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셨어요. 그곳에 가면 다시는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는 속설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터라, 어머니를 입원시키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죠.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입원 절차를 밟았고 그렇게 몇 해가 흘러 살만해지나 했더니... 이번엔 장모님이 치매 판정을 받았습니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 건너가 장모님을 보살피는 아내를 보며 얼른 병원으로 모셨고 싶지만, 처가댁 식구들은 아직 아무런 말이 없어요. 이러다가 아내가 먼저 쓰러질 판입니다.“ 

<뉴스포스트>가 만난 김 모(63) 씨는 양가 부모가 잇따라 치매에 걸리면서 남들이 겪을 고통의 두 배를 겪고 있었다. 지난 몇 년간 치매로 거동이 불편했던 노모를 돌봐왔던 김 씨는 그간의 세월을 돌아보며 “치매는 본인보다 주변을 힘들게 하는 병인 것 같아요. 바람이 있다면 훗날 자녀에게 이런 부담을 주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치매 인구 100만을 바라보는 지금. 이는 비단 그의 고민만은 아닐 것이다. 본지는 4번의 기획을 통해 치매 관리 인프라를 점검하고, 치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한 노인이 보행보조기를 짚고 길을 걷고 있는 모습. (사진=선초롱 기자)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 근처에서 한 노인이 보행보조기를 짚고 길을 걷고 있다. (사진=선초롱 기자)

[뉴스포스트=선초롱 기자] 현재 치매 환자를 가장 잘 돌볼 수 있는 곳이 요양병원, 요양원이라는 데 큰 이견은 없다. 가족이 할 수 없는 전문적인 의료 서비스에서부터 24시간 돌봄 서비스까지.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불편한 수식어에도 요양 시설에 치매에 걸린 가족을 맡기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 됐다. 

치매는 불행하게도 점점 좋아지는 병은 아니다. 의사가 처방한 약 복용을 통해 진행을 늦추는 정도가 전부인 ‘불치병’이다. 오히려 악화하면 악화하지 좋아지지는 않는다. 보호자가 환자를 더 이상 돌보지 못하는 때가 되면 결국 요양 시설에 위탁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요양 시설에서의 퇴소는 죽음”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치매 환자들의 마지막인 요양 시설은 크게 요양원과 요양병원이 있는데, 장기요양등급에 따라, 갈 수 있는 곳도 달라진다. 장기요양등급은 1등급에서 5등급으로 구분되며, 1~2등급은 시설등급, 3~5등급은 재가 등급으로 나눠진다. 요양원은 주로 1~2등급을 받은 중증 치매 환자들이 가게 된다. 재가 등급을 받으면 방문 요양, 방문 목욕, 방문 간호, 주야간보호, 단기 보호, 복지용구사업소, 치매 전담형 주야간보호시설 등을 이용할 수 있고 시설등급을 받아 요양 시설에 입소할 수도 있다. 

요양원과 요양병원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의료인이 24시간 상주하느냐다. 요양원은 의료인이 상주하지 않는 곳으로, 촉탁의가 2주에 한 번 찾아오는 정도기 때문에 직접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직접 병원에 가야 한다. 다만 요양 시설 이용금액의 일부를 국가에서 부담하기 때문에 요양병원보다 부담이 적다. 요양병원은 의사나 간호사가 24시간 상주하는 곳으로, 지속적인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말 그대로 병원이다. 장기요양등급을 받지 못하거나 전문적인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환자들이 주로 오는 곳이고, 요양원보다 금액적인 부분에서 부담이 큰 편이다. 

부정적인 시선

위치와 금액, 시설과 프로그램 등 따질 만큼 따져 고른 요양 시설은 안타깝게도 ‘케바케(case by case 줄임말, 때에 따라 다름을 이르는 말)’다. 어떤 의료진과 요양보호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환자와 보호자가 느끼는 만족도가 달라질 수 있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요양보호사가 담당하는 환자 수가 많을 경우 ‘가족 같은’ 돌봄은 기대할 수 없다. 상당히 기계적이고 획일적인 ‘처치’를 받는 수준이라는 게 보호자들의 의견이다.

게다가 뉴스를 통해 드러나는 일부 병원과 시설에서의 환자 인권침해, 비리 등은 보호자들에게 부정적 인식을 키우기에 충분하다. 보호자 입장에서는 가족을 시설에 맡긴다는 죄책감에 안 좋은 이슈만 보이기 마련이다. 모든 요양 시설이 그럴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뉴스포스트>가 만난 김 씨 역시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한다. 그는 “온 가족이 모였습니다. 장모님의 치매 증상은 생각보다 심각했거든요. 가족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누군가 돈을 훔쳐 갔다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밤에는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겨우겨우 잠이 들었어요. 아내를 비롯해 처가댁 식구들이 지쳐가는 게 보입니다. 요양 시설에 모시는 게 불효는 아니잖아요”라며 토로했다.

경기도에 위치한 한 요양병원.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음. (사진=선초롱 기자)
경기도에 위치한 한 요양병원.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음. (사진=선초롱 기자)

요양 시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법과 감시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하는 사건·사고는 최근에도 꾸준히 있었다. 지난 8월 서울 양천구에 있는 한 요양원에서 80대 치매 환자가 입소 하루 만에 눈 주위가 심하게 멍이 드는 사고가 발생했다. 시설 측에서는 이 사실을 보호자에게 바로 알리지 않았고 설치된 CCTV도 작동하지 않는 모형이었다. 지난 2월에는 대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조선족 간병인이 70대 치매 환자를 상습적으로 폭행해 갈비뼈에 금이 가는 중상을 입는 일도 있었다. 관리부실로 인한 사고도 있었다. 6월 경기도 광주의 한 요양원에서는 60대 치매 환자가 5층 창문에서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뒤늦게 드러난 요양 시설 내의 비리도 상당하다. 지난달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최근 5년간 노인 장기 요양기관 현지조사 현황’에 따르면,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요양 시설의 평균 78%가 총 950억 원을 부당 청구했고, 특히 올해 상반기(1월~6월)에는 94%(302개소) 63억 원의 급여를 부당 청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요양원 10곳 중 9곳이 부정수급을 하고 있었던 것. 특히 해당 조사대상이 전체 노인장기 요양기관 약 2만2,000개소 중 5% 이내인 점을 고려하면 아직 밝혀지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국요양서비스노조 등 업계에서는 전국 민간 요양 시설에 대한 감사를 실시해 비리 요양원의 실명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전지현 전국요양서비스노조 사무처장은 “문제가 있는 요양 시설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으면 비리 요양원에 가족을 맡긴 보호자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계속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민간 요양 시설은 운영비의 80%를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수가로 받고, 나머지 20%는 보호자가 부담한다. 국가의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고 있고, 고령화에 따라 그 규모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부당 청구나 급여 착복 등 비리를 저지른 요양 시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을 개정한다는 방침이다. 개정안에는 부당 청구, 현지 조사 거부 등을 한 시설에 대해 징역·벌금형을 신설하고, 비리 기관 명단 공표를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이에 대해 현장에서는 아쉽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질적으로 치매 노인을 돌보는 요양보호사의 처우에 대한 부분은 전무했기 때문이다. 전지현 사무처장은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이번 정부의 개정안 계획에는 요양보호사들의 처우 개선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다. 인력 부족 등 근본적인 문제로 생겨나는 돌봄 서비스의 질적 하락의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이 떠안는다. 이에 대한 고민 없이, 보여주기식으로 개정을 하려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의 구체적인 개정안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관련 업계는 환자와 보호자, 요양보호사 등 현장의 목소리가 고루 담긴 현실적인 방안이 나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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