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서양 사유의 접점에서 핀 불꽃, 작품으로 표현하고 싶어
- 다원주의적이고 대중적인 한국화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수
- 한국화에서 큰 획을 긋는 인물로 성장하는 게 최종 꿈
- 국내 관심부터...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 한국화 포함했으면

평생직장이란 단어는 곰팡내 나는 책을 뒤적여야 찾는 빛바랜 훈장 닦는 소리가 된 지 오래다. 직장이 아닌 직업을 말하는 시대. 본지는 일찍이 자신의 업을 찾은 청년장인들을 만나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불교 선지식은 진리에 대한 가르침을 줘요. 거기서 예술적 영감을 얻죠. 노장사상도 마찬가지예요. 아, 제 세례명은 베로니카고요. 성당 다녀요.”

한국화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수다. 태생적으로 사실주의와 인연이 없어 전위(前衛)적이다. 작가는 수묵화로 내면세계를 가다듬고 채색화로 사바세계의 욕망을 칠한다. 그런 까닭으로, 수묵화는 먹먹하고 채색화는 할할하다.

청년 작가 이선진의 한국화는 유별나다. 그의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나온 선대의 지적 유산은 붓끝에서 해학과 풍자, 욕망으로 흘러 한지를 물들인다. 부처와 원효, 노자와 장자, 예수와 모세의 사유가 한데 뭉쳐 한 폭의 회화로 재해석된다. 구조주의적 유산이 그를 거치면 탈구조주의적 작품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을 맞는다.

<뉴스포스트>는 4일 해외 개인전과 외국인 대상 회화 수업으로 한국화를 알리고 있는 청년장인 이선진을 만나 그의 작품세계와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서울시 마포구 홍익대학교 서울캠퍼스 인근의 이선진 작가의 화실 ‘NETI7’에서 진행했다.

한국화가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수라고 설명하는 이선진 작가. (사진=이상진 기자)
한국화가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수라고 설명하는 이선진 작가. (사진=이상진 기자)

▶한국화라고 하면 어느 시대부터로 보나.

“작가마다 다를 수 있지만 나는 한국화의 시대적 배경을 조선 시대 초기부터라고 본다. 조선 이전까지는 중국화와 거의 구별되지 않았다. 한국화가 자신만의 색을 가진 시기는 조선부터다. 분류로는 수묵화와 채색화로 나뉜다. 수묵화는 묵으로만 그리는 산수화를 말하고 채색화는 민화를 말한다.”

▶중국화, 일본화 등 다른 동양화와 구별되는 한국화만의 특징이 있나?

“한국화만의 특징은 채색화인 민화에서 잘 드러난다. 수묵화, 산수화 쪽에선 중국화와 구별되는 점이 별로 없다. 중국과 한국은 역사가 비슷하게 흘러갔지 않나? 일본화에도 한국화의 민화에 해당하는 ‘우키요에’라는 그림이 있다. 하지만 한국화 민화는 우키요에와 달리 인간의 욕망을 담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한국화 중에서도 민화에 특별히 애정이 크다고 알고 있다. 이유가 궁금한데.

“민화는 인간의 욕망을 진솔하게 표현한 그림이다. 민화는 분류가 10가지 정도다. 화조영모도, 어해도, 십장생도, 산수도, 문자도 등등. 그런데 이 그림들 하나하나가 전부 다 의미가 있다. 장수나 부귀를 바라는 뜻이 부적처럼 담겼다. 화조영모도의 모란은 부귀영화의 염원을 담고 있다. 민화를 보면 ‘다른 사람 망하게 해달라’는 저주의 염원은 없다. 다 복을 바라는 염원이다. 순수하게 나 잘 살자는 욕망이 얼마나 진솔한가. 이런 점이 좋은 것 같다.”

▶민화가 수묵화에 비해 격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회화적으로 접근했을 때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나도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민화를 계속 접하고 가르치다 보니 민화는 절대로 격이 떨어지는 장르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내면세계를 담아 정신으로 그리는 수묵화는 철학적인 깊이가 있다. 반면 민화는 자신의 욕망을 담아 그리는 그림이다. 깊은 사유는 없지만 솔직하고 풋풋하다. 부귀영화를 바라며 모란을 그리는 동안 심신이 안정되지 않겠나? (웃음) 대중적이고 다원주의적이라는 점에서 민화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이다. 민화는 정말 인간에게 필요한 문화예술이면서 가장 세련된 예술이다.”

