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 독자개발...신약으로는 대한민국 최초
-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 목표로 세계 최대 제약 시장(미국) 진입
- 확률 낮지만 혁신신약 ‘한우물’…”최 회장 비전과 지속 투자 없었다면 불가능”
- 난치성 뇌전증 환자 위한 새로운 치료 옵션으로 큰 기대 받아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SK바이오팜이 독자 개발한 혁신 신약 엑스코프리(세노바메이트정)가 성인 대상 부분발작 치료제로 美FDA(식품의약국)의 시판 허가를 받았다고 22일 밝혔다. 혁신 신약으로 신약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 개발, 판매 허가 신청까지 전 과정을 독자적으로 진행해 FDA의 승인을 받은 것은 국내 최초다.

최태원 회장 27년 뚝심이 SK바이오팜 신약개발로 성과를 거뒀다. (사진=SK그룹 제공)
최태원 회장 27년 뚝심이 SK바이오팜 신약개발로 성과를 거뒀다. (사진=SK그룹 제공)

SK바이오팜의 미국 법인 SK라이프사이언스가 엑스코프리의 마케팅과 판매를 직접 맡아 오는 2020년 2분기에 미국 시장 출시를 할 예정이다. 앞서 엑스코프리는 지난 2001년부터 기초 연구를 시작으로 임상시험과 인허가 과정을 거쳐 FDA의 신약 판매 허가를 받았다. 후보 물질 개발을 위해 합성한 화합물 수만 2,000개 이상이고 미국 FDA에 신약판매허가 신청을 위해 작성한 자료만 230여만 페이지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국내 기업이 자력으로 FDA 신약 승인을 받은 전례가 없어, 대한민국 제약 산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성과로 평가하고 있다.

SK는 지난 1993년 신약개발을 시작한 이래, 성공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도 최태원 회장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제약 사업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기존에 없던 혁신 신약개발에 매진한 결실이 드디어 이뤄진 것이다.

엑스코프리의 개발부터 허가까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전 과정을 지휘한 조정우 SK바이오팜 사장은 “이번 승인은 SK바이오팜이 앞으로 뇌전증을 포함해 중추신경계(CNS, Central Nervous System) 분야 질환에서 신약의 발굴, 개발 및 상업화 역량을 모두 갖춘 글로벌 종합 제약사로 거듭나기 위한 초석이 될 것”이라며 “SK바이오팜의 R&D 역량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감격적인 성과”라고 소감을 밝혔다.

▲유의미한 뇌전증 발작 완화...“매우 고무적 성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최신 통계에 따르면 약 2만 명이 매년 새롭게 뇌전증으로 진단받는다. 이 가운데 약 60%는 뇌전증 치료제를 복용해도 여전히 발작을 지속한다.

이번 시판 허가는 1~3개의 뇌전증 치료제를 복용하면서도, 부분발작이 멈추지 않는 성인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2개의 무작위 이중맹검 위약 대조 임상시험과 대규모 다기관 오픈라벨 안전성 임상시험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이 시험들은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세계 여러 국가에서 시행했다. 이러한 무작위 시험(Study 013, Study 017)에서 엑스코프리는 모든 용량에서 위약투여군 대비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발작 빈도를 낮췄다.

6주간의 적정 기간에 이어 6주간의 약물 유지기간 동안 연구가 진행된 첫 번째 임상시험(Study 013)에서는 참가자 가운데 최대 200mg을 복용한 환자들(n=113)의 발작 빈도 중앙값이 56% 감소했다. 위약 투여군(n=108)에서 22%가 감소한 것과 비교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가 나타났다. 6주간의 적정 기간에 이어 12주간의 유지 기간으로 이루어진 두 번째 임상시험(Study 017)에서는 100mg(n=108), 200mg(n=109), 400mg(n=111)의 엑스코프리를 복용한 환자들의 발작 빈도 중앙값이 각각 36%, 55%, 55%의 감소했다. 이 또한 24% 감소한 위약 투여군(n=106) 대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다.

또 두 임상시험에서 약물치료 유지 기간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의 환자들이 ‘완전발작소실’을 보였다. 약물 투약 기간 중 발작이 발생하지 않는 ‘완전발작소실’은 환자의 일상이 정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삶의 질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 이런 까닭에 ‘완전발작소실’ 감소는 뇌전증 신약 선택에서 중요한 지표로 받아들여진다.

