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탑승 고속버스 시범...13년 이동권 투쟁 성과
장애인단체 “아직 한계 有”...국토부, 보완해 나갈 것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관련 법이 생긴 지 13년 만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고속버스 일부 구간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장애인 이동권 문제 해결에 한 걸음 다가갔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여전히 한계점이 남아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28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서울 서초구 강남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 광장 앞에서 ‘13년 만의 시작, 고속버스 휠체어 탑승 눈물난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지난 28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서울 서초구 강남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 광장 앞에서 ‘13년 만의 시작, 고속버스 휠체어 탑승 눈물난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30일 이날은 휠체어를 탄 승객들이 고속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 지 사흘째다. 앞서 지난 28일부터 휠체어 탑승 설비를 장착한 고속버스가 3개월 시험 운행을 시작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시범 운행되는 고속버스는 서울↔부산, 서울↔강릉, 서울↔전주, 서울↔당진 간 4개의 노선으로 10개 버스업체에서 각 1대씩 버스를 개조했다. 버스당 휠체어 2대가 탑승할 수 있다. 각 노선에 1일 평균 2~3회 운행된다.

휠체어 탑승 고속버스는 휠체어 전용 승강구와 승강장치, 가변형 슬라이딩 좌석, 휠체어 고정장치 등을 갖추고 있다. 탑승객들은 승강장치를 이용해 탑승한다. 의자를 앞뒤로 밀면서 오른쪽과 왼쪽에 최대 2명이 탑승할 수 있다. 같은 날 서울 서초구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는 시승행사를 열고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직접 탑승하기도 했다.

휠체어 탑승 고속버스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이동권 보장 투쟁 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 장애인 등 교통약자가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해 이동할 권리가 있다는 내용의 교통약자법이 만들어진 것은 2006년. 13년 동안 장애인 인권단체 등 시민사회계는 평등한 이동권을 위해 지하철 내 엘리베이터 설치와 저상버스 전국 100% 도입, 휠체어 탑승 고속버스 마련 등을 주장해왔다.

장애인 단체 등 당사자들은 우선 이번 조치를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휠체어 탑승 고속버스가 장애인들의 일상적인 교통수단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시민단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관계자는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시범 사업 단계라 단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우선적으로 예산 문제가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전동 휠체어를 탄 시민이 28일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휠체어 탑승 설비를 장착한 고속버스에 탑승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28일 전동 휠체어를 탄 시민이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휠체어 탑승 설비를 장착한 고속버스에 탑승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시범사업 시작해도 장애인 차별 남아

전장연에 따르면 올해 시범사업 예산은 13억 4천만 원이지만, 내년도 예산도 이와 비슷한 규모다. 휠체어 탑승 고속버스 시범사업이 시행되기 전에 예산 책정을 했기 때문이다. 전장연 관계자는 “고속버스는 민간사업이라 손실에 민감하다”며 “휠체어 2석을 놓으면 좌석 8석이 빠진다고 한다. 업체에서는 손실 얘기가 나올 텐데, 손실 보조금 등의 예산이 충분히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장애인보다 탑승 준비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되는 점도 문제다. 휠체어 탑승 고속버스를 타려면 출발 3일 전 자정까지 예매를 완료해야 한다. 버스 수도 10대인 데다 휠체어 탑승 보조 승무 사원 인력도 한정적이라 차량과 인력 배치 스케줄을 미리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인력과 차량 부족으로 불편을 겪는 것은 장애인 당사자들이다. 전장연 관계자는 “휠체어 탑승 고속버스도 배차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출발 3일 전에) 미리 예매해야 한다는 게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울러 휠체어 탑승 승객은 고속버스가 출발하기 20분 전 전용 승강구에 도착해야 한다. 전용 승강구에서 휠체어 탑승 승객을 태운 고속버스가 일반 승강구로 이동해 비장애인들을 태우고 출발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버스에 장착된 휠체어 전용 리프트를 이용하려면 승차장에 최소 3m의 여유 폭이 필요한데,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터미널이 이를 갖추지 못했다. 이 때문에 전용 승강구가 마련됐다.

지난 28일 전동 휠체어를 탄 시민이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휠체어 탑승 설비를 장착한 고속버스에 탑승했다. (사진=뉴시스)
지난 28일 전동 휠체어를 탄 시민이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휠체어 탑승 설비를 장착한 고속버스에 탑승했다. (사진=뉴시스)

전장연 관계자는 “휠체어 탑승 승객의 탑승 시간은 보통 5분 정도다. 이마저도 지원 인력만 충분하면 이 정도로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라며 “휠체어 탑승 승객만 출발 20분 전에 전용 탑승구에 도착해야 한다는 것은 명백한 장애인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터미널 내 승강구 환경이 개선돼야 하고, 관련 인력이 보충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선이 서울에서 부산 등 4개로 한정된 점도 한계점으로 남아있다. 그는 “휠체어 탑승 고속버스 노선은 서울에서 당진까지 가는 노선을 제외하면, 모두 KTX 역이 갖춰진 곳이다”라며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열차가 다니지 않는 지역에 고속버스 노선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주장해 왔는데,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KTX가 다니지 않는 지역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의 고속버스 수요가 더 높을 거라 생각하는데, 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예산 문제의 경우 기획재정부에 요청을 많이 해왔는데, 기획재정부에서는 사업 실적 등도 검토한다”며 이 때문에 예산 증액이 당장은 쉽지 않을 거라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면서도 “내년에 예산이 부족할 경우 기획재정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비장애인 승객보다 휠체어 탑승 승객이 고속버스 예매나 탑승에 더 불편을 겪는 문제에 대해서는 “고속버스 사업체의 협조가 필요해 문제점을 당장 개선하는 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해당 관계자는 “현재 (시민사회계 등) 여러 단체와 상시적 회의를 하고 있고, 이들의 요구 사항을 체크하고 있다”며 “시범 운행 3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 문제점들을 개선해 나갈 방침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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