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전 아니라면 민간인을 시켜야...“하재헌 중사 ‘전상’이 맞다”
- 62년 쿠바 사태 이후 남과 북 DMZ에 경쟁적으로 지뢰 매설
- “군이 지뢰제거? 부모들 잠 못 자” 지뢰제거는 민간이 해야
- 지뢰제거 민간에 맡기면 일자리 창출하고 5년이면 충분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4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유엔과 모든 회원국들에게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를 국제평화지대로 만들자는 제안을 하고자 한다”며 비무장지대(DMZ)를 국제평화지대로 만들 것을 제언했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과 각국 대표에게 비무장지대에 묻힌 지뢰 38만여 발을 제거해 비무장지대를 국제적 협력지대로 만들어낼 것이라고 공언했다. 문 대통령은 또 북한과 공동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비무장지대 등재를 추진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기호(65) 한국지뢰제거연구소 소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은 순서가 바뀐 정치적인 발언”이라며 “진실로 우리가 지뢰를 제거하고 평화를 원한다면 북한과 협의가 필요 없는 민통선 지뢰부터 걷어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기호 소장은 지난 1974년부터 2003년까지 준사관으로 대한민국 국군에 복무한 바 있다. 김 소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남북공동선언에 따라 2000년 6월부터 시작된 ‘경의선 철도 도로 연결사업’에 지뢰제거 작전을 맡은 1공병여단 대대를 담당하는 기무반장을 역임했다. 이후 군을 떠난 그는 민간 지뢰제거 전문가로 15년 동안 활동하고 있다.

<뉴스포스트>는 27일 “경의선 철도가 평화의 시작이자 통일의 시발점이라고 생각한다”는 김기호 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그의 자택이 위치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인근의 한 카페에서 진행했다.

김기호 한국지뢰제거연구소 소장이 지뢰 제거는 민통선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이상진 기자)
김기호 한국지뢰제거연구소 소장은 지뢰 제거는 민통선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이상진 기자)

▶대통령이 국제사회에 비무장지대를 국제평화지대로 만들자는 제안을 했는데.
“정치적인 발언이다. 국제사회에 DMZ가 이슈화하기 좋으니까 대통령이 언급한 것이다. 진정으로 우리가 지뢰를 제거하길 바라고 평화를 원한다면 지금 당장 북한과 협의 없이 할 수 있는 지뢰제거부터 해야 한다. DMZ 전에 민통선에 깔린 지뢰 제거부터 얘기해야 한다. 남방한계선 아래 10km 범위에 깔린 지뢰를 제거한 뒤에 DMZ를 얘기해야 맞다.”

▶남과 북이 동시에 지뢰를 제거하는 묘안이 있다면.
“간단하다. 지난 1997년 캐나다 오타와에서 체결된 ‘대인지뢰의 사용, 비축, 이전금지 및 폐기에 관한 협약’, 이른바 ‘오타와 협약’이 있다. 지금까지 이 협약에 전 세계 160여 국가가 가입했다. 4년 이내 보유 지뢰 제거, 10년 이내 매설 지뢰 제거 등이 조건이다. 여기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과 함께 우리나라와 북한이 빠져있다. 이 협약에 남북이 함께 가입해 10년 내 한반도의 모든 지뢰를 제거하면 된다.”

▶지뢰를 제거하면 군사적 위협에 노출될 것이란 지적이 있는데.
“과거 남북은 안보상 이유로 비무장지대에 경쟁적으로 지뢰를 묻었다. 과거 전쟁은 보병이 주가 된 땅따먹기라 그게 통했다. 하지만 현대전은 미사일 전쟁이다. 버튼 전쟁이라고 하지 않나. 북한은 스커드 미사일 등이 있고 핵도 개발했다. 지휘부를 타격해 전투의지를 말살시키는 게 현대전에서 전쟁 양상이다. 세계대전 때나 볼 지뢰는 더 이상 전략적 가치가 없다. 북한의 남침을 저지하기 위해 지뢰를 제거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억지다.”

