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만약에 제가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미국과 북한이 전쟁 상태였을 겁니다”

23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두 번 반복한 말이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3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지켜봐야 한다. 정상회담의 성사를 사람들이 원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결과를 알 수 없다”고 말을 아끼면서도 북한과의 ‘좋은 관계’를 연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뉴욕에서 9월23일 오후 5시30분부터 6시35분까지 1시간5분 동안 한미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사진=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뉴욕에서 9월23일 오후 5시30분부터 6시35분까지 1시간5분 동안 한미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사진=청와대 제공)

‘트럼프가 대통령이 됐기 때문에 북미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생각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를 결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지금까지 미 대통령과는 확연히 다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주류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무력시위를 전략적으로 무시하며 최대의 압박으로 비핵화를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체제보장’을 약속하며 비핵화를 이끌어내고자 한다.

트럼프의 특이한 대북정책은 일종의 영웅심리에서 비롯됐다는 해석도 있다. 역대 미 대통령이 북한 문제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놨고, 자신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심리다. 미국의 북한전문지 38노스 조엘 위트 대표는 지난 2월 방한해 이같이 주장한 바 있다. 위트 대표에 따르면, 트럼프의 대북정책은 지난 2016년 인수인계위원회 시절 오바마 대통령과 단 한번 만난 것이 굉장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인수위 당시 오바바 전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 “북한이 (핵개발에) 기술적 한계를 갖고 있지만, 곧 이 한계를 넘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도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고 충고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정부가 남겨놓은 ‘난장판’을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나고 짜증난 상태로 인수위 회의에서 나왔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15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연설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에 대해 말하기는 싫지만, 그는 북한과 전쟁 직전까지 갔다”고도 말한 바 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전 대통령과 인수위 만남에서 그동안의 미국 대북정책으로는 전쟁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고 확신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확신은 미국 내에서도 강한 매파로 통하는 존 볼턴 미 국가안보보좌관의 경질로 이어졌다. 볼턴 전 보좌관은 지난 2월 하노이 북미회담이 노딜(No Deal)로 끝나게 한 장본인으로 지목되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 전 보좌관이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이 민감하게 여기는 ‘리비아 모델’을 제안했다고 경질 이유를 밝혔다. 볼턴 전 보좌관 후임으로는 온건파 협상가로 통하는 로버트 오브라이언이 임명됐다.

볼턴 전 보좌관 경질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팀은 북한과의 대화 기류를 유지하기 위한 ‘굿 캅’들로 채워졌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은 강경파인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온건한 역할을 맡아 북한과의 고위급 협상을 주도해왔다. 지난해 트럼프 대북팀의 합류한 스티븐 비건 미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실용주의자’로 통한다.

한편,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 정상은 조기에 북미 비핵화 실무 협상이 재개돼 실질적인 진전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 의견을 함께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한미회담 전 모두발언에서 “조만간 제3차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북미 간 실무협상 열리리라 기대한다”며 “3차 회담이 열리면 아마도 한반도 비핵화의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세계사적인 대전환, 업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회담 직후 브리핑을 열고 “두 정상은 최근 북한의 대화 재개 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싱가포르 정상회담 합의 정신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재확인했다”며 “두 정상은 한미 양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전환해 70년 가까이 지속된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체제를 구축할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 취임 이후 9번째로 성사된 한미회담은 당초 예정했던 45분을 훌쩍 넘겨 약 65분간 진행됐다. 이날 회담에 우리 측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김상조 정책실장, 조윤제 주미대사,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 고민정 대변인 등이 배석했다.

미국 측은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을 비롯해 스티븐 므누신 재무부 장관, 월버 로스 상무부 장관,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믹 멀베이니 비서실장 대행, 로버트 오브라이언 국가안보보좌관,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 등이 자리했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