첫 번째 임상시험(Study 013)의 사후 분석에 의하면 약물 치료 유지 기간에 위약 투여군에서는 9% 완전발작소실을 보였다. 반면 엑스코프리 투여 군에서는 28% 환자들이 완전발작소실을 보였다. 두 번째 임상시험(Study 017)에서는 유지기간 동안 100mg, 200mg, 400mg 복용 환자들에서 각각 4%, 11%, 21%의 완전발작소실을 달성했다. 이는 1%의 위약 투여군과 비교되는 결과다.

엑스코프리의 임상시험에 참여한 마이클 스펄링 제퍼슨 종합뇌전증센터 신경학 교수는 “엑스코프리의 승인으로 의사들은 부분발작이 계속되는 환자들에 효과적인 치료요법을 고려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엑스코프리를 복용한 환자들에서 발작 빈도가 의미 있게 감소했고, 일부 환자에서 완전발작소실 결과가 나타난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SK바이오팜은 엑스코프리 외에 FDA 승인을 받아 지난 7월부터 미국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수면장애신약 수노시(성분명: 솔리암페톨)까지 FDA 승인을 받은 혁신 신약(독자개발ž기술수출 포함)을 2종 보유하고 있다.

(사진=SK그룹 제공)
(사진=SK그룹 제공)

▲최태원 회장 ‘27년 바이오 뚝심’ 통했다

“1993년 신약개발에 도전한 이후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20년 넘도록 혁신과 패기, 열정으로 지금까지 성장해 왔습니다. 글로벌 신약개발 사업은 시작할 때부터 여러 난관을 예상했기 때문에 장기적인 안목에서 꾸준히 투자해왔습니다. 혁신적인 신약 개발의 꿈을 이룹시다”

지난 2016년 6월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경기도 판교 소재 SK바이오팜 생명과학연구원을 찾아 이렇게 말하며 구성원들을 격려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2일 새벽,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세노바메이트정)가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신약승인을 받으면서 SK바이오팜은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개발, 신약허가까지 전 과정을 독자적으로 수행한 국내 최초의 제약사가 됐다.

신약개발은 통상 10년~15년의 기간과 수천억 원 이상의 비용이 투입되고도 5천~1만개의 후보물질 중 단 1~2개만 신약으로 개발될 만큼 성공을 확신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연구 전문성은 기본이고 경영진의 흔들림 없는 육성 의지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영역이다. 엑스코프리 역시 최 회장의 뚝심과 투자 철학이 없었다면 빛을 볼 수 없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SK는 1993년 대덕연구원에 연구팀을 꾸리면서 불모지와 같았던 제약사업에 발을 들였다. 인구 고령화 등으로 바이오∙제약 사업은 고부가 고성장이 예상되는 영역인데다, 글로벌 시장에 자체개발 신약 하나 없던 한국에서는 ‘신약주권’을 향한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 대부분의 국내 제약사들이 실패 확률이 낮은 복제약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SK바이오팜은 오직 혁신 신약개발에만 매달렸다. 단기 재무성과에 목마른 기업 입장에서 큰 결단이었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 최 회장의 비전과 확고한 투자 의지였다.
 
2002년 최 회장은 바이오 사업의 꾸준한 육성을 통해 2030년 이후에는 바이오 사업을 그룹의 중심축 중 하나로 세운다는 장기 목표를 제시했다. 신약 개발에서 의약품 생산, 마케팅까지 모든 밸류체인을 통합해 독자적인 사업 역량을 갖춘 글로벌 바이오∙제약 기업을 키워낸다는 비전이었다. 이에 따라, 같은 해 생명과학연구팀, 의약개발팀 등 5개로 나누어져 있던 조직을 통합, 신약 연구에 집중케 하는 한편, 다양한 의약성분과 기술 확보를 위해 중국과 미국에 연구소를 세웠다.

