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뉴스포스트 전문가 칼럼=온기운] 지난해 한국의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캐나다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구 온실가스 배출량과 원인을 추적하는 비영리단체 ‘글로벌 카본 프로젝트(GCP)’가 며칠 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모두 368억 3,100만t으로 전년 대비 2.1% 늘었다. 1900년(19억 5,700만t)과 비교해 18.8배 급증한 수치다. 특히 한국의 1인당 탄소 배출량은 12.4t으로 세계 평균(4.8t)의 2.5배에 달했고, 이산화탄소 연간 배출 총량에서도 중국, 미국, 유럽연합(EU), 인도 등에 세계 7위를 기록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감축이 인류의 최대 당면과제라는 점은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다. 이상 고온, 가뭄, 태풍, 폭우 등 기상이변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해수면 상승으로 일부 국가의 땅은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최근 강력한 태풍이 한반도를 여러 차례 휩쓸었듯이 기후변화의 영향은 우리에게도 직접적으로 미치고 있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특별보고서(SR1.5)에 따르면 세계 평균기온은 산업혁명 전에 비해 이미 1도 상승했으며 지구온난화가 이대로 진행되면 2030~52년 사이에 상승 폭이 1.5도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산호초의 대부분이 소멸하고 동식물의 생식력이 크게 약화하는 등 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주므로 각국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엄격하게 억제할 것을 요구했다. 이 보고서는 또한 기온상승을 1.5도 미만으로 억제하기 위한 대책으로서 2030년까지 세계의 이산화탄소 연간 배출량을 2010년 대비 약 45% 삭감할 필요가 있음을 밝혔다.

2016년 11월에 발효된 파리협정에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금세기말까지 기온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2℃에서 억제한다는 장기 목표가 명기돼 있다. 이를 담보하기 위해 파리협정에 참여한 196개국은 각자 제시한 삭감목표(NDC)를 어느 정도 이행하고 있는지 5년마다 점검하게 돼 있다. 이 점검은 두 트랙으로 나눠진다. 하나는 세계 전체 차원에서 이행상황을 점검하는 것이고(global stocktaking), 다른 하나는 각국이 이를 자국의 목표에 반영해 차기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다. 차기 목표는 이전보다 강화된 것이어야 한다.

문제는 한국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파리협정 발효 이후에도 온실가스는 계속 늘고만 있다. 그런데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오히려 온실가스 배출을 늘리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탈원전과 전기요금 동결이다. 정부가 원전의 이용률을 낮추고 월성1호기 사례처럼 원전을 조기폐쇄 함으로써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이 크게 늘어 온실가스 배출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원전은 전력 1kW를 생산하는데 10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데 비해 LNG는 549g을 배출한다. 정부가 대진 1, 2호기, 천지 1, 2호기와 같은 신규원전 계획을 백지화하고, 신한울 3, 4호기처럼 이미 진행해 오던 원전 건설을 중단하며 설계수명이 도래하는 원전을 속속 폐쇄해 ‘원전 제로’를 향해 나아갈 경우 온실가스 감축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정부는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수정안에서 국외 감축 비율을 11.3%에서 1.9%로 축소하고 대신 국내 감축 비율을 25.7%에서 35.1%로 확대했다. 따라서 발전 부문이 국내 감축 비율 증가분의 상당 부분을 담당해야 하나 탈원전 정책 탓에 발전 부문 탄소 감축량의 60%인 3,410만t에 대한 감축 방안을 여태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빌 게이츠는 “원전은 유일하게 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확장 가능하며 24시간 얻을 수 있는 에너지원이다. 원자로의 사고 위험은 혁신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정부가 장기간 전기요금을 동결하고 오히려 복지할인은 대폭 늘리는 등 포퓰리즘 정책을 취하는 것도 온실가스 감축에 역행하는 것이다. 전기요금은 현재 원가의 90%밖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한전이 손실을 보면서 전기를 판매하고 있던 셈이다. 오죽하면 한전 사장이 “두부값이 콩값보다 싸다”며 전기요금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겠는가. 농업용 전기요금은 원가의 40%밖에 되지 않는다. 기업형 영농업체가 비닐하우스에서 열대과일을 대량 생산해 판매하는데도 이처럼 값싼 전기요금이 적용된다니 뭔가 이상하다. 주택용 전기요금도 원가의 70% 수준에 불과하다. 연간 수천억 원에 달하는 각종 복지할인이 남발되는 것도 전기과소비를 초래하고 있다. 전기 과소비는 적정 이하의 전기요금에 기인하는 부분이 크며, 전기과소비는 결국 화석연료의 과다 사용을 유발해 온실가스 발생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 중 유일하게 온실가스 발생이 늘고 있다는 BP의 통계자료에 문제가 있다며 반박하기보다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보다 효과적인 대안을 마련하는데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잘못되고 상호 모순된 에너지 정책부터 뜯어고쳐야 하며, 정치논리나 이념이 정책을 끌고 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 인류의 최대 현안인 온실가스 감축 문제를 나몰라라 해 한국이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해 ‘깡패’ 소리를 들은 미국과 같은 처지에 놓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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