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판이었다. 1987년 봄의 4·13호헌조치는 무지로 인한 무모한 결단이었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린 제5공화국 헌법의 수호자는 그해 시월 새 헌법을 공포해야 했다. 1987년 공포된 헌법은 제32조 1항에 대한민국 헌정사 최초로 ‘최저임금제 시행’을 명문화했다. 근로자의 고용 증진과 적정임금 보장에 대한 국민적 열망과 시대정신을 담은 것이다.

범인은 정치일까, 경제일까, 사회문화적 계층에 따른 관점의 차이일까. 87년 시대정신이었던 최저임금제가 지금은 동네북이 됐다. 보수와 진보, 사용자와 근로자, 중장년과 청년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저마다 다른 이유로 최저임금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최저임금제라는 난제는 몇 차 방정식인지 모를 정도로 수많은 변수들을 씨줄과 날줄로 엮은 모양새다.

<뉴스포스트>는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의 삶을 통해 최저임금제가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지 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살펴보고 우리 사회가 최저임금제라는 헌법 정신을 계승하는 합리적인 방안을 5회에 걸쳐 모색해보고자 한다. - 편집자 주

[뉴스포스트=홍여정 기자] 최저임금 인상은 전 세계적으로도 뜨거운 논쟁거리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최저임금을 시행하는 국가에서는 인상률을 두고 노동계와 재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상을 보인다. 주요 쟁점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을 늘려 소비를 활성화하는 효과가 있다는 주장과 인건비 부담이 증가한 기업들이 고용을 축소하는 부작용이 더 크다는 주장이 맞선다.

 

지난 7월 최저임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는 김상조 정책실장 (사진=뉴시스 제공)
지난 7월 최저임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는 김상조 정책실장 (사진=뉴시스 제공)

이렇듯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보니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평가도 극과 극으로 나뉜다. 지난 7월 최저임금 1만원 공약 철회에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문을 발표하던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의 발언이 이를 잘 드러낸다.

당시 김 실장은 “지난 2년간 최저임금 인상 기조는 표준적인 고용계약의 틀 안에 있는 분들께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 분명하다. 저임금 노동자 비중이 감소하는 등 임금 격차가 축소되고, 상시 근로자 비중이 늘어나는 등 고용 구조 개선도 확인할 수 있다”고 최저임금 인상 정책의 효과를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표준적인 고용계약의 틀 밖에 계신 분들, 특히 경제적 실질에서 임금노동자와 다를 바 없는 영세자영업자와 소기업한테 큰 부담이 되었다는 점 역시 부정할 수 없을 것”이라며 임금 인상 부작용을 인정했다.

양분된 평가에도 정부가 결국 ‘최저임금 속도조절’이라는 카드를 선택한 것은 소상공인들이 겪는 부담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앞서 본지는 소상공인과 근로자들을 만나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올라가면서 겪은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 경영자와 근로자 모두 지금 느끼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이 모두 최저임금 때문은 아니지만 급격한 인상 탓에 힘들다는 것과 이미 인상되어 피해가 발생한 상황에서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문제는 ‘어떻게’ 소상공인들의 부담을 해결할 것이냐다. 이미 인상된 최저임금을 과거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 남은 것은 임금 지불 능력이 딸리는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최저임금을 ‘차등지급’하는 안과, 정부가 소상공인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 등이다.

이에 이번 기획에서는 주요 국가의 최저임금제를 살펴보며 국내에 적용할 수 있는 방안들이 있는지 알아보고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 지원정책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봤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 ‘최저임금 차등지급’ 해외는 지금

최저임금 차등지급은 임금인상이 급상승했던 지난 2017년부터 경영계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하던 사안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최저임금 차등지급은 최저임금법 제4조 1항에 그 근거가 있다. 최저임금법에는 ‘최저임금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하여 정한다. 이 경우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해 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제를 시행한 지난 1988년 이후 최저임금을 업종별이나 지역별로 차등지급한 적은 없다.

해외 사례의 경우는 어떨까. 일각에서는 선진국에서 대부분 최저임금 차등 지급을 도입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최저임금 차등 지급이 선진국의 일반적인 추세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먼저 미국, 캐나다, 일본, 호주 등 주요 국가에서는 현재 지역별·업종별·연령별로 최저임금을 차등 지급하고 있다. 일본을 제외하면, 각 지역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연방제 국가가 대체로 최저임금 차등 지급을 도입하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조사한 ‘주요 국가 최저임금제도’에 따르면 미국은 앨라바마,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사우스캐롤라이나, 테니시 등 5개 주(연방법 적용)를 제외한 45개 주 및 워싱턴 DC는 연방법 수준과 같거나 상회하는 주 최저임금법령을 별도로 가지고 있다. 여기에 20세 미만 근로자에게는 고용 후 최초 90일간 연소자 최저임금이 적용된다.

캐나다는 연방 최저임금이 없으며 주(州)별로 최저임금을 정하며 주별로 결정방식이 다르다. 온타리오주에서는 청소년, 주류서빙, 사냥·낚시 가이드, 재택 근로자 등을 특례대상으로 정해 차등 지급하고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최저임금제도를 도입한 호주의 경우 연방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연령별, 업종별, 숙련도별로 차등 지급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일본은 지역별로 최저임금을 정하며 산업별로 차등 지급하고 있다. 중앙정부에서 일정한 최저임금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 심의회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산업별로도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 가능하지만, 애초에 지역별 최저임금보다 ‘높은 수준’의 최저임금을 정할 때만 노사가 신청해 설정한다. 특정 산업군에서 최저임금을 깎기 위해 도입된 게 아닌 셈이다.