제거한 M16 지뢰를 들고 있는 김 소장. (사진=김기호 소장 제공)
제거한 M16 지뢰를 들고 있는 김 소장. (사진=김기호 소장 제공)

▶비무장지대가 언제부터 중무장지대가 된 것인가?
“62년 쿠바 사태 이후 동서 냉전이 심화됐다. 그 와중에 프랑스가 철수한 월남에 미국이 통킹 만 사건 등을 구실로 베트남에 폭격을 하면서 베트남전이 전면전이 됐다. 한국은 64년 9월에 베트남전에 파병을 했고. 그해 11월에 김일성이 베트남을 찾아 호치민과 정상회담을 했다. 한국군 때문에 베트남이 위협을 당하니까 김일성과 호치민이 양동 작전을 했다. 64년 파병 이후 DMZ를 통한 북한군의 침투가 과거보다 10배 이상 증가했다. 1년에 100회~200회에 이르렀다. 이 시기 남과 북이 경쟁적으로 DMZ에 지뢰를 매설하기 시작했다. 남북이 데탕트 모드로 바뀌게 된 72년 7.4 남북공동성명 전까지 이런 분위기가 이어졌다. 남북공동성명 전까지 2,600회에 걸쳐 북한군의 도발이 있었다. 김신조 1·21사태나 울진 삼척 지구 무장공비 침투 사건 등이 모두 해당 시기에 발생했다.”

▶북한의 남한 침투가 문제였다면 북은 지뢰를 매설할 이유가 없지 않나.
“우리가 북한을 침투한 작전들도 있었다. 일례로 66년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미국 존슨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였다. 북한은 11월 1일 야간에 지금은 파주 민통선에 있는 해마루촌으로 말을 타고 침투했다. 북한군은 뒷산에 말을 묶어 놓고 DMZ 근무를 서던 미군 6명과 카투사 2명을 습격해 살해했다. 존슨 대통령이 이를 계기로 북한을 공격하겠다는 걸 소련에 통보하자 소련 답변이 ‘한국군이 먼저 북한을 침투해서 북의 연대장급 간부를 살해했고, 그에 대한 보복이었다’는 답변을 들어 결국 주한미군 대사와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국 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했다고 알고 있다. 주로 정보사령부의 돼지라 불리던 특수임무수행자들이 그런 임무를 수행했다.”

▶대통령은 유엔 연설에서 38만 발 지뢰가 DMZ에 매설됐다고 했다. 한반도에 얼마나 많은 지뢰가 매설돼 있는 것인가?
“과거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우리가 매설도를 가진 게 1,100개소에 약 97만 발이다. 이 가운데 대인지뢰가 60만 발이라고 했고. 그런데 이 수치가 맞지가 않다. 보통 지뢰는 대전차 지뢰 1발 당 대인지뢰 3발을 묶는다. 비율로 보면 대인지뢰가 75% 정도다. 97만 발이라고 하면 73만 발이 대인지뢰가 돼야 하는데 국방부는 60만 발이라고 한 것이다. 대통령이 DMZ에 대인지뢰가 38만 발이라고 한 것은 어느 정도 맞다. 1,100개소 지뢰 매설 장소 가운데 약 760개소가 DMZ에 몰려있다고 보고 있다.”

M14 비금속 대인지뢰. (사진=김기호 소장 제공)
M14 비금속 대인지뢰. (사진=김기호 소장 제공)

▶지뢰의 종류가 어떻게 되나?
“우리나라에는 비금속 대인지뢰 M14가 있다. 금속 대인지뢰는 M16이 있고. 미확인 지뢰지대에는 M2와 M3가 묻혀 있는데, 모두 금속 대인지뢰다. 우리나라에는 이렇게 4종류가 있다. 북한에는 목함지뢰와 수지지뢰가 있다. 각각 PM6, PM27이라고도 부른다. 수지지뢰는 목함지뢰와 생긴 것은 똑같은데 재질이 플라스틱이라는 것이 다르다. 북한에서 떠내려 온 지뢰는 목함지뢰만 있고 수지지뢰는 한 번도 떠내려 온 적이 없었다.”

