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토익 900 찍기위해 중독자가 되었다
[줌인] 토익 900 찍기위해 중독자가 되었다
  • 이해리 기자
  • 승인 2019.10.16 1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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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어 ‘토익 갑질’ 靑 국민청원 등장
‘토익 제도 개선’ 시행 후에도 불합리 여전

[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토익 900점을 찍기 위해 총 10번의 시험을 봤어요. 기간은 6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9만 원 짜리 한 달 반 코스 인터넷 강의를 3번 들었고, 당시 현장 강의는 30만 원 정도 했던 걸로 기억해요. 도서관에서 스터디를 따로 했고요. 애초 목표 점수였던 900점대를 찍고 문득 ‘2주 후에는 더 잘 볼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친구가 말하더군요. 너 중독자라고...” (39, 주부 이 모 씨)

취업의 기본 요건으로 통하는 토익(TOEIC). 취준생들 사이에서 토익점수는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는 ‘고고익선’이라는 말이 있다. 고득점을 위해서 여러 번의 응시는 당연시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비싼 응시료와 늦은 성적 발표, 성적 유효기간에 대한 불만이 끊임없이 제기되며 취준생들의 등골 브레이커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토익 교재.
토익 교재. (사진=이해리 기자)

지난 8일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토익 응시가 불가피한 취업 준비생 상대로 갑질하는 ETS를 청원한다’라는 제목의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해당 청원은 16일 오후 5시 기준 9,119여 명의 동의를 받았다.

청원인은 “대부분의 기업들이 기본적으로 토익 점수를 요구하기 때문에 취업 준비생들은 불가피하게 토익을 응시할 수밖에 없다. 토익은 모든 취준생들이 응시하는 공적인 시험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라고 운을 뗐다. 실제로 토익 연간 응시자는 약 200만 명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ETS는 5만 원에 가까운 응시료를 내게 하며 시험지와 답안조차 정식 공개하지 않고, 학생들은 자신이 푼 문제가 맞고 틀린 여부조차 알 수 없으며 유효기간은 2년뿐인 불합리한 갑질을 시행하고 있다”라면서 “OMR 카드로 작성하는 시험임에도 불구하고 점수 공개 또한 늦기 때문에 학생들은 그다음 시험을 등록할 수밖에 없고, 점수를 확인한 이후에도 환불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다”라고 지적했다.

국내 토익 응시료는 2000년 2만 8,000원에서 2006년 일부 변경 직후 3만 4,000원으로 인상된 후 한두 해에 2,000~3,000원씩 꾸준히 올랐다. 연간 응시자가 200만 명을 넘어선 2010년 이후로는 2012년 4만 2,000원으로 인상 이후 2016년 지금의 4만 4,500원이 됐다. 정기 접수 기간이 지나고 추가 접수를 하게 되면 4,400원 더 비싼 4만 8,900원이다. 

취준생들이 많이 준비하는 다른 공인어학시험의 응시료도 고가다. SPEAKING 시험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토스(TOEIC SPEAKING)와 오픽의 응시료는 각각 7만 7,000원 7만 8,100원이다. 이밖에 △토플 200달러 △텝스 3만 9,000원 △HSK 2만 5,000원~9만 8,000원 등으로 응시생들에게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이 비용은 사실상 한 번만 내는 비용이 아니다. 원하는 점수가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응시해야 하기 때문에 취준생들은 어쩔 도리가 없다.

토익 갑질 청와대 국민청원.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쳐)
토익 갑질 청와대 국민청원.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쳐)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오(26, 경기도 수원시 ) 씨는 “원하는 점수를 받기 위해 올해만 토익 시험에 30만 원 가까이 썼다”면서 “특별한 소득 활동이 없는 상태여서 굉장히 부담된다”라고 말했다.

청원인은 또 “취업 준비생들 대부분 대학생이고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점과 대부분의 학생들이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봤을 때, 이 제도는 상당히 불합리하다고 볼 수 있다”라며 “ETS에 시험문제, 정답 여부 공개와 함께 성적 발표 일정을 앞당기고 환불 기한을 늘릴 것을 요구한다”라고 밝혔다. 

토익에 대한 논란은 어제오늘 제기된 것이 아니다. 지난 2013년 참여연대는 공정위 신고를 통해 토익 시험 응시 비용의 과도한 인상, 값비싼 토익 성적 재발급 비용, 특별 접수 기간의 설정, 응시자에게 불리한 환불 규정 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이후 지난해 2월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토익 갑질’에 대한 청원 글이 올라와 3만여 명이 몰린 바 있다. 

그전까지 토익 성적은 시험일로부터 16일째 되는 날 발표되면서 다음번 시험 응시 접수가 성적 발표보다 먼저 끝나, 토익 성적이 급한 취업 준비생은 자신의 성적을 모르는 상태에서 다음번 시험을 신청할 수밖에 없어 불편을 호소해 왔다.

이에 한국토익위원회는 ‘토익 제도 개선사항’을 발표하고 성적 발표를 다음 회차 시험 접수 마감 전으로 앞당겼다. 또한 비싼 응시료에 대해서는 기초 생활 보장 수급자에게 연 2회 토익 무료 응시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다. 토익시험 정기접수 기간을 14일 늘리는 대신 특별 추가 접수 기간은 10~11일로 줄였다. 

이 같은 한국토익위원회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취준생들은 불합리한 제도가 이전과 별다를 것 없다는 지적이다. 

취준생 하(27,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씨는 “작년에도 똑같은 청원이 있었는데, 왜 또 올라오게 됐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개선한다고 해놓고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최소한 정답 여부는 알려줘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대학생 김(23, 서울시 암사동)씨는 “취업에 필수인 영어 자격증들이 돈 없는 학생들을 상대로 갑질한다”라며 “기업들은 이제 토익 스피킹을 본다고 하는데, 이것도 8만 원 가까이해 너무 비싸다”라고 말했다. 

HR(Human Resource·인적 자원) 업계 관계자는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토익의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면서 “솔직히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국내 기업은 이력서에 토익 점수가 없다고 마이너스 되지 않는다”라면서 “외국계 기업의 경우도 스피킹과 해외 연수 또는 유학 여부를 보지 토익 점수를 보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이해리 기자 h42182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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