단일 최저임금을 적용하지만, 연령이나 숙련도에 따라서 최저임금을 차등 지급하는 나라도 있다. 선진국으로 따지면 지역별·업종별 차등 지급보다 연령·숙련도에 따라 최저임금을 차등 지급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더 많다.

영국은 25세를 기점으로 21세~24세, 18~20세, 16~17세 별로 최저임금이 차등 적용된다. (사진=홍여정 기자)
영국은 25세를 기점으로 21세~24세, 18~20세, 16~17세 별로 최저임금이 차등 적용된다. (사진=홍여정 기자)

네덜란드는 15세~21세 근로자가 성인에 비해 30~85%의 최저임금을 적용받고, 고령의 연금생활자와 장애인 등은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않는다. 영국도 25세를 기점으로 21세~24세, 18~20세, 16~17세 별로 최저임금이 차등 적용되고, 그리스는 근속 기간과 결혼 여부에 따라 최저임금이 다르다. 칠레는 18세 미만 근로자와 65세 이상 근로자에게는 최저임금의 74.6%가 적용된다. 이 외에 벨기에, 아일랜드, 뉴질랜드, 파라과이, 이스라엘 등도 연령·숙련도 별 최저임금이 적용된다.

▲ 최저임금 차등 실현가능할까

각국의 경제 상황에 맞게 시행되고 있는 최저임금 차등 적용 정책은 우리나라에서도 경영계를 중심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소상공인 사업체 1204개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 70.9%가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구분 적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한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8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303개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도 대상의 특성에 따른 최저임금 적용이 필요하다는 비중은 64.4%였으며 이 중 업종별로 구분해야 한다는 응답은 90.8%, 규모별 구분 81%, 연령별 구분 37.9%, 지역별 구분은 30.8% 등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다. 무엇보다 중앙정부에서는 최저임금을 차등화하면 사회적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는 우려가 짙다. 지난 8월 2020년 최저임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은 업종별·규모별 최저임금 차등적용에 대해 “5인 미만의 사업장의 임금 수준으로만 보면 훨씬 열악한 상황이라 이들 기업의 지불 능력만 보고 판단하기는 어렵다”며 “우리나라에서는 쉽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지난 4월 중소기업계의 최저임금 차등 적용 요구에 “아닌 건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는 게 맞을 것 같다”며 “최저임금을 업종이나 규모별로 차등화 하는 건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고 못 박은 바 있다.

근로자 측 반발도 거세다. 근로자 측은 업종별로 나눈다는 것은 일에 따라서 최소한의 임금보다 더 낮은 임금을 받아도 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최저임금 제도 자체의 취지를 퇴색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또 업종별 차등 적용은 일부 업종에 저임금의 낙인을 찍을 수 있고 차등 적용의 기준이 될 통계 인프라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서울 시내 한 먹자골목상권 (사진=홍여정 기자)
소상공인이 몰려있는 서울 시내의 한 먹자골목상권 (사진=홍여정 기자)

▲소상공인 지원책 살펴보니

소상공인 지원책은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을 대비해 내놓은 ‘일자리안정자금’이 대표적이다. 일자리안정자금은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른 2018년도부터 지원이 시작됐는데, 사업주에게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일부를 지원해주는 정책이다.

사업 초기 정부는 2조9700억 원의 예산을 편성하고 △30인 미만 사업장 △월 190만 원 미만 근로자 △최근 3개월간 직원을 해고하지 않은 업장 등 기준을 마련했지만, 신청 요건과 절차가 까다로워 현실성 없는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정부는 점차 자격요건을 완화해 현재는 △30인 미안 사업장 △월 210만원 미만 근로자로 기준을 완화했다.

당초 1년 한시적으로 만들어졌던 일자리안정자금은 내년까지 지원책이 이어진다. 다만 지원액은 올해보다 다소 감소하고 지원대상은 확대됐다. 지원 인원은 238만명에서 230만명으로 감소했지만, 월 210만원이던 보수상한액은 215만원으로 늘렸다.

영세 사업장 노동자와 사업주의 고용보험료·국민연금 보험료를 최대 90%까지 지원하는 두루누리사업도 영세상인을 위한 지원책 중 하나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두루누리사업 혜택 인원도 올해 237만명에서 278만명으로 늘렸다. 또 올해만 한시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던 저임금 노동자 건강보험료 지원을 내년에도 유지하기로 했다. 다만 지원 규모는 다소 줄어든다.

정부는 최저임금 차등 적용보다 각종 지원책으로 소상공인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방침이지만 소상공인들은 정부의 지원책을 그다지 체험하고 있지 않는 눈치다. 실제로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 2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소상공인 정치의식 관련 여론조사’를 진행하고 소상공인 81%가 소상공인 관련 정책이 잘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고 지난 7일 밝혔다.

소상공인정책이 반영되고 있다고 답한 이는 1.4%에 불과했다. 잘 모른다는 응답은 7.3%였다. 이번 조사는 전국 소상공인단체 회원 대상 2,831명에게 전화통화를 시도한 결과 514명이 응답한 결과를 토대로 한 것이다. 응답률은 18.2%,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3%p다. 

소상공인연합회 유필선 홍보팀장은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최저임금 인상으로 여러 가지 정부의 지원정책이 있었지만 현장에 일하는 소상공인이 느끼기에는 크게 도움이 된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라며 “일자리안정자금은 4대보험을 가입해야 하는데 소상공인 업종의 특성상 가입률이 매우 낮아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생기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일자리안정자금 등 일시적인 지원책보다는 민간협력을 통해 최저임금 제도 개선, 주휴수당 문제 해결 등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최저임금 지급을 규모별로 차등화해야 한다”라며 “업종으로 기준을 정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5인 미만으로 규정한다면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5인 미만의 소상공인에게 실질적인 대안이 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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