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수 동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이완수 동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뉴스포스트 전문가 칼럼=이완수] 국회의원님, 검사님, 기자님.

이들은 누가 뭐라고 해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들이다. 대한민국은 이들 세 집단 사람들에 의해 좌지우지된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온 나라를 광기에 빠뜨렸던 최근 몇 달 동안의 조국 전 법무장관 사태를 보면서 이들 세 집단 사람들의 위세와 위선을 새삼 읽게 된다.

하나, 이들은 하나같이 똑똑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이다. 국회의원님. 그들은 명문대학 나와 장차관을 지내고, 고위 판·검사를 지냈으며, 언론인으로 이름을 날리고, 운동권에서 명성을 쌓고, 노동계를 호령하고, 대학강단에서 대학자처럼 행세하던 위세당당하던 사람들이다. 거기에다 돈까지 많다. 어디 가서도 호통을 치는 사람이 바로 국회의원들이다.

검사님. 그들은 그 어렵다는 사법고시 붙어 20대 새파란 나이에 “검사님”(예전에는 “영감님”이라고 불렀다)소리 듣던 사람들이다. 대부분이 소위 SKY대를 나와 엘리트 의식이 남달리 몸에 배어 오만하고, 때로는 거만해 보인다. 죄 없는 사람도 죄를 만들어 잡아들이는 사람이 검사들이다. 어디 무서울 데가 없다.

기자님. 그들이야말로 무소불위이다. 사법고시보다 더 어렵다는 언론고시에 붙어 세상의 모든 것이 마치 자신의 발아래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자기가 쓰고 싶은 것, 말하고 싶은 것 거리낌 없이 해놓고도 누가 (잘못을)지적이라도 하면, “언론탄압”이니,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도전”이니 하는 말로 넘어간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검사도 감히 두렵지 않은 사람들이 기자들이다.

둘, 이들은 늘 국가와 국민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다. 국회의원님. 그들은 말끝마다 “국민의 뜻에 따라~”를 외친다. 심지어 감옥에 들어가면서도 “국민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소리친다. 감옥 가는 자신을 국민이 용서하지 않는다는 말인지, 아니면 죄 없는(?) 자신을 잡아들이는 사법부를 국민이 용서하지 않는다는 말인지 헷갈린다. 여하튼 국민에 살고, 국민에 죽는 사람들이 바로 국회의원들이다.

검사님. 그들이 번질나게 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법과 원칙”, “국민의 안녕과 인권”이다. 그들 말만 들으면 검사야말로 참 기특한(?) 사람들이다. 시민의 안녕을 지켜주는 스파이더맨이 따로 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검사는 그들이 그토록 가엽게 여긴다는 힘없는 국민에게는 서릿발같이 대하면서도, 힘 있고 돈 많은 세도가들에게는 봄바람처럼 대한다. 검사동일체로 명한다는데 누가 감히 가로막을 것인가? 입으로는 국민을 외치고, 뒤에서는 국민을 짓밟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게 검사들이다.

기자님. 그들은 또 어떤가? 어떤 불리한 상황에 놓이면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를 앵무새처럼 되 뇌인다. 억지 주장, 이념적 소견을 밝히고도 모두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란다. 언뜻 국민 입장에서 보면 참 듣기 좋은 말이다. “국민의 이름으로 이 사실을 보도한다”는데, 그것이 좀 틀리면 어떻고, 옳으면 어떤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는데 누가 가상치 않다고 말하겠는가? 거짓도 국민의 이름으로 언명(言明)하는 사람들이 바로 기자들이다.

셋, 이들은 뭔가 성과를 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다. 국회의원님. 그들은 신문에 몇 번 나오고, 방송 카메라에 몇 번 나오는 게 그들이 자랑하는 성적표다. 그들은 민생을 위해 처리해야 할 법안은 산더미처럼 쌓아놓아도 아무 걱정이 안되지만 신문이나 방송에 얼굴 안 나오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다. 그래서 신문기자 앞에서 목청을 높이고, 방송기자 앞에서 삿대질을 한다. 그래야만 신문에 실리고, 전파를 탄다. 그들의 연말 국회활동 성적표는 법안을 몇 건 만들고 처리했는가가 아니라, 신문에 몇 번 실리고 방송에 몇 번 나왔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아무것도 안 하고도 매달 그 많은 세비를 부끄럼 없이 받아간다.

