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조유라 인턴기자] <응답하라 1994>를 보는데 그런 장면이 나왔다. 아버지의 소원대로 의대에 진학했지만 적응하지 못한 빙그레(바로 분)는 음악을 하고 싶다며 갑자기 휴학을 하고, 절친인 쓰레기(정우 분)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지지해주자 감동을 받는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휴학을 결심한 빙그레. (사진=응답하라 1994)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휴학을 결심한 빙그레. (사진=응답하라 1994)

대학교를 다니다 보면 휴학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에 “거, 휴학 한 번한 걸로 되게 유난이네” 했더니, 그 시절에는 군휴학을 제외하고 휴학하는 것은 엄청난 걱정거리였다고 옆에서 엄마가 알려줬다. 요즈음의 청춘은 그렇지 않다. 물론 군휴학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지만 쉬고 싶어서, 혹은 취업 준비로 한 번쯤은 휴학 신청서를 낸다.

군대 때문에, 취업 때문에 그리고 쉬고 싶어서 휴학계를 낸 휴학생들 만나 평소 휴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 물어보았다. 그들은 휴학생활에 대해 “대학을 다니면서 한 번 쯤은 해볼만한 것 같다”고 답했다. 휴학 기간 동안 자신의 역량과 기량을 높이거나 취업 준비를 하거나 쉬면서 나름의 삶을 살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Q. 휴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임성준(가명·25) : 지난 4학년 1학기에 많은 회사에 지원을 했었는데 서류 전형에서 탈락했고, 취업을 하기에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해 휴학을 결심하게 됐다. 

원지혜(23) : 동기랑 함께 휴학을 신청해 자격증도 따고 학원도 다니며 자기계발에 힘쓰는 계획적인 시간을 보내려고 했는데 동기가 편입의 길을 걸으면서 혼자 휴학을 하게 됐다. 동기의 편입한 소식을 들었지만 굳이 휴학을 취소하지는 않았다. 휴학 신청 시기(3학년과정을 마친 후)가 시의적절했던 것 같고 복학하면 전공과목이 머리에 안 들어올 것 같아서다.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기보다는 3년 동안 토익을 준비하지도 않았고 자격증도 없기에 시간이 비면 뭐라도 할 것 같아서 휴학을 했다.

안정언(23) : 가장 큰 이유는 군휴학이다. 쉬고 싶기도 해서 휴학계를 냈고, 전공이 국어국문학인데 졸업 후에 무엇을 해야 할지 진로에 대한 고민도 있어서 쉬면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휴학했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휴학한 임모 군. (사진=임 군 제공)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휴학한 임성준 씨. (사진=임 씨 제공)

Q. 휴학 신청서를 낼 때 당시의 심정은?

: 학교를 계속 못 다녀 섭섭하기도 했지만 나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단계이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휴학 신청서를 제출했다.

: 호들갑 많이 떨며 신청했다. 신청하는 순간을 동기랑 같이 영상통화를 하며 SNS로 생중계까지 했다. ‘클릭 한 번으로 나는 쉰다’하는 희열감에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랑도 했다.

: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떨렸다. 신청을 누르면서도 휴학해도 되는 시기가 지금(3학년 1학기 여름방학)이 맞나 싶기도 하고 온라인으로 신청하면서 처리가 잘 된 건지 불안하기도 했다.

Q.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휴학 소식을 알리면 집안사정이 좋지 못하거나, 사고를 쳤거나 둘 중 하나였다고 한다. 휴학 소식을 알린 후 주변인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 취업하기 워낙 어려운 시대라서 그런지 휴학을 한다고 말하면 대부분 취업 준비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과거에는 ‘졸업이 곧 취업이다’라는 인식이 있어서 그런지 빨리 졸업하는 걸 선호했지만 요즘은 졸업을 해도 취업이 보장되지 않고 오히려 취업하는 데 있어서 졸업예정자가 졸업생보다 조금 더 유리한 위치에 있을 수 있다. 휴학은 취업에 있어서 어느 정도 필수적인 선택이 된 것 같다.

: 아직도 ‘왜?’라는 반응이 많은 것 같긴 하다. 휴학하고서 뭐 하게?’하는 질문이 따라붙었다. 부모님께서는 휴학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너의 시간 네가 알아서 해라’하셨는데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빨리 졸업하지 굳이 왜 휴학했냐’고 하셨다. 어른들에게는 아직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 반면에 스트레이트(휴학을 하지 않고 졸업하는 것)로 학교를 다니는 동기들은 휴학생을 부러워하는데 여유가 있어서 휴학한다고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 놀라거나 걱정하는 사람은 없고 ‘군대 가?’라고 묻는 지인이 대부분이었다. 부럽다며 본인도 쉬고 싶다고 말하는 동기가 일부 있었다.

