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홍여정 기자] 100세 시대라 일컫는 요즘 정년퇴직 후 인생 2막을 고민하는 어르신들이 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본격적인 은퇴가 시작되며 시니어들을 위한 일자리 지원 사업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왔지만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용두사미로 그친 경우도 많았다.

이런 가운데 어르신 일자리 창출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노원 실버 협동조합의 실버택배 일터를 찾아가 봤다. 지난 2010년 5명의 어르신들이 모여 시작한 이곳은 지금은 정부에서 인증한 마을기업으로 성장했다. 반평생 몸담았던 일을 뒤로하고 새로운 삶을 설계하고 있는 80대 노년들. 건강한 노동을 통해 돈도 벌고 자식들 짐도 덜어 좋다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진=홍여정 기자)
지난 10일 노원실버협동조합 실버택배기사들이 택배상자를 내리고 있다. (사진=홍여정 기자)

“차 들어 온다~”

“오늘은 별로 없구만”

파란 조끼를 맞춰 입은 두 명의 어르신들이 택배상자를 내려 레일위에 올린다. 레일 옆으로 줄 지어 서있는 십 여 명의 어르신들이 주소를 확인하고 각 동별로 분류를 한다. 이후 각자 자리에 앉아 담당하는 동 별로 물건을 정리하고 체크해 기록한다. 작업이 마무리되면 전기차 혹은 손수레, 리어카에 물건을 싣고 주소지로 출발한다. 

지난 10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 주공14단지 내 경로당 한켠에 위치한 노인실버협동조합 사무실을 방문했다. 어르신 연령은 78~84세. 노원구에 거주하는 24명의 어르신들이 모여 상계 주공 12·13·14·15·16 단지의 CJ대한통운과 우체국 택배의 배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노원실버협동조합은 지난 2010년 5명의 어르신들이 모여 자체적으로 시작한 택배 사업으로 시작했다. 단지 내 경로당을 거점으로 택배 회사의 물품을 받고 어르신들이 직접 배달했다. 그러다 2016년 대형 택배 회사와 연계해 협동조합으로 재탄생했다. 경로당 창고를 증축해 사무실과 작업실을 만들었다.

현재 하루 물량 받는 숫자는 1600~1700개. 많으면 2000개까지도 받는다. 한 어르신 당 하루 할당량은 60~70개 많으면 100개 이상이다. 어르신들이 택배 1개당 받는 수입은 500원. 크기와는 상관없다. 매달 50~10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다.

이은호 씨(80)은 올해로 9년차 택배 배송 일을 하고 있다(사진=홍여정 기자)
이은호 씨(80)는 올해로 9년째 택배 배송 일을 하고 있다. (사진=홍여정 기자)

일을 하며 무릎이나 허리를 다치는 일은 다반사. 대부분 쉽게 생각해 일을 시작하지만 하루이틀 버티고 그만 두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노동 강도에 비해 수입이 적을 뿐만 아니라 일하다가 다치면 사비가 들어가기 때문.

실버택배기사 9년차인 이은호 씨(80)는 실버택배기사의 제일 중요한 기본은 첫째도 둘째도 체력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택배가 조그만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김장철 다가오면 농산물도 많고...나이 70~80먹은 노인들이 그거 들다 쩔쩔매고 병원에 가는 일이 허다하다”며 “같이 오래 일하면 좋은데 그런 이유로 그만두니 아쉽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체력적인 부분 외에도 문제는 있다. 배송일이 물건을 주인에게 전해주는 간단한 일처럼 보이지만 집에 본인이 없거나 하면 그 이후의 처리 과정도 어르신들에게는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다.

지난 2017년부터 노인실버협동조합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 A씨는 “배송을 갔는데 집에 사람이 없으면 경비실에 맡겨야 한다. 이 때 어르신들이기 때문에 전화나 문자로 일일이 전화하기 어려워 우편함에 ‘택배왔다’는 메모를 꽂아둔다”며 “만약 물건을 분실할 경우 어르신들이 책임을 지셔야 하기 때문에 어르신들이 굳이 본인에게 직접 배달할려고 하는 부분들이 있어 그런 소통 부분에서 민원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일이 어르신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 열 분 정도 오시면 반 정도는 힘들어서 그만 두신다”며 “그러나 일을 절실하게 하고 싶으신 분들은 이런 부분이 숙달되면 오래 버티시더라”고 덧붙였다.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는 주민들도 있지만 대부분 어르신들이 하는 일이기에 배려해주고 더 편하게 생각한다고 A씨는 말한다. 특히 어린이들은 ‘택배할아버지’가 다녀가면 본인들에게 어떤 무언가가 나오기 때문에 반긴다고 한다.

먼 거리의 아파트 단지에 배송을 갈 때 사용하는 전기차(사진=홍여정 기자)
먼 거리의 아파트 단지에 배송을 갈 때 사용하는 차량. 현재 총 14대가 있다. (사진=홍여정 기자)

현재 근무하는 어르신 직원은 24명. 3명이 부족해 그 만큼의 양을 다른 직원들이 대신하고 있다. 이 씨는 경력이 두 번째로 많기 때문에 하루에 많게는 150개씩 나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친구도 생기고 용돈 벌이도 하고 신체적으로도 건강해 지기 때문이라고 이 씨는 말한다.

“내 나이에 100만원 벌 수 있는 직장이 어디 있나. 여기 아침에 나와서 친구들하고 이야기 나누고 일 하다보면 주머니에 용돈 생기고. 처음 한두 달 고비를 넘기면 오히려 건강해져. 그러니 자식들도 신경을 덜 쓰지. 일 끝나고 친구들하고 막걸리 한 잔 하기도 하고. 집에서 노는 것 보다 일하고 여기서 노는 것이 더 좋아.”

길쭉한 택배 상자를 보며 “저 대포는 뭔가”라며 농담 섞인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일하는 어르신들. 2010년 실버택배 사업 시작부터 근무하고 있는 분을 포함해 평균 5~6년차 배테랑 택배 기사들이다. 고되고 힘들지만 일을 한다는 즐거움이 어르신들에게 하루하루 삶의 원동력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A씨는 “여기 연령대 제일 젊으신 분이 78세, 80세 넘으신 분은 5명이다. 여기가 경로당이기 때문에 같은 연령대의 어르신들을 볼 수 있는데 확실히 일 하시는 분들이 더 젊어보이고 훨씬 더 활기차게 생활하신다”며 “힘든 일이지만 일에 대한 열정으로 꾸준히 하시는 모습이 참 좋아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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