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혜선 기자)
(그래픽=김혜선 기자)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매해 11월 중순. 포근한 가을이 지나고 매서운 한파가 들이닥치기 시작하면 전국의 수험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날이 밝아온다.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도 이제 코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하지만 대학 입시가 수능 한 번으로 끝나는 시대는 이미 지난 지 오래다.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어떤 선발 전형을 선택해야 하는지부터 결정해야 한다. 정시 전형을 선택할지, 수시 전형을 선택할지의 문제는 수능만큼 수험생들의 골머리를 앓게 만든다. 각자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한 제도를 선택하는 게 원하는 대학 문턱 앞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각 대학 입시 요강과 관련한 정보 싸움 역시 수험생들 사이에서 치열하게 이뤄진다.

정시 전형은 대학이 일정 기간을 정해 신입생을 모집하는 선발 방식을 말한다. 대학이 수능 성적을 토대로 신입생을 뽑는 게 일반적인 정시다. 일부는 실기 중심 평가도 진행된다. 반면 수시는 정시 모집에 앞서 대학이 신입생을 미리 선발하는 방식이다. ▲ 학생부 위주 (학생부종합전형, 학생부교과 전형) ▲ 논술 위주(대학별 논술 고사 중심) ▲ 실기 위주(예체능 특기 중심) 등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정시와 수시는 수능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지난 1994년부터 시행된 수능은 기존의 ‘대학입학 학력고사’가 실제 대학 교육에 필요한 학습능력이나 사고력 등 학업성적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탄생했다. 수능 시험은 고등학교 3년간의 학습 내용이 우선이 아니라 대학교육을 얼마나 잘 수학(修學) 할 수 있는지를 보는 게 주목적이다. 이 때문에 정식 명칭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수시 전형은 수능 제도가 정착되고 약 2년 후인 1997학년도(1996년)부터 시작했다. ▲ 수능이라는 일괄적인 시험 성적 결과로는 대학에서 다양한 인재들을 선발하기 어려운 점 ▲ 고등학교 재학 3년 내내 불성실한 학생이 시험 한 번으로 다른 학생들보다 좋은 점수를 얻어 결과적으로 공교육 붕괴를 초래하는 점 등의 문제 때문에 시도됐다.

수시 모집 증가세. (표=교육부 제공)
수시 모집 증가세. (표=교육부 제공)

대세가 된 수시

교육부에 따르면 1997학년도 수시 모집 비율은 1.4%에 불과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수시 비중은 크게 증가했다. 김대중 정권 당시 이해찬 교육부 장관은 수시 비중을 대폭 늘리는 정책을 시행했다. 노무현 정권 역시 수시의 일종인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는 등 수시 대세화에 한몫했다. 2007학년도에는 수시 비중이 51.5%를 차지해 정시를 압도했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수시 대세’는 지속했다. 입학사정관제는 2015년 학생부종합전형이란 이름으로 탈바꿈했다. 서울 상위권 대학 등 주요 대학들이 학생부종합전형 비중을 늘리면서 수시 비율을 높였다. 반면 정시는 그만큼 감소했다. 특히 지난해 2019학년도 입시에서는 수시 비중이 무려 76.2%를 차지하게 됐다. 불과 20년 만에 상황이 180도 역전된 것이다.

수능이 감별하지 못한 다양한 인재들의 입시 등용문이던 수시가 이제는 대다수 학생의 필수 입시 전형이 된 상황. 무엇이 이를 가능하게 했을까. 우선 수시 모집은 단순히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아닌 보다 더 창의적인 인재를 대학이 선점하기 쉽다. 학생부종합전형만 봐도 창의적 체험활동이나 수상 경력, 독서 활동 등 공부만 잘하는 학생보다 다양한 ‘스펙’을 가진 학생에게 유리하다.

아울러 수시 비중이 확대되면 공교육이 정상화된다는 인식이 크다. 정시 전형을 확대하면 교육이 수능 시험 중심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2월 교육부가 진행한 제4차 대입정책포럼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나왔다. 학생부종합전형 비중을 줄이고, 수능 전형을 확대하자는 논의에 대해 반대 측이 “수능 전형의 과도한 확대 시 고교 수업이 수능 중심으로 회귀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사진=뉴스포스트 DB)
(사진=뉴스포스트 DB)

정시, 다시 날개를 달다?

문재인 정부 초반까지는 수시 비중 증가 현상이 계속됐다. 정권이 끝날 때까지도 이 같은 흐름은 지속할 뻔했다. 하지만 입시 관련 문제가 곪아 터질 대로 터지면서 수시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학생부종합전형의 경우 온갖 종류의 스펙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른바 ‘금수저’에게 유리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는 교육부가 이달 5일 발표한 학생부종합전형 실태조사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2016학년도부터 2019학년도까지 4년간 주요 13개 대학의 202만여 건 전형 자료와 학생부종합전형 실태를 조사한 결과 과학 고등학교와 외국어 고등학교 등 특수 목적 고등학교의 학생부종합전형 합격률이 일반 고등학교보다 높았다. 일반 고등학교 학생은 학생부종합전형에서 1.5등급 이내가 합격한 반면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나 특수 목적 고등학교는 2.5등급 안팎의 학생이 합격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또한 서울 지역 고등학교가 학생 수에 비해 학생부종합전형에서의 합격자 비율이 타 지역 고등학교보다 상대적으로 높았다.

교육부 장관 재직 시절 수시 비중을 크게 늘리는 데 공헌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지나친 수시 비중 증가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올해 9월 “논란이 된 학생부종합전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화해야 할 것 같다”며 “(교육부 장관 시절) 당시에는 지금처럼 수시 중심으로 대학을 가는 게 아니고, 부분적으로 수시 입학을 허용하자고 추진했다. 20년이 지나니 원래 취지가 많이 변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이 계속되자 정부도 칼을 빼 들었다. 무기는 ‘정시 확대’. 서울 지역 일부 대학의 학생부종합전형 비율을 손보겠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달 25일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서울 주요 대학 중심으로 입시에서 정시 모집 비율을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학생부종합전형의 비율이 지나치게 높은 대학이 적정한 균형을 맞추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대상 학교와 확대 비율은 현재 검토 중이라고 유 장관은 전했다.

수시 전형이 탄생한 지 23년. 기나긴 수시와 정시의 기나긴 대결은 현재까지도 결론이 나질 않고 있다. 입시 전형에서 수시와 정시 모두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상황. 공정한 입시제도를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할지,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지, 혹은 최선의 방법이 존재하긴 하는지 <뉴스포스트>는 다음 화에서 현행 입시 문제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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