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셨어요. 그곳에 가면 다시는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는 속설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터라, 어머니를 입원시키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죠.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입원 절차를 밟았고 그렇게 몇 해가 흘러 살만해지나 했더니... 이번엔 장모님이 치매 판정을 받았습니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 건너가 장모님을 보살피는 아내를 보며 얼른 병원으로 모셨고 싶지만, 처가댁 식구들은 아직 아무런 말이 없어요. 이러다가 아내가 먼저 쓰러질 판입니다.“ 

<뉴스포스트>가 만난 김 모(63) 씨는 양가 부모가 잇따라 치매에 걸리면서 남들이 겪을 고통의 두 배를 겪고 있었다. 지난 몇 년간 치매로 거동이 불편했던 노모를 돌봐왔던 김 씨는 그간의 세월을 돌아보며 “치매는 본인보다 주변을 힘들게 하는 병인 것 같아요. 바람이 있다면 훗날 자녀에게 이런 부담을 주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치매 인구 100만을 바라보는 지금. 이는 비단 그의 고민만은 아닐 것이다. 본지는 4번의 기획을 통해 치매 관리 인프라를 점검하고, 치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 병동의 모습. (사진=선초롱 기자)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 병동의 모습. (사진=선초롱 기자)

[뉴스포스트=선초롱 기자] 지난 9월 22일 울산 중구에서 50대 아들 A 씨가 치매에 걸린 10년 넘게 돌보던 80대 아버지 B 씨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4월 22일에는 전북 군산에서 80세 남편 C 씨가 치매에 걸린 아내 D 씨를 10년간 돌보다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2월 20일에도 충북 청주에서 치매를 앓고 있던 80대 노부 E 씨와 40대 아들 F 씨가 나란히 숨진 채 발견됐다. F 씨는 치매를 앓던 85세의 아버지의 건강이 점점 더 악화되자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긴 시간 동안의 병간호로 지친 상태에서 보호자가 돌보던 이를 살해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간병살인’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친밀한 가족이 치매를 앓으면서 간병을 도맡은 이에게 신체적·정신적인 부담과 생활고 등 경제적 부담까지 겹치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다.

대한치매학회에 따르면 치매환자 보호자의 71%가 간병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환자보다 보호자가 더 힘든 질병이라 부르는 이유다. 이 같은 상황은 고령화 추세에 따라 그 발생도가 더욱 빈번해지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현대의학으로는 치매의 완치가 어렵다는 점도 보호자들을 지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약 복용을 통해 어느 정도 진행을 늦출 수는 있지만, 현재까지는 확실한 치료제는 없다는 게 의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런 탓에 치매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들 사이에선 “죽어야 끝이 난다”라는 극단적인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기도 한다.

실제로 치매의 증상은 기억력 감퇴, 언어 능력 저하, 판단력 및 일상생활 수행 능력의 저하 등의 인지기능이 저하되거나 우울, 불안, 망상, 환각, 배회, 공격성, 이상 행동, 식이 변화, 수면 장애 등 정신행동 증상이 나타나고, 시야장애, 안면 마비, 발음 이상, 보행 장애 등 신경학적 증상이 동반된다. 가족들이 하는 병간호 이상의 전문적인 관리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경제적 부담 여전

치매 환자 보호자가 겪는 경제적인 부담도 상당하다. 중앙치매센터가 발표한 ‘대한민국 치매 현황 2018’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치매 환자 1인당 연간 관리비용은 약 2,074만 원, 국가 치매 관리비용은 약 14조 6,000억 원에 달한다. 치매 진료비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65세 이상 치매 환자 전체 연간 진료비는 약 2조 3,000억 원, 치매 환자 1인당 연간 진료비는 약 344만 원으로 집계됐다.

급속한 고령화에 따라 치매 환자가 해마다 늘고 있는 점도 관리비용 증가에 한몫하고 있다.  노인치매환자는 2018년 기준 75만 명을 넘어섰고, 그 수가 해마다 늘어 2026년엔 100만 명, 2050년에는 3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도 2017년 9월 ‘치매국가책임제’를 선언하고 치매에 대한 맞춤형 사례관리, 의료지원, 장기 요양서비스 확대 등 치매환자와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는 과제들을 추진해오고 있다. 지난 달 29일엔 제2차 국가치매관리위원회를 열고 치매 국가책임제 내실화 방안을 확정했다. 방안에는 9년간 약 2,000억 원을 투입해 치매 조기진단·예방·치료 기술을 개발하고, 치매안심센터 내 치매 쉼터 이용 제한을 없애고, 치매환자를 돌보는 가족을 위해 단기보호서비스를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아직 치매 환자의 간병 부담을 완전히 덜어주고 있지는 못하다. 치매 등급을 1·2급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요양원에 입소할 수 없고, 3~5등급은 재가급여 혜택만 주어지는데 방문 요양 보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간도 최대 4시간에 불과하다. 결국, 나머지 시간은 가족이 직접 돌볼 수밖에 없다.

또한 노부부가 혼자서 치매 배우자를 돌보는 경우 등 기본적인 생활비 조달이 어려운 경우도 있고, 노인복지시설에서 학대 행위가 끊이지 않는 점도 치매 환자 보호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호자가 겪는 건강 악화에 대한 우려, 정서적 스트레스, 생계 활동 제약 등 상황에 맞는 보완책이 나와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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