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운 칼럼] ‘일본식 장기 불황’ 속수무책인가
[온기운 칼럼] ‘일본식 장기 불황’ 속수무책인가
  • 온기운
  • 승인 2019.11.09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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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뉴스포스트 전문가 칼럼=온기운]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5단체가 지난 6일 공동성명서를 통해 ‘경제3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가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질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주52시간 근무제를 보완하는 ‘근로기준법’과 데이터 규제를 완화하는 ‘데이터법’, 화학물질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을 조속히 손질해야 경제가 더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제조업의 평균 가동률이 외환위기 당시 수준으로 떨어진지 이미 오래고, 기업들의 해외탈출 러시는 가속화되고 있으며, 기업가정신은 세계 20위권 중반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과거의 역동적 한국 모습은 사라지고 있다.

일본식 장기불황에 대한 경고는 그동안 경제 전문가들에 의해 누차 제기돼 왔다. 하지만 정책당국이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는 사이에 한국은 이미 일본화(Japanification)의 긴 터널에 진입해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니시무라 기요히코 전 일본은행 부총재는 일본화의 중요한 원인이 인구구조의 변화에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저출산의 여파로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1996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한데 이어 2011년부터는 총인구도 감소세로 전환됐다. 노인과 유소년 등 비생산인구 1명을 생산가능인구 몇 명이 부양하는가를 나타내는 생산·비생산인구 비율은 1990년에 2.3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곧바로 장기불황 국면에 진입했다.

한국은 대략 20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일본의 인구구조 변화를 따라가고 있다. 생산가능인구는 2017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고 총인구는 출산율(작년 0.98명)을 다소 회복되는 것으로 가정하더라도 2030년경에 줄어들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러한 인구구조 변화와 일본의 사례를 같이 고려해 보면 한국 경제는 이미 몇년 전에 장기불황 국면에 진입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생산·비생산인구 비율이 2016년 2.7명을 정점으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경제정책의 실패도 물론 빼놓을 수 없다. 일본 정부는 1985년 9월 플라자합의 후 엔화가치 급등으로 경기부진이 심화되자 초저금리 정책을 취했고, 이로 인해 시중의 자금 공급이 넘치면서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이상 급등하는 투기경제가 야기됐다. 거품을 막겠다고 1990년부터 ‘창구지도’를 통해 부동산 돈줄을 죄고 금리 인상을 단행하자 자산 가격이 폭락했다. 이러한 가운데 가계의 금융비용 부담이 가중되고 금융회사들은 급격히 부실화됐다. 설비·재고 과잉으로 기업 도산도 속출했다. 경제성장률은 거품 붕괴 원년인 1992년부터 3년 연속 0%대를 기록했고, 그 후로도 플러스, 마이너스를 오르락 내리락 했다. 일본 정부는 ‘잃어버린 20년‘ 동안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끌어 내리고 금융·재정 확대 등 부양책을 수도 없이 동원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디플레이션 늪은 깊어지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20% 이상의 세계 최고수준으로 치솟았다.

세계적인 인구학자 해리 덴트는 “일본이나 독일 같은 선진국들이 일찌감치 인구절벽에 도달해 경제성장률 0%의 코마 경제(Coma Economy)에 도달했는데 그 다음이 한국 차례”라고 경고한 바 있다. 2012년 이후 한국 경제는 2014년과 2017년 두 해만 빼고 2%대의 저성장을 지속했으며, 올해는 1%대로 성장률이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같은 외부충격이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상황이 이처럼 악화되니 해리덴트의 말이 맞아떨어지는 듯하다.

한국은 일본이 겪었던 ‘대차대조표 불황’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가계자산의 80%가 부동산이고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60%로 매우 높아 거품이 붕괴 될 경우 그 충격이 심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재정지출 확대를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하려고 하지만 경제회복의 모멘텀은 보이지 않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도 약발이 없다.

저출산으로 군병력이 급감해 여군 수를 늘리고 귀화자 병역을 추진하며, 학령 인구 감소에 따라 교사 수를 대폭 줄이겠다는 계획을 최근 발표됐다. 이러한 뒤따라가기식 정책에 매달리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2005년부터 5년 단위로 실시되고 있는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지금까지 150조원 이상이 투입됐지만 아무 효과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3차 계획에서 2020년 출산율 목표를 1.5명으로 내걸었지만 1명 선마저 깨진 참담한 상황이다. 시늉만 내지 말고 인구그래프를 다시 치켜세울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 이것이 일본식 장기 불황을 막는 근본 대책이다.

<프로필>

▲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

▲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무역위원회 위원

▲ 총리실 정부정책평가워원

▲ 산업발전심의위원회 위원

▲ 금융발전심의위원회위원

▲ 일본 국립고베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온기운 kuohn@s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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