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원룸촌 방범에도 ‘빈부 격차’ 있다
[르포] 원룸촌 방범에도 ‘빈부 격차’ 있다
  • 이상진 기자
  • 승인 2019.10.30 07: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여성안심귀갓길·CCTV·가로등’ 안심 안 돼
- 경찰도 성범죄 저질러...신뢰가 실종된 세상
- 보증금·월세 비싸도 안전한 신축 원룸 간다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성범죄에 대해 안심하고 살려면 월세를 많이 내야 해요”

<뉴스포스트>가 28일 서울 동작구 흑석동의 원룸촌에서 만난 이들은 원룸촌의 치안에 대해 우려했다. 그러면서 괜찮은 방범 서비스를 제공하는 원룸에 거주하기 위해선 꽤 많은 월세를 내야 한다고 했다. 원룸촌에서 범죄 걱정 없이 살기 위해선 신축 원룸에 살 ‘돈’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왜 원룸촌 거주자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제공하는 방범 서비스를 믿지 못하는 것일까? 권미혁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 동안 서울에서 발생한 주거침입 성범죄의 26%를 관악구와 광진구, 동작구가 차지했다. 이에 본지는 17일 진행한 관악구 대학동 현장 취재에 이어 동작구 흑석동의 원룸촌을 찾아 이야기를 들어봤다.

학생들은 '여성안심귀갓길'이 무용하다고 지적했다. (사진=이상진 기자)
학생들은 '여성안심귀갓길'이 무용하다고 지적했다. (사진=이상진 기자)

▲경찰이요? 얼마 전 사건으로 믿지 못하게 됐어요

오후 2시 30분쯤 흑석동에 자리 잡은 원룸촌을 찾았다. 중앙대학교 정문에서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자, 원룸과 빌라들이 줄지어 늘어섰다. 원룸촌 입구부터 동양중학교까지를 오가며 현장 사진을 찍었다. 낮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지난번 취재한 대학동 원룸촌과 달리 꽤 많은 학생을 원룸촌 골목에서 볼 수 있었다. 중앙대학교가 바로 앞에 있는 까닭이었다.

중앙대학교 간호학과 17학번이라고 밝힌 이경희 씨에게 최근 흑석동 원룸촌 분위기를 물었다. 간호학과 실습으로 새벽 4시부터 집을 나선다는 이 씨는 “신림보다는 나은 것 같지만 제가 사는 원룸도 골목길에 위치해 있는데 가로등이 없어 밤에 무섭다”며 “시험공부 때문에 새벽까지 학교에 있다가 집으로 올 때 뒤에서 터벅터벅 소리라도 나면 식은땀이 나고 가슴이 뛴다”고 말했다.

이 씨는 또 “이른바 ‘여성안심귀갓길’이라고 해놓고는 순찰을 하는 것을 거의 보지 못 했다”며 “원룸촌이 많고 학생들이 많이 거주하는 만큼 서울시나 동작구에서 가로등이라도 설치해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중앙대학교에 재학 중이라고 밝힌 민성(남, 25) 씨도 “동작구의 이쪽은 CCTV가 부족하고 낙후된 지역이 많다 보니 성범죄 등의 염려가 크다”며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불안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 강간미수 혐의로 구속된 A 경사 사례를 언급했다. 지난 7일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단 소속 A 경사는 주거침입과 강간미수 혐의로 구속됐다. 앞서 지난달 11일 새벽 A 경사는 20대 여성을 뒤쫓아 팔을 잡아당겨 여성이 사는 오피스텔 안으로 끌고 들어가려다가, 여성이 저항하자 달아난 바 있다. 해당 장면은 오피스텔 폐쇄회로(CC)TV에 고스란히 촬영됐다.

