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협력 상징 금강산, 南배제하고 北독자노선
김정은 “기분 나쁜 남측 시설 싹 들어내라”

[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23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 경제협력사업의 상징인 금강산 관광지구에서 남한 측 시설의 철거를 지시했다. 최근 북미협상에서 별다른 진전이 보이지 않고, 남한과의 경협도 국제 제재로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자력갱생’ 노선을 확고히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 금강산관광지구 현지시찰. (사진=노동신문 캡쳐)
김정은 위원장, 금강산관광지구 현지시찰. (사진=노동신문 캡쳐)

이날 정성장 세종연구소 기획본부장은 <뉴스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대북 제재와 남북경색 장기화에 대비해 금강산 관광지구에서 남한의 흔적을 지우려 하고 있다”며 “앞으로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어도 더 이상 남북협력사업의 상징이 되기 어렵겠다”고 전망했다.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의 관영 언론은 이날 김 위원장이 금강산 일대 관광시설을 현지지도하고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하여 싹 들어내도록 하고 금강산의 자연경관에 어울리는 현대적인 봉사시설들을 우리 식으로 새로 건설하여야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은 금강산 시설에 대해 “민족성이라는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건축미학적으로 심히 낙후됐다”, “관리가 되지 않아 남루하기 그지 없다”는 등 불만을 쏟아냈다. 특히 김 위원장은 “(금강산 관광은) 손쉽게 관광지나 내어주고 앉아서 득을 보려고 했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이라면서 “땅이 아깝고 국력이 여릴 적에 남에게 의존하려 했던 선임자들의 의존 정책이 매우 잘못되었다”고 말했다. 이는 과거 정권의 업적을 ‘선대의 유훈’이라며 떠받들던 북한의 태도와는 정 반대다. 금강산 관광은 김 위원장의 부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추진한 대표적인 남북경협 사업인데 이를 비판한 것.

김 위원장은 금강산이 ‘북한 땅’임을 강조하면서 금강산 관광은 향후 남북 관계와 상관없이 추진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지금 금강산이 마치 북과 남의 공유물처럼, 북남관계의 상징, 축도처럼 되어 있고 북남관계가 발전하지 않으면 금강산 관광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고 잘못된 인식”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금강산 관광지구 총개발계획을 새로 수립하고 고성항 해안관광지구, 비로봉 등산관광지구, 해금강 해안공원지구, 체육 문화지구 등으로 구성된 관광지구를 3∼4단계 별로 건설할 것을 지시했다. 북한은 각 지구마다 호텔과 여관, 페넬 숙소(고급 별장식 숙소), 골프장 등 시설을 구축하고 인접한 곳에 비행장과 관광지구까지 연결되는 철도를 건설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정 본부장은 “김정은이 금강산 관광지구를 삼지연군,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 양덕군 온천관광지구와 유사한 형태로 재개발하려 하는 것 같다”며 “인접 군에 관광 비행장까지 건설하겠다는 것은 중국인 관광객의 접근성을 높이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삼지연군,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 양덕군 온천관광지구 등은 김 위원장이 핵심 관광지구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사업이다. 백두산 초입에 자리 잡은 삼지연군은 지난 2015년부터 김 위원장의 특별 지시로 한창 개발 중이고, 원산갈마·양덕지구 역시 자주 시찰을 나가며 신경을 쓰고 있다.

현재 금강산 관광은 지난 2008년 박왕자 씨 피 살사건 이후 10년 넘게 전면 중단된 상황. 여기에 유엔 안보리 제재로 관광 재개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은 마냥 제재 완화를 기다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게다가 북한 국가관광총국에 따르면, 지난해 방북한 외국인 관광객은 20만 명을 넘어섰는데 이 중 중국인이 90%에 달한다. 만약 중국 관광객의 금강산 접근성을 높인다면 더 많은 관광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한편, 금강산 관광 재개를 준비하고 있던 현대아산은 당혹스러운 눈치다. 현대아산 측은 공식 보도문을 내고 “관광 재개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보도에 당혹스럽지만 차분히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남측 시설 철거 계획은 ‘남측과 협의해 진행하라’고 말한 것에 대해 현대아산 관계자는 “북측으로부터 받은 연락은 없다”고 본지에 밝혔다.

정부는 북한의 의도와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파악 중에 있다.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북측이 요청을 할 경우에 우리 국민의 재산권 보호, 남북 합의 정신, 금강산 관광 재개와 활성화 차원에서 언제든지 (북측과) 협의할 계획”이라며 “북한의 보도매체를 통해서 관련된 의견들이 나왔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북측의 의도와 구체적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