ 최저임금액 변천사, 1991년 가장 많이 올라

지난 2017년 1,060원에 대한민국이 들썩였다. 2017년 6,470원이었던 최저시급이 2018년 7,530원으로 오른 것이다. 금액으로는 1,060원이었고 인상률로는 16.4%였다. 지난 2001년 이후 가장 높은 인상률이었다.

주요 대기업들은 협력업체가 부담할 최저임금으로 인한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대기업이 협력업체의 납품단가를 높여 부담을 줄여주고 상생해야 할지, 아니면 납품단가를 유지해 경영 리스크를 줄여야 할지 고심한다는 뒷말이 무성했다.

지방의회는 앞다퉈 결의안을 채택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농가들의 어려움을 헤아려 달라는 호소문 성격의 결의안이었다. 농업을 영위하기 위해 수십만에 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건비를 부담하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의 대척점에서 야당의 선택지는 하나로 보였다. 야당은 최저임금에 숙식비 등을 산입해야 한다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의하느라 아우성이었다. 경제지를 중심으로 최저임금 상승이 내수를 죽이고 인건비 부담을 가중해 실업률이 상승할 것이란 언론 보도가 연일 쏟아졌다.

(그래픽=이상진 기자)
(그래픽=이상진 기자)

사실 최저시급은 문재인 대통령 재임 기간인 2017년에 가장 많이 오른 것은 아니다. 16.4%는 역대 최저시급 인상률에서 세 번째로 높다. 수치로 보면 최저임금이 가장 많이 오른 해는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이었던 1991년이었다. 91년 당시 최저시급은 90년 690원에서 91년 820원으로 올랐다. 인상률로는 18.8%였다. 물론 18.8%라는 파격적인 인상 과정은 쉽지 않았다. 경제성장률이 좋아서 사용자가 스스로 ‘수고했어, 오늘도’라며 근로자의 최저시급을 올려준 것이 아니었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촌극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91년 최저시급 인상안 결정은 사용자위원 전원이 퇴장한 가운데 이뤄졌다. 근로자위원 9명과 공익위원 8명 등 17명만이 참석해 통과시켰다.

사용자 측은 애초 8.7% 인상안을 주장했고, 근로자 측은 26.8% 인상안을 내놓은 가운데 논쟁이 격화됐고, 결국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통과된 것이다. 18.8% 인상된 최저시급이 적용된 1991년 각 지역 전체 근로자들 가운데 6.5% 정도가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을 받는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두 번째로 높은 최저시급이 결정된 해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이었다. 당시 사용자 측은 8.8% 인상안을, 근로자 측은 48.4% 인상안을 주장했다. 양측의 액수 차이가 커 협상에 난항이 예상됐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일하는 최저시급보다 공공근로사업 등 국가 주도의 시간당 임금수준이 높다면 ‘복지병’이 유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저시급을 공공근로사업 수준에 맞춰 근로자가 일을 하도록 유인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해 유월 OECD가 연례 고용전망 보고서에서 정부가 복지 혜택보다 일을 하는 것이 수지가 맞는다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확산시키기 위해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인용한 것이다.

결국 2000년 최저시급은 1991년 최저시급 결정 당시 겪었던 파행 없이 7월 21일 전원회의를 통해 심의 의결됐다. 또 당시 전원회의를 통해 노사는 상시근로자 5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됐던 최저임금이 2000년 9월부터 4인 이하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하는 데까지 합의했다.  

▲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원회서 결정

최저임금법 제8조 1항은 최저임금의 심의와 결정을 고용노동부 산하 ‘최저임금위원회’에서 하도록 정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매년 8월 5일까지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하는데, 이때 최저임금법에 따라 설치된 최저임금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률은 고용노동부 장관이 임의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모두 27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근로자를 대표하는 ‘근로자위원’ 9명 △사용자를 대표하는 ‘사용자위원’ 9명 △공익을 대표하는 ‘공익위원’ 9명 등이다. 위원의 임기는 3년이고 연임 가능하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재적위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된 최저임금안을 결정해야 한다. 만약 고용노동부 장관이 제출된 최저임금안에 따라 최저임금을 결정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하면 위원회에 재심의를 요청할 수 있다.

