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가까스로 열린 스톡홀름 북미 실무협상이 ‘노 딜(No Deal)’로 끝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4월 대대적으로 ‘물갈이’된 북한 내 대미정책 라인이 사실상 ‘무능’하기 때문이라는 전문가 분석이 나왔다.

7일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외무성 라인이 (북한 내에서) 대미 협상 주도권 장악을 했지만 그들이 (정치적) 영향력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결국 김영철보다 멀리 나가는 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북미 실무협상 북측 수석대표 김명길(가운데) 외무성 순회대사가 5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의 북한 대사관 앞에서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북미 실무협상 북측 수석대표 김명길(가운데) 외무성 순회대사가 5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의 북한 대사관 앞에서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앞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는 지난 5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 리딩고 섬에 있는 컨퍼런스 시설인 ‘빌라 엘비크 스트란드(Villa Elfvik Strand)’에서 실무협상을 진행했지만 별다른 결론을 내지 못하고 끝난 바 있다.

당초 북한의 대미 협상팀은 군부 출신인 강경파 김영철 전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맡아왔지만, 지난 하노이 회담 결렬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지난 4월 외무성 라인이 새로운 대미 협상팀으로 떠올랐다. 당시 새로운 북한의 대미 협상팀은 기존 협상팀보다 상대적으로 온건파에 속하기 때문에 향후 비핵화 협상이 원활하게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전격 ‘물갈이’된 새로운 북한의 비핵화 협상팀은 북한 내 정치적 입지에서 한계가 있다는 게 정 본부장의 해석이다. 그는 “외무성 간부가 군부보다는 상대적으로 유연하지만 그렇다고 군부 이익에 반해서 비핵화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기는 어렵다”면서 “(외무성 소속인) 최선희는 정치국 후보위원도 아니고 정치국 위원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니 북한 지도부 내 위상이 낮고 결국은 김영철은 밀려나긴 했지만 김영철 눈치를 보지 않을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정 본부장은 이번 스톡홀름 실무협상 결렬의 책임은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과 권정근 전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 등 북한 외무성 라인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앞서 김명길 대사게 스톡홀름 실무협상 결렬의 책임을 미국에 돌리며 협상 시한을 ‘연말’로 못박은 이유도 외무성 내 별다른 전략이나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는 게 정 본부장의 주장이다.

그는 “외무성이 지금 스스로 대안을 제시할 능력이 안 되니까 자꾸만 미국에게 대안을 제시하라고 요구하는게 아닌가 싶다”라며 “자기네들이 원하는 기본 방향만 얘기하고 구체적인 대안은 미국에게 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본부장은 지난 4월 외무성 라인이 대미 협상팀 전면으로 나섰을 때도 “(외무성 라인이 협상에서) 김영철처럼 군부의 이익을 대변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군부의 이익에 반대되는 적극적인 비핵화 협상 방안을 김 위원장에게 제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본 바 있다.

그렇다면 북한이 계속 미국과의 협상에서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이유는 뭘까. 정 본부장은 최근 북․중 관계가 매우 좋은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라고 봤다. 북한은 계속된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각종 유엔안보리 제재를 받고 있는데, 올해에는 중국 내 북한 근로자(약 3만~5만 명 정도로 추정)와 러시아 등 다른 국가에 파견된 북한 근로자들이 모두 본국으로 귀국해야 한다. 정 본부장은 “그렇게 되면 북한의 외화 수입원이 대폭 줄어들게 되겠지만 북한은 중국 관광객 유치 확대를 통해 그 같은 위기를 극복하려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정 본부장은 “시진핑 주석과 문재인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가진 것은 김 위원장이 비핵화 협상에 진지하게 나서겠다고 대외적으로 약속했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북한이 비핵화 협상을 중단하고 다시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를 추구하겠다고 하면 북한은 다시 2018년 이전의 고립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이 교착상태에 빠진 비핵화 협상의 물꼬를 트려면,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미국에 특사로 파견해야 한다는 게 정 본부장의 주장이다. 애초에 외무성 출신 대북라인은 군부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군부 개혁을 진행했던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비핵화 협상에서 대담한 협상을 벌일 수 있는 적임자라는 설명이다.

최선희(왼쪽) 외무성 제1부상은 지난 4월 의회 격인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무위원에 선임돼 새로운 대미 협상라인으로 급부상한 인물이다. 최룡해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일명 '김정은 최룡해 박봉주' 3인 체제 중 한명이다. (사진=뉴시스)
최선희(왼쪽) 외무성 제1부상은 지난 4월 의회 격인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무위원에 선임돼 새로운 대미 협상라인으로 급부상한 인물이다. 최룡해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일명 '김정은 최룡해 박봉주' 3인 체제 중 한명이다. (사진=뉴시스)

정 본부장은 “최룡해는 과거에 인민군 총장 지국장으로서 북한군을 확실하게 장악했던 인물”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군부를 어떤 저항, 비핵화에 대한 군부 저항을 억누르고 비핵화가 북한에 도움이 된다고 하면 밀어붙일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다. 최룡해는 정치국 상무위원이고 북한을 이끌어가는 3대 핵심 리스트 중에 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정 본부장은 스웨덴이 북한과 미국에 제시한 ‘2주 내 재협상’은 북한이 응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북한이 자꾸만 조바심을 내기 때문에 시한을 연말까지 하겠다고 나오는 것”이라면서도 “올해 안에 성과가 없어도 내년에 트럼프 대통령이 만나자고 하면 김정은 위원장은 거부하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이 생각을 바꾸지 않은 한, 북한이 협상에서 이탈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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