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2020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전국적으로 치러지는 14일 오전 6시 40분.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한 아파트 대문을 두드렸다. 이날은 김혜선(19·여) 양이 지난 3년간의 고등학교 공부를 마치고 수능을 보는 날이다. 김 양은 이미 수시전형에 합격해 수능 성적과 상관없이 대학에 진학하게 돼 흔쾌히 수능 날 동행을 허락해줬다.

김 양을 배웅하는 김 양의 아버지. (사진=김혜선 기자)
김 양을 배웅하는 김 양의 아버지. (사진=김혜선 기자)

이날 반갑게 대문을 열어준 김 양은 이미 롱패딩과 분홍색 목도리를 두른 ‘완전무장’ 상태였다. 김 양의 어머니는 간단한 아침상을 차리고, 아버지는 수능장까지 차로 데려다주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아직 어린 남동생은 꿈나라다. 수능 오전 아침 ‘조용한 분주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김 양의 수능 준비물은 정석대로다. 가방 안에는 따뜻한 도시락과 수험표, 필기도구가 있었다. 문제를 풀기 위한 연필과 지우개, 답안지 마킹을 위한 컴퓨터용 사인펜과 수정을 위한 수정테이프다. 수능 시험장에서는 각종 전자기기 반입을 금지하기 때문에 김 양의 왼쪽 팔목에는 아날로그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김 양의 수험표. 김 양은 수능이 끝나면 가장 먼저 제주도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사진=김혜선 기자)
김 양의 수험표. 김 양은 수능이 끝나면 가장 먼저 제주도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사진=김혜선 기자)

김 양의 아버지는 “그동안 열심히 해 오느라 고생했고 시험장 가서도 잘 하고 오라”고 당부했다. 장녀의 첫 수능에 대한 소감을 묻자 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딸에게 “많이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잠시 어색한 침묵. 긴장이 되지 않느냐고 물으니 “딸이 의연하게 있어서인지 크게 긴장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오전 7시, 김 양과 그의 아버지와 함께 집을 나섰다. 김 양이 수능장으로 배정받은 곳은 운정에 위치한 한빛고등학교다. 차로는 20여 분이 걸린다. 수능장까지 가는 길은 막힘없었다. 이날 관공서는 10시 출근을 한다. 전국 1185개 고사장을 향하는 수험생 54만8734명 중 단 한명이라도 지각을 하지 않도록 배려하기 위해서다. 수험생들은 이날 오전 8시 10분까지 수험장에 입실을 완료해야 한다.

수험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김 양에게 ‘수능이 끝나면 무엇을 하고 싶느냐’고 물었다. 김 양은 “제주도에 가고 싶다”고 답했다. 수능 수험표가 있으면 제주도행 항공권을 할인된 가격에 구할 수 있단다. 김 양은 “아르바이트도 하고 싶다. 집 근처에서 알바를 많이 구하던데 수능이 끝나면 한번 지원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긴장이 되지는 않느냐고 물으니 “전혀” 긴장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날 수능은 8시40분부터 1교시 국어영역 시험이 시작된다. 이후 수학 시험을 보고 점심을 먹고, 3교시 영어, 4교시 한국사와 탐구(사회/과학/직업), 5교시 제2외국어/한문 순으로 시험이 진행된다. 김 양은 “수시에 합격했으니까 한국사까지만 시험을 보고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쯤이면 오후 3시 30분이 되니 카페에 같이 가자고 한다. 흔쾌히 “알겠다”고 수락했다.

최근 문재인 정부는 정시를 확대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수시 합격생인 김 양에게 물으니 “정시는 한 번에 모든 시험이 끝나버리니까 저는 수시가 더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수능 보는 걸 많이 부담스러워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 애들에게는 오랜 기간 동안 준비하는 수시가 더 낫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김 양의 아버지는 차에서 오는 내내 “초콜릿은 있느냐, 단 것을 살 걸 그랬다” “도시락은 잘 챙겼느냐”고 물었다. 그는 기자에게 “나는 딸이 여군이나 여경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사회와 나라에 봉사도 하고 공무원이니까 그게 최고이지 않느냐”고 했다. 아버지의 말에 별 말이 없던 김 양은 귓속말로 “수시에 붙은 대학은 대형 소속사와도 연계돼 있어서 오디션도 볼 수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김 양의 꿈은 댄서. 수시에 붙은 대학도 예체능 계열이다. 묘한 ‘세대차이’가 차 안에서 느껴졌다.

7시 20분, 김 양의 수험장인 한빛고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지만 이미 많은 학생들이 교문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수험장으로 들어가는 학생들과, 부모님과 팔짱을 끼고 오는 학생들도 보였다.

지난 3년간의 시간은 길었건만, 교문 앞에서 배웅하는 시간은 30초였다. 김 양의 아버지는 연신 “잘 하고, 파이팅”을 외쳤다. 김 양은 꾸벅 인사를 하고 수험장으로 들어갔다. 지금부터는 온전히 김 양의 시간이다.

김 양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따님은 여군이 싫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하자 그는 “억지로 시킬 수야 없지요. 그래도 잘 되길 바라는 게 부모 마음인데…”라고 말했다. 54만 8734명의 부모님 마음이 다 같을 것이다. 그들에게 응원을 전한다. 파이팅!

한편, 수능시험 문제와 정답은 국어 오전 10시 56분, 수학 오후 2시 10분, 영어 오후 5시 4분, 한국사와 탐구는 오후 8시 10분, 제2외국어/한문 9시 43분에 문제지와 답지가 각각 공개된다. 문제와 정답의 이의신청은 15일부터 19일까지다. 26일 확정 정답을 발표하고 내달 5일 수험생들에게 성적이 통지된다.

김 양과 김 양의 아버지. (사진=김혜선 기자)
김 양과 김 양의 아버지. (사진=김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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