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뉴스포스트 전문가 칼럼=온기운] 정부가 밀어붙인 ‘소득주도 성장’의 불량한 성적표가 경제성장률 통계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이 24일 발표한 올해 3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0.4%를 기록했다. 지난 1분기 마이너스 0.4%에서 2분기에는 1.0%로 성장률이 회복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번에 다시 0.4%로 내려앉았다. 남은 4분기에 성장률이 최소 0.97%를 기록하지 않는한 연간 성장률 2% 달성도 불가능하게 된다. 연간 성장률 1%대는 10·26 사태 및 2차 오일쇼크 파동 직후인 1980년(-1.7%),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5.5%),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0.8%) 이후 최저 수준이다.

문제는 과거에는 대내외 단기 충격으로 성장률 쇼크가 발생했지만, 지금은 만성적인 수요 부진 속에 저물가 저금리의 악령까지 따라붙으면서 장기불황 조짐이 농후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장기불황 국면에 진입했던 1990년대 초 일본 경제와 흡사한 양상이다. 경기사이클을 나타내는 동행지수순환변동치는 이미 2017년 9월부터 2년 이상 장기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다.

민간의 활력이 죽다시피 한 상황에서 정부가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성장률을 높이고 일자리를 만들려고 하는 정부주도형 정책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정부가 올 8월까지 재정을 77.4%나 집행했지만 성장률이 급락하고, 30~40대를 중심으로 취업자 수는 계속 줄고 있다. 3분기 성장률 0.4% 중 정부 소비 기여도가 절반(0.2%포인트)이나 됐지만 재정 여력이 소진돼 4분기는 암울하다.

정부는 내년 513조원의 수퍼 예산을 편성하는 등 재정지출의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2일 국회본회의 시정연설에서 “재정이 대외 충격의 파고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경제의 활력을 살리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경제협력개빌기구(OECD)가 최근 한국의 재정지출 확대를 권고하고 있는 데 고무돼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국제기구들이 우리의 재정 지속가능성을 얼마나 감안하고 있는지 솔직히 의문이 든다. 우리의 국가채무 증가속도는 최근 들어 매우 가팔라지고 있다.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아직은 40%대 언저리로 OECD 평균보다 낮다고 하지만 일반정부가 아닌 공기업 등 공공부문의 우발채무(유사시 국가가 대신 갚아줘야 할 채무)까지 포함하면 이미 위험 수준이다. 초저출산고령화까지 감안하면 지금 여유가 있다고 재정지출을 남발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미래 세대야 어떻게 되든 말든 일단 지출해보자는 식의 접근은 ‘세대 이기주의’다.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일본이 경기를 살리겠다고 재정지출을 남발함으로써 국가채무 비율이 1990년대초 40%대에서 220%로 급등한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정부주도형 정책을 포기하고 민간의 활력을 살리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소득주도성장 정책부터 과감히 버려야 한다. 정부가 서민의 지갑을 두툼하게 해주겠다며 2년간 29%나 올린 최저임금이 경제의 병을 깊게 하고 있다. 고임금을 견딜 수 없는 한계기업들이 도산하거나 해외로 탈출하고, 임시직 일용직을 중심으로 취약계층의 일자리가 급감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소득주도 성장 90%는 성공”이라고 밝히는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홍보하는데 열심이었다.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2018년 하반기 이후에는 그 효과가 분명히 나올 거라고 확신한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경제가 급전직하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 대외 탓만 하고 있다.

지금도 정부는 애매모호한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혁신성장’과 ‘공정경제’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민간의 자율과 창의가 전제돼야 할 ‘혁신성장’과, 정부의 규제와 시장개입이 필요한 ‘공정경제’라는 이율배반적인 목표를 내걸었다. 속성상 어느 쪽을 강조하면 다른 쪽은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자동차에 비춰보면 우측 깜빡이와 좌측 깜빡이를 동시에 켜고 있는 셈이다. 현 정부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하겠다고 하니 시장은 헷갈려 하고 있다. 분양가 상한제와 건설투자 활성화 두 가지를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것도 모순이다.

잘못되고 모순된 정책을 과감히 정리해 시장에 분명한 시그널을 줘야 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정책은 경제의 비효율성과 불확실성을 높여 경제를 더욱 얼어 붙게 만들 뿐이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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