민성 씨는 “성범죄나 주거침입에 대해선 뉴스도 그렇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듣고 심각하다고 생각한다”며 “요즘 경찰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뉴스를 통해 나오니까, 누구를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중앙대학교에 재학 중인 민성 씨는 오래된 원룸은 1층에도 방범창이 없는 곳이 많다고 했다. (사진=이상진 기자)
중앙대학교에 재학 중인 민성 씨는 오래된 원룸은 1층에도 방범창이 없는 곳이 많다고 했다. (사진=이상진 기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제공하는 CCTV와 가로등의 치안 서비스가 있어도 안심하기가 어렵다는 지적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이희주(가명, 여, 27) 씨는 “그동안 접한 사건 모두 CCTV로 찍혀도 아랑곳하지 않고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보고 CCTV나 가로등이 많아도 별로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고 보호받는다는 느낌도 없다”며 “국가나 사회가 책임져줄 수 없다고 생각해 스스로 보호하고 조심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운영하는 방범 서비스의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범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밤늦게 걷지 않는다고 했다.

경찰의 순찰을 늘리는 방안에 대해서 이 씨는 “얼마 전에도 경찰이 여성을 성추행하고 성폭행을 시도하려고 한 것을 뉴스로 봤다”며 “부모님이 걱정을 하지만, 사실 사람 자체가 무서워서 어떤 방편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흑석동 신축 원룸은 보증금 500만 원, 월세 65만 원 수준이다. 여성들은 비싼 돈을 내더라도 방범을 위해 신축 빌라를 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사진=이상진 기자)
​흑석동 신축 원룸은 보증금 500만 원, 월세 65만 원 수준이다. 학생들은 여성들이 비싼 돈을 내더라도 방범을 위해 신축 원룸에 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사진=이상진 기자)

▲원룸촌 방범도 ‘부익부 빈익빈’

거주하는 원룸의 방범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신축 빌라의 원룸에 거주하는 학생들이었다. 원룸 방범에 대해 우려스럽지 않냐는 질문에 장렬(여, 23) 씨는 “제가 사는 집은 보안시설이 좋은 편”이라고 답했다. 중국 저장성이 고향인 유학생 장 씨는 중앙대학교 인문사회대학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다.

하지만 장렬 씨처럼 한국에 온 유학생들이 모두 신축 빌라에 사는 것은 아니다. 장 씨는 “함께 중국에서 유학 온 친구가 흑석시장 쪽 원룸에 사는데 매일 집에 데려다주고 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친구가 거주하는 부근은 학생이 아닌 남성들이 많이 거주하고 공사도 잦은 편이다.

장 씨는 “친구를 원룸에 데려다줄 때 계속 위아래로 훑어보는 남자들이 있어 무섭다”며 “성범죄에 대해 안심하고 살려면 월세를 많이 내야 한다”고 했다. 주거비용 부담으로 친구는 자신이 거주하는 신축 원룸에 사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는 설명이다.

신축 원룸은 현관 비밀번호 장치 등 여러 보안 시설을 제공한다. (사진=이상진 기자)
신축 원룸은 현관 비밀번호 장치 등 여러 보안 시설을 제공한다. (사진=이상진 기자)

신축 원룸은 현관 출입구 비밀번호 장치와 개인 CCTV, 자체 가로등 등을 제공한다. 장 씨가 거주하는 신축 원룸은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가 65만 원 수준이다.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다소 부담되는 가격이지만 그는 안전을 위해 신축 원룸에 거주한다고 했다.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15학번인 전혜진(가명, 여) 씨는 “여기가 대학가가 가까워 신림보다는 안심이 되지만 그래도 여자들이 범죄에 대한 두려움에 빠져 있다”며 “대부분 친구를 보면 집 구하는 1순위가 보안이 잘 되는지 여부기 때문에 월세가 비싸도 ‘여성 안심 시설’ 등을 내세우는 신축 빌라 원룸을 많이 간다”고 설명했다.
 

▲원룸촌 방범에 ‘체념’하는 청춘, 뚜렷한 해결책 모색 절실

28일 <뉴스포스트>가 흑석동 원룸촌에서 만난 청춘들은 신림동과 대학동 등 관악구보다는 형편이 낫지만, 흑석동 원룸촌의 치안과 방범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성안심귀갓길’이 무용하다거나 ‘경찰도 믿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는 데 체념하고 있었다.

본지는 후속 기사를 통해 원룸촌 방범과 치안에 대한 해결책이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월세’밖에 없는지 전문가들의 제언을 듣고 그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이상진 기자 elangvital@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