Q. 휴학 계획과 실제로 맞이한 휴학은 어땠는지?

: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느라 매일이 시험 기간 같다. 휴학하고 두 달 간은 공시학원에 다니다가 현재는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며 더욱 바쁘게 살다 보니 학교를 다니던 때가 좋았다고 생각한다. 강남역에 있는 공시학원에 다녔는데 아침에 등원하다가 학원 바로 아래 있는 클럽에서 사람들이 술 취해서 나오는 걸 보고 씁쓸했다. 누구는 공부하러 아침 일찍 나왔는데, 저 사람들은 놀다가 이제야 집에 간다는 생각에 부럽기도 했다. 강남역의 학원과 클럽이 공존해 있는 풍경이 참 대조적이고 비극적으로 다가왔다.

휴학 후 미국 여행을 다녀온 원모 양. (사진=원 양 제공)
휴학 후 미국 여행을 다녀온 원지혜 씨. (사진=원 씨 제공)

: 동남아권으로만 여행을 다녔기에 휴학을 하면 아예 멀리 다른 대륙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또 아르바이트를 하며 착실하게 돈을 모으겠다고 계획했다. 자격증으로는 한국사와 컴활 1급을 따려고 했는데 (컴활 1급 시험의) 실체를 알고 ‘아, 1급은 아무나 따는 게 아니구나’하며 물러섰다. 막상 휴학해 보니 처음에는 일부러 동기가 다 등교할 시간까지 늦잠도 자며 휴학이라는 걸 체감하기 위해 애를 썼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방학의 연장선 같은 느낌이다. 알바를 하는 나름의 일정이 있어서 여유 시간이 많지도 않았다.

휴학 중에도 혼자만의 기준으로 방학과 학기 중을 구분해 생활했다. 휴학 1학기에는 계획한 미국/캐나다 여행비용 마련을 위해 분식집과 유아영어교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보냈다. 방학으로 계획한 6월~8월에는 여행을 많이 다녔다. 지방에 있는 친구들을 많이 만나고 여행도 다니느라 알바를 하면서 벌었던 돈을 가장 많이 썼던 시기다.

원모 양은 유아 영어교실 아르바이트를 통해 여행 비용을 마련했다. 요즘은 다양한 경험을 위해 휴학을 결심하는 이들이 많다. (사진=원 양 제공)
원 씨는 유아 영어교실 아르바이트를 통해 여행 비용을 마련했다. 요즘은 다양한 경험을 위해 휴학을 결심하는 이들이 많다. (사진=원 씨 제공)

미국문화를 좋아했기에 미국여행도 다녀왔다. 영문과에 재학 중인 친구가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들어가기 전에 같이 미국 동부 여행을 하자고 해서 냉큼 수락했다.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나라를 갔다 오니 귀국 후 영화나 드라마를 봤을 때, 가 본 곳들이 눈에 보여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미국은 세계적으로 영향력 큰 나라다 보니 갔을 때 느껴지는 포스가 남달랐고, 식견을 넓힐 수 있는 경험이었다.

: 휴학하고 계획한 것은 제일 먼저 의경 시험 합격, 여행 다니면서 경험 쌓기, 충분한 안정적인 휴식이었다. 막상 휴학해보니 휴학은 딱 1년 정도면 적당한 것 같다. 계속된 의경시험에 낙방하며 휴학기간이 늘어졌는데 1년 이상으로 길어지니 학업 분야에 무뎌지고 아무런 생각도 없어졌다. 여행의 경우 계획했던 대로 부산, 경주, 광주, 대구, 울산, 제주 등 전국 방방곡곡을 기차와 버스로 다니며 친구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여행을 다니며 처음 먹어보는 음식도 많았고, 내가 좋아하는 것,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는,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휴학 후 국내 여행을 다녀온 안모 군. (사진=안 군 제공)
휴학 후 국내 여행을 다녀온 안정언 씨. (사진=안 씨 제공)

Q. 마지막으로, 미래의 본인이 이번 휴학을 어떻게 기억할 것 같은가?

: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나에게 부족한 것이 ‘인내력’이라는 걸 느꼈고, 이번 휴학은 나의 인내력을 키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 별건 없었지만 즐거웠던 시간. 큰 사건도 별일도 없었지만 매일 친구도 만나고, 안 했었던 운동도 하고 멀리 여행도 가는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휴학했던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 남들보다 휴학 생활이 길었던 것에 대해 조금은 후회할 것 같다. 하지만 휴학 후 많은 여행을 다녀 수필을 쓸 소재도 많아졌고, 나에 대해서 알게 됐다. 전에는 무엇 하나를 고를 때도 고민을 많이 하고 선택하는 것을 어려워했는데, 여행을 다니며 좋고 싫은 것을 알게 됐다. 어느 정도 내면도 단단해지는 시간으로 이번 휴학을 기억하고 싶다.

큰일이 나서, 등록금을 대지도 못할 정도로 가세가 기울어서 어쩔 수 없이 휴학계를 내는 시대는 지났다. 이 시대의 청년들은 나름의 계획과 생각을 갖고 휴학을 한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 지 헤매기도 하고, 잠시 쉬면서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기도 하고, 학기 중에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며 청년들은 자신의 길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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