검사님. 그들도 국회의원 못지않게 성과에 집착하는 사람들이다. 죄인을 몇 명 잡아들이는가에 따라 그 잘난 검사들 성적이 매겨진다. 학창시절 늘 우등생이었던 터라 나쁜 성적 받고는 잠을 못 이룬다. 어떻게든지 죄인(?) 많이 잡아들이고, 윽박질러(물론 적법한 절차도 있지만) 그들을 감옥에 보내는 게 좋은 성적 받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거악척결이라는 이름 아래 정치인을, 고위 공직자를, 기업인을, 그리고 명망가를 잡아들이는데 열을 올린다. 피라미급 민생범 보다는 거물 정치기업인을 잡아들여야 자신의 출세를 위해 금상첨화다. 성과주의에 대한 그들의 이런 집착은 집요하다.

기자님. 그들이야 말로 하루하루 성과를 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운명을 타고 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매일 무슨 기사를 몇 건 쓰는가를 놓고, 자동차 경주하듯이 안팎에서 경쟁을 벌인다. 기자의 성적표는 얼마나 빨리, 그리고 메가톤급 특종기사를 건져 올리는가에 달렸다. 기자들이 오보를 내고, 인권을 침해하는 것은 남보다 더 많이 성과를 내야 한다는 욕심이 앞서면서 벌어진다. 기자들의 이런 성과집착주의가 여러 애먼 사람을 죽인다.

넷, 이들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다. 국회의원님. 그들은 겉으로는 국민을 내세우고 애국을 외치지만 안으로는 우리당, 우리파 챙기기에 바쁘다. 그들에게 애국은 자기패의 이익을 앞세우는 일이다. 같은 문제를 놓고도 한번은 이 말, 한번은 저 말 해도 아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여당 때 말 다르고, 야당 때 말 다른 것은 물론이려니와 어제 이 말 했다가, 오늘 저 말하는 사람들이 국회의원들이다. “검찰을 손봐야 한다”고 해놓고 돌아서서는“검찰이 왜 저런 사람 잡아들이지 않느냐”고 호통치며 한 입 갖고 수시로 말을 바꾼다. 철면피가 따로 없고, 카멜레온이 따로 없다. 참 낯 두꺼운 사람들이다.

검사님. 그들 역시 한 입으로 두 말 하는데 있어 2등 하라면 서러워 할 사람들이다. 걸핏하면 세상의 정의와 공정한 법집행을 외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약자 앞에 강하고 권력 앞에 순한 게 영리한 검사들이다. 권력의 사냥개가 되어 이 권력에 붙었다가, 저 권력에 붙으면서도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말로 입에 침이 마르지 않는다. 자신의 출세 앞에 놓인 걸림돌은 법과 정의의 이름을 빌려 가차 없이 심판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바로 검사들이다. 정치검사는 그렇게 괴물로 쑥쑥 자라났다.

기자님. 그들도 두 얼굴을 가졌다는 점에서 국회의원, 검사에 못지않다. 기자들이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떠받는 것이 객관보도요, 진실보도이다. 기자가 사회의 부정부패를 밝히고, 권력을 감시하겠다는데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런 대견한 기자들이 서로 패거리를 나눠 싸움을 벌이고 있으니 정치 물정 어두운 국민으로서는 어리둥절 할 뿐이다. 진보언론과 보수언론이 나뉘어져 치고받고 싸우는 마당에 진실보도, 객관보도가 어디에 자리하겠는가? 말끝마다 사실이 어떻고, 공정이 어떻고, 진실이 어떻고 하면서도 정파적 편싸움에 여념이 없으니 그런 기만(欺瞞)도 없다. 정파적 나팔수가 되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게 기자들이다.

그럼에도 나는 국회의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회의원이 있으니, 수백조원의 국민세금을 주무르는 공무원들의 무능과 부패를 막는다.

나는 검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검사가 있으니, 나쁜 사람 혼내주고 탐욕스러운 정치인, 기업인 잡아들여 세상을 더 밝게 만든다.

나는 기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자가 있으니, 그 잘난 국회의원의 뿔난 행동, 판·검사의 무소불위 행태를 비판하고 일탈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감시한다.

그런데, 잠깐. 나는 국회의원님, 검사님, 그리고 기자님, 이들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미덥지가 않다. 이들이 국민을 위한다는 말은 과연 진심일까? 제발 헛말, 빈말 앞세우지 말고 진심으로 국민을 위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길 바란다.

<프로필>

▲ 동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 고려대 언론학 박사

▲ 헤럴드경제 국제부장

▲ 언론중재위원

▲ 미국 미주리대학 저널리즘 스쿨 수료

▲ 미국 미시간 대학교 방문교수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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