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한달전부터 개 구충제인 펜벤다졸을 찾는 손님들이 엄청나게 많아졌어요. 구청에서도 펜벤다졸 판매에 유의해달라는 공문까지 보낼 정돕니다”

펜벤다졸 성분이 있는 개 구충제 파나큐어. 서울 잠실에 위치한 한 동물병원 원장은  “최근 펜벤다졸을 찾는 손님이 급격하게 늘었다”고 말했다. (사진=김혜선 기자)
펜벤다졸 성분이 있는 개 구충제 파나큐어. 서울에 위치한 한 동물병원 원장은 “최근 펜벤다졸을 찾는 손님이 급격하게 늘었다”고 말했다. (사진=김혜선 기자)

4일 서울 한 동물병원의 권 모 원장은 펜벤다졸에 대해 묻자 이같이 말했다. 권 원장은 펜벤다졸을 찾는 <뉴스포스트> 취재진에 “어떤 용도로 쓰시느냐”고 자세히 물은 뒤 최근 약물 오남용 우려가 짙어지면서 구충제를 ‘한 알’씩만 판다고 했다.

개 구충제의 일종인 펜벤다졸은 암 말기 환자에게 ‘기적의 항암제’로 불린다. 국내 암 환자 커뮤니티에서도 펜벤다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동네 동물병원까지 개 구충제 품귀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 펜벤다졸 신드롬은 지난 9월 유튜브에서 ‘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내용이 퍼지면서 시작됐다.

문제의 유튜브 내용은 이렇다. 미국의 말기암 환자 조 티펜스라는 사람이 수의사의 권유로 펜벤다졸을 3개월간 복용했더니 암이 깨끗이 사라졌다는 것. 이러한 내용은 조 티펜스의 개인 블로그에도 자세히 나와 있다.

조 티펜스가 말기암 선고를 받은 것은 지난 2016년 8월이다. 당시 그는 소세포암 말기를 진단받았고, 이듬해 1월 목과 오른쪽 폐, 복부, 간, 방광, 콩팥, 꼬리뼈까지 전이됐다. 의료진은 조 티펜스의 생존율이 1% 미만이라며 3개월의 시한부 선고를 내렸다고 한다. 조 티펜스는 마지막 희망으로 임상시험에 참여했다.

그런데 조 티펜스는 한 수의사로부터 개 구충제인 ‘펜벤다졸’을 복용해보라는 권고를 들었다. 이 수의사는 ‘뇌암으로 4기 판정을 받은 또다른 수의사가 동물실험 도중 펜벤다졸이 항암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가 자포자기 심정으로 구충제를 복용하자 6주 만에 암이 나았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이에 조 티펜스는 그해 1월 셋째주부터 펜벤다졸을 복용하기 시작했고, 3개월 만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펜벤다졸에 항암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는 유명 학술지인 네이처(Nature) 자매지 격인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관련 논문이 지난해 8월 실렸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해당 논문은 펜벤다졸이 암세포를 성장시키는 물질을 차단시켜 암세포의 발현과 증식을 억제해주는 식으로 작용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또 암세포 분열 자체를 방해해 암세포의 성장도 억제해준다는 내용이다.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실린 펜벤다졸 관련 논문. (사진=사이언티픽 리포트 캡쳐)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실린 펜벤다졸 관련 논문. (사진=사이언티픽 리포트 캡쳐)

그러나 전문가들은 해당 논문이 사람을 대상으로한 실험이 아닌, 세포 단위의 실험이기 때문에 ‘펜벤다졸이 암에 효과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식품의약안전처에서도 지난달 28일 대한암학회와 함께 보도자료를 내고 “펜벤다졸을 암환자에게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식약처 관계자는 “항암제는 개발과정에서 일부 환자에게 탁월한 효과를 나타내더라도 최종 임상시험 결과에서 실패한 사례가 있으므로 한두 명에서 효과가 나타난 것을 약효가 입증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며 “펜벤다졸은 최근까지도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결과는 없으며, 오히려 간 종양을 촉진시킨다는 동물실험 결과 등 상반된 보고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펜벤다졸이 고용량·장기간 복용 시 간에 무리를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식약처는 “전문가들에 따르면 구충 효과를 나타내는 낮은 용량에서는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지만, 항암효과를 위해 고용량으로 장기간 복용할 경우 혈액, 신경, 간 등에 심각한 손상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말기 암 환자들은 식약처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눈치다. 회원수 약 10만 명의 한 암카페에서는 하루에도 5~6건의 펜벤다졸 관련 글이 올라오고 있다. 이들은 펜벤다졸 복용을 자제하라는 정부 권고에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왜 마지막 시도까지 안 된다고 하느냐”는 반응이다. 한 회원은 펜벤다졸 복용에 대해 “배신당한 항암약은 버리고 실같은 희망을 잡아보려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오히려 펜벤다졸에 대한 논문을 자세히 연구하고 부작용도 세세히 따져보는 등 ‘합리적으로’ 펜벤다졸을 복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많은 전문가들의 만류에도 암 환자들이 펜벤다졸에 희망을 거는 이유는 무엇일까. 본지는 펜벤다졸의 ‘셀프 임상실험’에 도전한 한 암환자를 얘기를 들어봤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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