이선진 작가가 그린 해바라기 민화. 해바라기는 부자가 되길 바라는 욕망을 표현한다. (사진=이상진 기자)
이선진 작가가 그린 해바라기 민화. 해바라기는 부자가 되길 바라는 욕망을 표현한다. 좌측 아래 단청안료인 분채가 놓였다. (사진=이상진 기자)

▶한국화가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수라는 평가가 있다.

“모더니즘적이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도 있다. 민화의 책가도는 문방사우를 그린 그림인데, 책가도를 보면 굉장히 어지럽다. 책 한 권을 봐도 책의 정면과 뒷면 옆면 등을 전부 조각조각 잘라 그렸다. 정물 하나의 완전한 정신을 표현하기 위해선 사물의 모든 면을 구성해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마치 피카소와 같지 않나? 그러면서도 대중적이고. 수묵화는 사실을 그리는 게 아니라 정신과 마음을 그린다. 나름의 철학을 표현한 ‘격’이 있는 분야다. 정형화된 것을 탈피하고 작업을 했다는 점에서 한국화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서양미술을 수백 년 앞섰다고 본다.”

▶이선진의 작품세계가 궁금하다. 회화에 담긴 사유와 철학에 대해 말한다면.

“붓다와 원효로부터 인간의 본성을 탐구한다. 화두를 참구(參究)하다 보면 깨닫는 바가 있다. 무겁고 미끄러지던 붓끝이 깊고 먹먹해진다. 노자와 장자로부터는 대자연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인간으로서의 겸손함을 배운다. 무위자연 속에서 인간은 자연과 구별되지 않는다. 서양화는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아 인간이 중심이었다. 서양화에서 인간의 이성을 중시했던 모더니즘 사조가 유행했던 이유다. 반면 동양화는 자연이 중심이고. 모더니즘을 극복하고자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다원주의적 사유인 도가 사상이 주목받는 이유다.”

▶불교 사상에 대한 이해가 깊은 것 같은데, 종교가 있나?

“있다. 천주교다. 오늘은 깜빡하고 묵주를 못 했다. (웃음) 세례명이 베로니카다. 불교사상을 굉장히 좋아하는 베로니카. 가톨릭 신자인데 어디 가서 불자라고도 한다. 불교 사상을 따르면서 하나님을 동시에 생각하는. (웃음) 한국화를 전공하다 보면 동양과 서양의 종교와 철학을 모두 배운다. 동서양의 사유가 만나는 접점에서 일어나는 불꽃, 그 모순 속에서 핀 꽃을 작업을 통해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한국화 작가로서 한국화에 대해 아쉬운 점은.

“재료가 참 아쉽다. 서양화 재료는 동네 문방구만 가도 쉽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화 물감은 파는 곳이 없다. 한국화는 단청안료를 쓴다. 돌가루나 흙가루를 말하는데, 작은 돌가루를 분채, 큰 돌가루를 석채라고 한다. 분채나 석채를 사발 같은 곳에 넣고 직접 갈아야 한다. 거기에 아교를 일정 비율로 섞어야 비로소 붓끝에 적시면 색이 나오게 된다. 그런데 주변에서 보는 돌가루나 흙가루를 보면 색이 없지 않나? 굉장히 드물고 엄청나게 큰 돌을 채취해야 하는데 비용이 많이 든다. 그래서 가격이 비싸다. 한국화 물감을 파는 곳이 우리나라에서 2~3곳밖에 없다.”

▶한국화에 서양화 물감을 사용해도 될 것 같은데?

“사실 한국화 작가분들 중에도 혼합채색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화 물감과 서양화 물감을 섞어 쓰는 것인데, 나도 예전에는 혼합채색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화 물감만 사용한다. 한국화 같은 경우 한지 위에 그리는데 단청안료를 써야 색이 잘 스며든다. 반면에 서양화는 캠퍼스에 색을 얹으면서 하는 작업이다. 한국화는 색이 스며드는 순간 그림이 먹먹해지는데, 혼합채색을 하면 잘 스며들지 않는다.”

