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판이었다. 1987년 봄의 4·13호헌조치는 무지로 인한 무모한 결단이었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린 제5공화국 헌법의 수호자는 그해 시월 새 헌법을 공포해야 했다. 1987년 공포된 헌법은 제32조 1항에 대한민국 헌정사 최초로 ‘최저임금제 시행’을 명문화했다. 근로자의 고용 증진과 적정임금 보장에 대한 국민적 열망과 시대정신을 담은 것이다.

범인은 정치일까, 경제일까, 사회문화적 계층에 따른 관점의 차이일까. 87년 시대정신이었던 최저임금제가 지금은 동네북이 됐다. 보수와 진보, 사용자와 근로자, 중장년과 청년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저마다 다른 이유로 최저임금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최저임금제라는 난제는 몇 차 방정식인지 모를 정도로 수많은 변수들을 씨줄과 날줄로 엮은 모양새다.

<뉴스포스트>는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의 삶을 통해 최저임금제가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지 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살펴보고 우리 사회가 최저임금제라는 헌법 정신을 계승하는 합리적인 방안을 5회에 걸쳐 모색해보고자 한다. - 편집자 주

[뉴스포스트=홍여정, 이상진 기자] “2018~2019, 2년간 지불 능력을 초월한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영세·소상공인을 위시한 모든 기업이 겪고 있는 고통과 경쟁력 하락, 그리고 불안스러운 2020년 경제전망 등 대내외의 복합적 요인을 고려할 때 2020년 적용 최저임금은 동결 이하에서 결정되어야 함이 순리였습니다.” - 한국경영자총협회. 2019.07.12.

오는 2020년 최저임금 인상률이 2.9%로 발표되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위와 같은 공식 입장을 밝혔다. 경총은 2018년과 2019년 최저임금 인상률이 과도해 영세·소상공인 등 모든 기업이 고통을 겪고 있다고 강조했다. 2018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16.4%였고 2019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10.9%였다.

경총은 지난 4월 기준 회원사가 4,317개에 달하는 대한민국 대표 사용자 모임이다. 근로자 1,000인 이상 회원사가 328곳, 300~1,000인 미만 회원사 519곳, 300인 미만 회원사 3,470곳이다.

중소기업중앙회와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도 경총과 함께 지난 7월 9일 “현재의 최저임금은 소상공인, 중소․영세기업 등 많은 기업들의 지불 능력을 초과하는 수준이 되어 결국 영업이익 하락은 물론이고, 고용 축소, 기업 매물 증가, 경쟁력 약화 등 소상공인과 기업의 고통이 심화되고 있다”며 “2020년 적용 최저임금 인상률은 마이너스 기호로 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반면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지난 7월 17일 “7월 12일 새벽, 2020년 적용 최저임금이 240원 인상된 8,590원으로 결정됐다. 이는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였던 IMF 외환위기 때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나 나왔던 매우 낮은 인상률로, 최저임금 참사라 아니할 수 없다”며 “한국노총은 말도 안 되는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안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으며 결정과정에도 심각한 절차적 하자가 있었음을 밝히고자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 거대 사용자·노동자 단체의 충돌 이면에 위치한 실제 영세·소상공인 일터의 풍경은 어떨까. <뉴스포스트>는 지난 2년 동안 예년보다 급격히 인상된 최저임금으로 우리의 생활전선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2곳의 현장을 찾았다.

취재진이 첫 번째로 방문한 프랜차이즈 피자집에 쌓인 피자 상자. (사진=이상진 기자)
취재진이 첫 번째로 방문한 프랜차이즈 피자집에 쌓인 피자 상자. (사진=이상진 기자)

 ▲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사용자·근로자 모두 부담

본지 취재진이 처음 찾은 곳은 광탄하나로마트에 위치한 프랜차이즈 피자집이었다. 사장 1명과 상주직원 1명, 주말 아르바이트 3명을 고용하는 규모로 오전 11시 현장을 방문했을 때는 이상미(58) 점장이 홀로 일하고 있었다.

이상미 점장은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 이후 아르바이트 근로자 수를 줄이지는 않았다고 했다. 업무 특성상 줄일 수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이 점장은 “아르바이트하는 사람에게 오늘은 일이 없다고 하루 오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지 못 한다”며 “하지만 아르바이트가 하루 빠진다고 하면 내가 때우면 되니 솔직히 기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상미 점장은 최저임금 상승이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토로했다. (사진=홍여정 기자)
이상미 점장은 최저임금 상승이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토로했다. (사진=홍여정 기자)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이상미 점장에게 직접 지불하는 아르바이트 급여 외에 다른 부담도 늘렸다. 최저임금이 오르자 본사 프랜차이즈 재료값도 오른 것이다. 이 점장은 “본사에서도 가맹점 걱정을 많이 하는데 인건비가 오르니 어쩔 수 없이 재료값을 올렸다”며 “지금 입주해 있는 하나로마트에서도 최저시급에 따라 직원들 월급을 줘야 하니 수수료를 1% 올려 부담”이라고 덧붙였다.

이 점장에 따르면 매장의 마진은 17~18% 정도다. 금액으로는 월 180~200만 원 정도 남는 셈.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가구원수별 가구당 월평균 가계지출’에 따르면 4인 가족의 월평균 가계지출은 498만 2,488원이었다.

최대 월 200만 원의 수입으로는 4인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에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이상미 점장은 “자녀가 3명이 있는데 사실 남편이 따로 돈을 벌고 있기 때문에 생활비 유지가 가능하다”며 “최저시급 8,350원이 나가다 보면 남는 것은 별로 없다”고 토로했다.