이때 위원회는 재심의를 해 다른 최저임금안을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위원회가 재심의에서 재적위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위원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 기존의 최저임금안을 재의결하면 고용노동부 장관은 기존 최저임금안에 따라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한다.

김상조 정책실장이 지난 7월 1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최저임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김 정책실장은 브리핑을 통해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3년 내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해 매우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사진=뉴시스)
김상조 정책실장이 지난 7월 1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최저임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김 정책실장은 브리핑을 통해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3년 내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해 매우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사진=뉴시스)

▲ 정치 이슈로 본질 잃은 최저임금제...文정부 ‘3년 내 1만 원 공약’ 달성 못해

최저임금위원회에 따르면 최저임금제 실시로 다양한 긍정적인 효과들이 창출됐다. 위원회는 이를 △저임금 해소로 임금격차가 완화 △소득분배 개선 △근로자의 생활 안정 △근로자의 사기 진작으로 노동생산성 향상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경쟁 방식을 지양 △적정한 임금을 지급해 공정한 경쟁 촉진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반면 최저임금으로 상승으로 인한 부작용에 대한 지적도 적지 않다. 최저임금 상승과 관련된 비판적인 지적은 △최저임금 상승으로 비정규직 증가 △노동시간 감소로 인한 월평균 급여 하락 △자영업자 폐업 비율 상승 △청년층 고용유지 감소 △여성과 청년층 등 특정 집단 고용 하락 등이 대표적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갈등은 도입 초기부터 있었다.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 임금 수준을 두고 이견이 있는 것이 당연한 까닭이었다. 문제는 최근 최저임금 이슈가 정치적으로 소비된다는 데 있다.

헌법과 최저임금법은 최저임금을 근로자의 고용을 촉진하고 적정임금을 보장해 근로자의 생활 안정을 꾀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최저임금은 근로자가 최소한 먹고사는 문제지만, 지난 2017년 탄핵 대선 정국에서 여야 후보들이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대표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정치 이슈로 부각됐다.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 모두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인상할 것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안철수 후보가 인상 시기를 5년으로 말한 데 비해 나머지 후보들은 3년으로 한정한 것만 차이점이었다.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1만 원으로 올리려면 2017년 기준으로 매년 15%~16% 정도를 인상해야 했다.

문재인 후보가 당선돼 대통령에 취임하고 두 달 뒤 최저임금위원회는 2018년 최저임금 인상액을 16.4%로 심의 의결했다. 하지만 2019년 최저임금 인상액은 10.9%로 떨어졌고, 2020년 최저임금은 2.9% 상승하는 데 그쳤다. 지난 2001년부터 2019년 평균 최저임금 인상률인 8.7%의 삼분의 일 수준이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은 3년 이내에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이라는 대선공약을 지키는 데 실패했다. 공약과 달리 해마다 떨어지는 인상률에 경제와 경영 일선의 애로사항을 헤아리지 못한 무리한 정책을 추진한 방증이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최저임금 상승이 오히려 저임금 근로자들의 소득을 줄이고 있다는 자료도 발표됐다. 2018년 5월 통계청이 발표한 1분기 가계동향조사 소득부문 조사에서 최저임금이 16.4% 인상됐지만 소득 하위 20%의 가계 명목소득이 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상위 20%의 소득은 9.3% 증가했다. 같은 해 8월에 통계청의 2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 중산층에 속하는 3분위 소득도 감소했다. 통계청의 발표 3일 뒤 황수경 통계청장은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사진=뉴스포스트DB)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물건 진열을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 생의 모습. (사진=뉴스포스트DB)

▲ 정작 소외된 소상공인·일용직·아르바이트 생활전선

<뉴스포스트>는 최저임금을 주제로 한 이번 ‘광장’에서 정치 진영과 경제 이념을 떠난 각계각층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현장의 소리를 독자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본지는 소상공인들의 생활 전선을 찾아 그들의 하루를 가감 없이 전할 계획이다. 또 일용직과 아르바이트 등 최저임금에 영향을 받는 일에 종사하는 이들을 만나 체감온도를 짚어보고, 전문가들의 제언을 통해 수많은 국민들의 삶을 지탱하는 최저임금제가 진정으로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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