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라리 유흥업소라도 생겼으면...인적 드물어 불안
- 낮에도 골목길 지나가면 주변 살피게 돼
- 어두운 골목 조명 밝히고 CCTV 추가 설치해야
- 여성 1인 가구 밀집 지역 관악구...‘주거침입 성범죄 최다’
- 정부와 지자체 차원 해결책 제시 필요한 시점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지난 5월 28일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신림역의 이른 아침. 모자를 눌러 쓴 한 남성이 원룸으로 들어가려는 여성의 뒤를 쫓았다. 집 안으로 들어가는 데 실패한 남자는 10여 분 동안 문고리를 돌리거나 라이터를 켜 현관문 잠금장치의 비밀번호를 알아내려는 이상행동을 했다.

이른바 ‘신림동 강간미수 폐쇄회로(CC)TV 영상’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사건이다. 경찰은 영상 속 남성인 조 모(30) 씨에게 애초 주거침입 혐의만 적용했다가,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강간미수 혐의를 추가로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같은 혐의로 조 모 씨를 구속 기소했다.

지난 16일 조 모 씨 혐의에 대해 법원이 1심 판결을 내렸다. 주거침입은 유죄, 강간미수는 무죄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김연학 부장판사)는 “강간의 고의가 있었다고 특정하여 피고인을 처벌하긴 어렵다”고 판시했다.

조 씨가 주거침입을 시도한 의도를 강간으로 특정할 수 없으므로, 강간미수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는 논리였다. 법조계는 예상한 결론이었지만, 국민의 법 감정과는 다소 동떨어진 판결이었다.

이에 <뉴스포스트>는 17일 서울시 관악구 대학동에 위치한 원룸 밀집 지역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17일 신림동 대학동 원룸촌을 찾아 여성 1인 가구 주거침입 등에 대해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사진=이상진 기자)
17일 관악구 대학동 원룸촌을 찾아 여성 1인 가구 주거침입 등에 대해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사진=이상진 기자)

▲“여기요? 남자도 무서워요”...CCTV·방범창 추가하고 순찰 늘려야

기자는 오후 5시 30분쯤 관악구 대학동에 위치한 원룸촌을 찾았다. 아직 해가 밝았다. 따뜻한 햇볕이 비치는 원룸촌은 서울삼성초등학교와 삼성중학교, 삼성고등학교로 굽이치는 學의 산등성이 한복판에 소복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인근에 서울대학교가 있어 서울대 학생들이 이곳에 많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룸촌 현장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위해 골목골목을 한참 돌았다. 사람이 보이지 않아서다. 가까스로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성을 발견해 말을 건넸다. 서울대학교에서 재료공학을 전공하는 이선우(가명, 남, 24) 씨였다.

군대를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이선우 씨는 해가 진 원룸촌의 밤이 무섭다고 말했다. 이 씨는 “신림동이나 대학동 이쪽이 범죄율이 높다고 들었다”며 “밤에 가로등이 없어 어두운 골목이 많아 불안하고 무섭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라리 여기에 유흥업소라도 생기면 사람이 많이 다녀 좋을 것 같다”며 “부모님께서도 안전 부분에 대해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원룸촌 거주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두렵다고 말한 '신림동 원룸촌의 밤'. (사진=이상진 기자)
원룸 거주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두렵다고 말한 '원룸촌의 밤'. (사진=이상진 기자)

저녁 6시가 지나자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들이 눈에 띄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인 듯 보이는 청년에게 최근 관악구 원룸촌의 분위기를 물었다.

서울대학교에서 조선해양공학을 전공한다고 밝힌 현철(가명, 남, 24) 씨는 “서울대입구역 원룸에는 그래도 사람이 많이 돌아다니니까 불안감이 덜한데 여기는 방범에 대해 우려가 큰 것 같다”며 “얼마 전 사건도 있다 보니 여기 사는 여성들의 불안감이 상당히 커진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는 또 “어둠이 가장 큰 위험이기 때문에 여성들의 안전을 위해서 어두운 골목에 조명을 밝히고 CCTV와 방범창을 구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원룸촌에 위치한 대부분 원룸의 방범창은 1층에만 구비되고 2층부터는 구비되지 않은 곳이 많다. 현장에서 살펴본 원룸들은 2층이라고 해도 창문을 통해 들어가려는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올라갈 수 있는 높이로 보였다.

퇴근길에 기자를 만났다고 한 직장인 임주은(가명, 여, 35) 씨는 조명이 밝아도 밤에는 원룸촌을 걷기가 두렵다고 했다. 임 씨는 “아무래도 으슥한 골목이 많아 밤에 갈 때는 조명이 환해도 불안하다”며 “CCTV가 많으면 그나마 조금 더 안심이 될 것 같다”고 토로했다.

임 씨는 또 “저번 신림동 원룸 사건이 나에게는 그냥 언론이나 미디어에 나온 남 얘기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며 “요즘 좁은 골목을 지나갈 때는 낮에도 자꾸 주변을 살피게 된다”고 했다.

원룸에는 1층에만 방범창이 있고 2층은 없는 곳이 많았다. (사진=이상진 기자)
원룸에는 1층에만 방범창이 있고 2층은 없는 곳이 많았다. (사진=이상진 기자)

CCTV 추가 이외에 정기적·비정기적 순찰을 늘려 시민의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를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예산을 투입하고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재학 중인 한승기(가명, 남, 26) 씨는 “관악구 이쪽이 주거침입과 성범죄 비율이 전국에서도 높고 전자발찌 착용자도 많이 밀집된 곳으로 알고 있다”며 “여성분들이 굉장히 불안해하는 것이 당연하고 특히 혼자 사는 여성의 불안이 가장 클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근처에 초·중·고등학교 청소년들도 많은데 상대적으로 성범죄자들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라고도 했다.

한 씨는 “CCTV는 사생활 침해라는 부정적 측면보다 범죄 예방의 긍정적 효과가 더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이 늘릴수록 좋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CCTV보다는 정기적이든 비정기적이든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예산 지원을 통해서라도 순찰을 늘리는 것이 좋은 해결책이라 본다”고 말했다.

신축된 원룸 건물. 목마른 사람이 우물가를 찾듯, '여성 안심 시설물'이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사진=이상진 기자)
신축된 원룸 건물. 목 마른 사람이 우물 파듯, 여성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여성 안심 시설물'이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사진=이상진 기자)

▲여성 1인 가구 밀집 지역 관악구...“주거침입 성범죄 최다”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4일 서울지방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모두 300건의 주거침입 성범죄가 발생했다. 이 가운데 여성 1인 가구 밀집 지역인 관악구가 28건으로, 서울 지역에서 주거침입 성범죄가 가장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많다는 방증이다.

기자가 관악구 원룸촌에서 만난 이들은 “어둠이 무섭다”라거나 “골목길이 두렵다”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했다. 성별을 떠나 신체적 안전에 위협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두려움은 여성일 경우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해결책 제시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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