황인자 매니저는 최저임금이 오르는 것은 좋지만 급격한 상승은 일자리를 잃게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홍여정 기자)
황인자 매니저는 최저임금이 오르는 것은 좋지만 급격한 상승은 일자리를 잃게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홍여정 기자)

상주직원인 황인자(58) 매니저는 오후 2시쯤 도착해 업무 준비를 시작했다. 황 매니저는 이곳에서 1년 동안 근무를 해왔다고 했다. 취재진은 그에게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지난 2년 동안 최저임금이 올라 며느리와 손주들에게 용돈이나 선물을 챙겨주고 있다”며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올리는 게 좋지만 돈 주는 입장 생각 않고 나만 챙기자고 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황인자 매니저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터를 잃은 적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황 매니저는 현재의 직장에 근무하기 전 편의점에서 20년을 직원으로 일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해당 편의점은 여전히 장사가 잘 되고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올라, 결국 급여 지급에 부담을 느낀 편의점 점주는 황 씨와 20년 이어온 고용관계를 포기했다.

황인자 매니저는 “최저임금 인상은 조절해서 하지 않으면 일자리가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며 “소상공인은 계절별로 성수기와 비수기가 확실한 경우가 많은데 비수기 때는 스스로 월급을 받기가 미안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 방문한 '넓은 여울 전망대 카페'는 직원 7명을 고용해 카페와 베이커리, 편의점 등을 운영하고 있었다. (사진=이상진 기자)
두 번째로 방문한 '넓은 여울 전망대 카페'는 직원 7명을 고용해 카페와 베이커리, 편의점 등을 운영하고 있었다. (사진=이상진 기자)

취재진이 두 번째로 찾은 소상공인은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위치한 ‘넓은 여울 전망대 카페’(여울 카페)였다. 해당 카페는 △카페 △베이커리 △편의점 등을 운영하는 사업장으로, 모두 7명의 상주 근로자들을 고용하고 있었다.

카페 안으로 들어서자 김복임(52) 여울 카페 실장이 취재진을 맞았다. 최저임금에 대해 묻자 김복임 실장은 “사실 지난 2년 동안 최저시급이 올라 수입이 줄어들어 아무래도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고생하는 직원들을 위해 최저시급 이상으로 급여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여울 카페는 시급을 1만 원 이상으로 책정해 지급하고 있다. 2019년 최저시급이 8,350원인데 비해 많이 주는 것이다. 여울 카페 직원들은 여기에 경력 인정 수당과 직급 수당 등을 따로 지급받는다. 직원들에 따르면 연 수차례 있는 회식의 단일 메뉴는 소고기다. 한 번의 회식에 200~300만 원의 지출이 나온다고 했다.

김 실장은 “기본적으로 열심히 일하고 힘들게 일해 돈을 벌면 거기에 대해 직원들에게 그 이상으로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항상 있다”며 “주말 아르바이트 근로자에게도 같은 대우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울 카페에서 1년여 동안 일한 유명화(40) 팀장은 “최저시급이 8,350원인데 여기는 기본이 1만 원이고 매년 최저시급이 오를수록 급여를 높여 계약서를 작성하기 때문에 저축과 소비가 늘고 있다”며 “대신 일할 때는 정말 성실히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 팀장은 “지난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개인사업을 하는 남편의 회사가 휘청거릴 정도로 타격을 받았다”며 “직원 입장만 생각하면 최저시급이 오르는 것이 좋지만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마냥 급격히 최저시급을 올리는 것이 좋다고는 볼 수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 온도차는 있지만...사용자·근로자 ‘서로 배려하며 공존’
 

김복임 실장은 올해 말 고생한 직원들과 함께 회사 비용으로 동남아 여행을 갈 계획을 세웠다. (사진=이상진 기자)
김복임 실장은 올해 말 고생한 직원들과 함께 회사 비용으로 동남아 여행을 갈 계획을 세웠다. (사진=이상진 기자)

취재진이 방문한 영세·소상공인 일터 근로자들의 삶의 지평은 근로자에 고정돼 있지 않았다. 어떤 근로자는 최저시급 인상으로 저축과 소비가 모두 늘었지만 개인사업을 영위하는 자신의 배우자가 힘들었고, 최저시급이 늘어 며느리와 손주들에게 용돈과 선물을 줘 기쁘다는 어떤 근로자는 20년 일한 직장을 떠나야 하는 현실을 실감하기도 했다. 근로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득이 늘어나는 것은 좋지만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사용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을뿐더러, 일자리 자체를 없앨 수 있다는 명확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본지가 찾은 영세·소상공인들의 일터에서 최저임금을 주지 않으려는 사용자와 받아내려는 근로자의 갈등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는 것이다. 영세·소상공인 사용자들은 최대한 근로자들의 임금 지급과 복지, 고용시간 보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하루하루 땅에 발붙이고 진짜 삶을 살아가는 영세·소상공인들에게 거대 사용자·근로자 단체가 최저임금 인상률을 놓고 벌이는 OK 목장의 결투는 생경한 풍경일 뿐이었다.

김복임 여울 카페 실장은 인터뷰 말미에 “유원지 특성상 평소 일이 고되다”며 “오는 12월에는 그동안 수고해준 직원, 아르바이트 근로자들과 함께 회사 비용으로 동남아로 단체여행을 떠나기로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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