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선 전 연합뉴스 논설위원실 실장

[뉴스포스트 전문가 칼럼=이도선] 정치가 국민을 실망시키곤 하는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국회의원을 늘리자는 주장이 또다시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27일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국회의원 정수를 300명에서 330명으로 10% 확대하자고 제안한 게 발단이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즉각 발끈했지만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대안신당(가칭)은 쌍수로 환영하는 모양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의원 증원에 반대하는 의견이 70%를 훌쩍 넘는다.

군소 정당들의 의원 정원 확대 요구는 숙원인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어떻게든 관철해 보려는 속셈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군소 야당은 당초 의원 정원은 동결하되 253명과 47명인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을 225명과 75명으로 바꾸자며 이름도 생소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들고 나왔다. 비례대표가 28석 늘어나는 대신 지역구가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 핵심으로, 군소 정당들의 의석이 현재보다 늘어나는 구조로 짜였다.

하지만 연동형은 셈법이 워낙 복잡해 일반 유권자는 물론 전문가들조차 이해하기 힘들다는 비난이 빗발친 데다 상대적으로 지역구 감소폭이 큰 민평당의 반대가 변수로 등장했다. 심 대표가 기존의 동결 약속을 깨고 증원으로 말을 바꾼 것도 늘어나는 30석을 비례대표로 돌리면 이 같은 반발을 무마할 수 있어서다. 민주당은 심 대표의 제안에 일단 선을 그었지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을 밀어붙이려면 군소 야당과의 공조가 불가피해 마냥 반대할 수만도 없는 어정쩡한 처지다.

여론은 의원을 오히려 줄이라는 쪽이다. 300명은커녕 200명도 많으며 비례대표는 아예 없애자는 의견도 적지 않다. 미국은 인구가 9000만 명이던 1911년 535명(상원 100명, 하원 435명)으로 책정한 의원 정원을 인구가 3억3000만 명으로 불어난 지금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의원 1인당 인구가 우리의 3.6배나 되고 비례대표제를 채택하지도 않았지만 우리 정치권이 주장하는 것처럼 정치 신인 발굴이나 대표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좀체 나오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비례대표제는 원래 취지에서 벗어나 권력자의 ‘자기 사람 심기용’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선거 때마다 듣도 보도 못하던 사람이 비례대표 당선권 순위에 떡하니 들어앉는 사례가 비일비재한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도 돌보라는 민생은 돌보지 않고 당리당략 차원에서 의원 정원을 늘리는 정치공학적 접근에만 매달린다면 국민적 지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국민을 바보로 알지 않는다면 ‘의원증원론’은 당장 철회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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