▶최근 지난 2015년 8월 북한 목함지뢰 도발로 두 다리를 잃은 하재헌 예비역 중사에게 국가보훈처가 ‘전상’이 아닌 ‘공상’ 판정을 내려 큰 논란이 일었다. 논란이 일자 보훈처는 10월 초 재심 회의를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당연히 전상 판정이 맞다. 남과 북은 휴전 상태로, 준전시 상태다. DMZ 수색작전을 하든 불모지작전을 하든 작전을 하다가 사고가 났으면 전상이다. DMZ 수색작전은 적의 침투를 저지하기 위한 대침투작전이다. 전시가 아니고 작전 상황이 아니라면 왜 위험지역에서 위험한 작업을 총을 든 군인이 하나? 그럼 작전이라 명명하지 말고 작업이라 하고 민간인을 시켜야지. 작전 중이라면 북한 목함지뢰가 아니라 우리나라 지뢰를 밟아 사고가 나도 전상이다.”

▶대통령은 연설에서 우리나라 군만으로는 DMZ 지뢰제거에 15년이 걸릴 것이라고 했는데.
“대통령이 무슨 근거로 15년이 걸린다고 했는지 모르겠다. 우리 군 11개 대대 규모의 군을 투입하면 DMZ와 민통선 등 남한 전체 지뢰를 제거하는 데 200년이 걸린다는 분석이 있다. 그럼 지뢰가 몰린 DMZ의 지뢰를 제거하려면 최소한 100년 이상 걸린다. 대통령이 빠른 지뢰 제거를 위해 ‘유엔지뢰행동조직’ 등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당부하기도 했는데,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는다는 면에서 우리나라 군이 지뢰 제거를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본다.”

▶공병 등 우리나라 국군의 지뢰 제거 문제점을 꼽는다면.
“예전 군 복무 시절 전방에서 지뢰제거할 때 보면 군인들이 사고로 많이 죽었다. 다행히 지금은 지뢰 사고 나면 사회에서 큰 논란이 되니 사고는 줄었다. 그런데 그만큼 지뢰제거의 효율성도 줄었다. 군은 지뢰탐지기가 울리면 겁이 나서 일단 깃발을 꽂아 놓고 한 발짝도 안 나간다. 그게 진짜 지뢰인지 아닌지 판별될 때까지 해당 지역에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병사도 그렇지만 간부도 마찬가지다. 거기서 목숨 걸고 일할 정신 나간 사람 없다. 지뢰 한 발 제거하는 데 하루 종일 걸려도 누가 뭐라고 하나? 월급 나오는 것도 똑같고. 공병은 지뢰 하나가 발견되면 그 부근 지뢰밭이라 판단되는 모든 지역을 폭파해버리고 불도저로 밀어버린다. 탱크나 차가 지나가도록 하는 게 공병 지뢰제거 방식이다. 환경은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김 소장은 민간 지뢰 제거 전문가를 양성한다면 1년 내 DMZ 지뢰를 제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이상진 기자)
김 소장은 민간 지뢰 제거 전문가를 양성한다면 1년 내 DMZ 지뢰를 제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이상진 기자)

DMZ의 지뢰를 제거하는 효율적인 방법에 대한 제언이 있나.
“유엔에서도 지뢰제거에 군인과 NGO 단체 등을 활용해보니까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지금은 민간에 전부 아웃소싱을 주고 민간단체에 위탁하고 있다. 군을 투입한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남의 귀한 아들 데려다가 지뢰 제거한다고 위험한 데 집어넣으면, 부모들 잠 못 잔다. 민간 지뢰 제거 전문가 양성은 일자리 창출도 한다. 경제성과 효율성, 환경성, 안전성 모두 민간이 낫다. DMZ 지뢰지대가 700개소 정도라고 볼 때, 한 장소가 2만 제곱미터 정도다. 그럼 총 1,400만 제곱미터의 지뢰지대를 정리해야 한다. 여기에 민간인 전문가 1,000명 투입하면 1년에 150일 작업한다고 했을 때 교육기간까지 합쳐 5년이면 DMZ 지뢰를 모두 제거할 수 있다.”

끝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민통선 지뢰를 우선 모두 제거한 뒤 DMZ의 지뢰도 없애야 한다. 추진철책도 없애야 하고, GP도 없애야 한다. 우리가 DMZ를 평화지대로 만들겠다고 한다면,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지뢰가 왜 필요한가? 추진철책을 제거하고 거기에 평화의 숲길을 조성해 DMZ 동서 트래킹 코스를 만든다면 평화의 물꼬를 트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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