인터뷰를 진행한 NETI7 화실. 이선진 작가는 NETI7에서 국내외 수강생을 대상으로 민화를 가르치고 있다.
인터뷰를 진행한 NETI7 화실. 이선진 작가는 NETI7에서 국내외 수강생을 대상으로 민화를 가르치고 있다. (사진=이상진 기자)

▶화실을 홍익대학교 인근에 얻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

“홍대가 미술의 메카이기 때문이다. 작업하기가 편하다. 국내외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한국화를 가르쳐주기에도 이만한 곳이 없다. 작품 활동 외에 지금 한국화로 아트상품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일도 하고 있는데, 홍대 인근에 화실이 위치하면 여러모로 편리한 점도 있고. 또 홍익대학교에서 동양화 석사과정 졸업을 앞둔 상태다. 공부를 위해서라도 가까운 곳이 좋으니까.”

▶보통 작가라고 하면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한국화를 알리기 위한 활동의 일환이다. 아트상품 방면으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화 아트상품을 기획하고 제작하고 판매까지 모두 한다. 한국화 분야가 서양화에 비해 전공자도 적고 대중의 관심도 떨어지는데 이런 것을 극복하고 싶다. 또 이게 내 밥벌이다. 작가를 하고 싶으면 돈이 있어야 한다. 혹여 한국화 작가를 꿈꾸는 분들이 있다면 ‘작품으로 돈 벌 생각하지 마!’라고 강력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웃음)”

▶작품으로 생계를 꾸리기 어렵다는 말인가?

“그림 그려서 돈 벌려고 하면 곤란하다. 그거야말로 욕심이다. 청년 작가뿐만 아니라, 중년 작가도 작품으로 생계를 이어나간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이 부분은 한국화든 서양화든 마찬가지다. 정말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돈부터 벌어야 한다. 화실을 운영하든가 관련 분야에 취직하든가 해서 생계 기반이 마련된 뒤에 작품 활동 고민을 하는 게 순서에 맞다. 흔히 ‘예술가병’이라는 게 있다. ‘나는 남들과 달라’, ‘혼자 살아야 하는 사람이야’, ‘사회성이 떨어져’ 등등. 저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네가 뭐가 그렇게 특별한데?’ 예술을 돈벌이로 생각하는 사람은 예술가로서 기본이 안 된, 깨우치지 못한 사람이다.”

▶정부 지원 등 한국화 작가로서 아쉬운 점이 있나.

“그림을 그린다는 측면에서는 정부 지원이 필요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정말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정부 지원을 기다리지 말고 일을 해서 돈을 벌면 된다. 그걸로 물감 사고 한지 사고 붓 사서 손으로 붓 잡고 그림 그리면 된다. 어렵지 않은 일이다.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면,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문화예술의 ‘판’을 확장하는 데 쓰면 좋겠다. 교육 부문은 아쉽다. 중고등학교 때 국사 시간에만 잠깐 조선 시대 그림 몇 개 보고 넘어가지 않나. 대학에 오면 한국화 교양과정을 찾기도 어렵다.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 한국화를 포함하는 방안을 말하고 싶다.”

중국화와 일본화에 비해 해외에서 인지도가 떨어지는 한국화가 아쉽다는 이선진 작가. 그는 한국화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해외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사진=이상진 기자)
중국화와 일본화에 비해 해외에서 인지도가 떨어지는 한국화가 아쉽다는 이선진 작가. 그는 한국화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해외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사진=이상진 기자)

▶한국화 작가로서 최종 목표는?

“나는 야망이 무척 크다. (웃음) 한국화에서 큰 획을 긋는 인물, 드물게 나타나는 그런 인물이 되고 싶다. 지금까지 개인전은 3번을 했는데, 모두 해외에서 했다. 한국화를 해외에 알리고 싶어서다. 서양 사람들은 동양화에 관심이 크다. 대부분 접할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NETI7 화실에서 수업을 통해 한국화를 접한 외국인들은 모두 한국화의 기법과 한지에 스미는 색감에 감탄한다. 그런데 해외에서 한국화를 선보이면, 외국인들은 중국화인지 일본화인지 묻는다. 동양화 중에 한국화는 저변이 넓지 못하다. 나를 포함한 한국화 작가들이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끝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나라 전통문화예술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이탈리아나 일본을 보면 자국의 전통문화를 발전시켜서 디자인과 제품을 만들어 세계인을 대상으로 선보이고 있다. 한국화뿐만 아니라, 대금이나 한복, 전통 칼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이 전통문화 발달을 이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세계인의 관심도 받을 수 있을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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