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정기국회와 임시국회는 각 교섭단체의 대표 연설로 시작한다. 교섭단체 대표 연설은 여당부터 의석순으로 진행되고, 약 40여 분간의 발언 시간이 보장된다. 발언 시간이 긴 만큼 연설문도 수십 페이지에 달하고, 가끔은 사전에 배포된 연설문과 실제 연설 내용이 바뀌기도 한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1회국회(정기회) 제8차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1회국회(정기회) 제8차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연설을 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사전 연설문에서 생략한 말이 있다. 문희상 국회의장에 대한 표현이 그것이다. 기존 연설문에는 검찰개혁안 자동 부의 문제를 놓고 고민하던 문 의장에 대해 “집권여당 선대본부장을 자처한다”는 문구가 있었지만, 실제 연설에서는 이 내용이 생략됐다.

나 원내대표가 전략적으로 해당 발언을 생략한 것인지 단순 실수로 잊은 것인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이날 오전 문 의장은 더불어민주당이 주장하던 ‘10월 29일 자동 부의’를 거절하고,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 심사 90일을 꽉 채운 오는 12월 3일 부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실상 바른미래당의 중재안을 받아들인 셈이다.

이에 나 원내대표가 문 의장이 민감해하는 발언을 자제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문 의장은 지난해 국회 교섭단체 연설 때도 당시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가 “블루하우스(청와대) 스피커”라고 비난하자 “국회의장을 모욕하면, 국회의장이 모욕당하면 국회가 모욕당한다는 사실을 명심해 주길 바란다”고 한마디 했다. 국회 본회의 산회 선언을 앞두고 의장이 이례적으로 발언한 것을 두고 문 의장이 ‘울컥’ 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날 나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연설에서 지난 광화문 광장 시위를 ‘10월 항쟁’으로 평가하고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지적했다. 나 원내대표는 “기만, 박탈, 파괴, 이 세 단어 외엔 지난 2년 반의 문재인 정권을 설명할 길이 없다”면서 광화문 시위가 문재인 정부를 심판하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국회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공수처 설치 법안과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공수처와 연동형 비례제는 우리 자유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독재 악법이 될 것”이라고 반대 의사를 분명하게 했다. 그는 “검찰개혁 100% 찬성한다”면서도 “공수처, 기소권과 수사권을 모두 쥐고, 판사, 검사, 경찰 등을 표적 사찰, 협박할 수 있는 대통령 직속의 무소불위 수사기관”이라고 지적했다.

연동형 비례제를 기반으로 한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민주주의의 독소”라고 평가했다. 나 원내대표는 “연동형 비례제를 만들면 우리 국회는 더더욱 갈기갈기 찢어질 것”이라며 “20대 국회의 다당제 실험의 결과는 어떻나. 행정부를 견제하지 못하는 국회, 무기력하고 분열된 국회였다. 연동형 비례제까지 현실화 되면 그야말로 국회는 권력을 쫓아다니는 영혼 없는 정치인들의 야합 놀이터로 전락해버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정시 확대에 대해서는 “한국당은 이미 정시 50% 이상 확대를 당론으로 채택한 바 있고, 입법화를 약속했다”며 “대통령과 여당이 진정 정시확대 의지가 있다면 자유한국당은 조건 없이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조국 전 장관 사태로 인한 정권 위기를 모면하려고 준비도 없이, 부처와의 상의도 없이, 갑작스럽게 정시확대를 대통령이 꺼내들었다. 게다가 2025년 특목고‧자사고 일괄 일반고 전환을 교묘하게 끼워 넣었다”며 “지지층 이탈이 두려운 나머지 서로 모순되는 두 정책을 함께 내놓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나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의 용단을 촉구한다. 대통령이 정치 복원만 결단을 내린다면 자유한국당 역시 적극 화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를 향해서도 “패스트 트랙, 긴급안건조정위 등 여러 장치가 자의적이고도 억지스럽게 해석되고 왜곡되어, 결국 다수의 횡포와 소수당 묵살의 도구로 전락했다. 불법 패스트 트랙 열차를 여기서 멈춰달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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