2007년 지주회사 체제 전환 이후에도 신약개발 조직을 따로 분사하지 않고 지주회사 직속으로 둬 그룹 차원에서 투자와 연구를 지속하게 한 것 역시 최 회장의 신약 개발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신약개발이야말로 단기 실적 압박에서 벗어나 지속적인 투자와 장기적인 비전이 담보돼야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성공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도 SK는 최 회장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수 천억 규모의 투자를 지속했다. 임상 1상 완료 후 존슨앤존슨에 기술수출 했던 SK의 첫 뇌전증치료제 ‘카리스바메이트’가 2008년 출시 문턱에서 좌절했을 때에도 최 회장의 뚝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해에 SK바이오팜의 미국 현지법인 SK라이프사이언스의 R&D 조직을 강화하고 업계 최고 전문가들을 채용함으로써 독자 신약 개발을 가속화 했다. 이때 역량을 강화했던 SK라이프사이언스가 이번에 FDA 승인을 얻은 엑스코프리의 임상을 주도했고, 발매 이후 미국 시장 마케팅과 영업까지 도맡을 예정이다.

이후 SK는 신약 개발 사업의 집중 육성을 위해 2011년 사업 조직을 분할해 SK바이오팜을 출범시켰다.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꾸준한 신뢰와 지원을 이어온 덕분에 FDA가 요구하는 엄격한 기준과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임상 전 단계를 수행할 수 있는 독보적인 노하우와 경험이 SK바이오팜에 축적될 수 있었다는 평가다.

2018년 61억달러(약 7조 1,400억 원) 규모인 세계 뇌전증 치료제 시장은 2024년까지 70억 달러(약 8조 2,000억 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SK는 엑스코프리로부터 발생되는 수익을 기반으로 제2, 제3의 글로벌 혁신신약 개발을 지속할 방침이다.

최 회장은 의약품 생산 사업에도 공을 들였다. 최 회장은 2015년 SK바이오팜의 원료 의약품 생산 사업부를 물적분할해 SK바이오텍을 설립했다. SK바이오텍의 전신인 원료의약품 생산사업부가 1998년부터 특허 만료 전의 고부가가치 원료의약품을 글로벌 제약사들에 수출해온 경쟁력에 주목한 것이다.

SK바이오텍은 2017년 글로벌 메이저 제약사인 BMS(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의 아일랜드 생산시설을 통째로 인수했다. 국내 원료의약품 생산 기업이 해외 생산설비를 인수한 최초 사례였다. 지난 2018년에는 SK가 미국의 위탁 개발∙생산 업체인 앰팩(AMPAC) 지분 100%를 인수하는 글로벌 M&A에 성공하면서 국내 제약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인수 1년만인 지난 6월 앰팩 버지니아 신생산시설 가동을 시작되면서 한국-미국-유럽의 글로벌 생산기지가 모두 전면 가동에 돌입했다.

지난 10월 SK는 의약품 생산법인 세 곳을 통합해 SK팜테코를 설립했다. SK바이오텍과 SK바이오텍 아일랜드, 앰팩 등 여러 지역에 분산돼 있던 의약품 생산사업의 지배구조를 단순화해 시너지와 효율을 극대화한다는 포석이다.

이항수 SK수펙스추구협의회 PR팀장은 “SK의 신약개발 역사는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거듭해 혁신을 이뤄낸 대표적 사례”라며 “명실상부한 글로벌 제약사의 등장이 침체된 국내 제약사업에 큰 자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엑스코프리(세노바메이트정) 나트륨 전류 차단으로 발화 감소

엑스코프리의 정확한 기전은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엑스코프리는 감마 아미노뷰트릭 산(GABAA) 이온 채널의 양성 알로스테릭 활성화와 전압개폐성 나트륨 전류의 차단을 통해 신경 세포의 반복적인 발화를 감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엑스코프리는 12.5mg으로 시작하여, 2주 간격으로 용량을 조정해 복용하는 1일 1회 복용 경구제다. 총 6가지 용량을 1일 1회 복용할 수 있도록 판매될 예정이다. (12.5mg, 25mg, 50mg, 100mg, 150mg, 200mg.) 1일 최대 복용 허용 용량은 400mg이다. 엑스코프리는 다른 뇌전증 치료제와 함께 복용하거나 단독 복용할 수 있다.

엑스코프리와 연관된 심각한 약물 반응으로는 호산구증가와 전신성 증상을 동반하는 약물반응(DRESS), QT QT: QT시간. 심전도에서 Q파 시작부터 T파 종료까지의 간격으로, 심실근의 흥분이 개시된 후 종료될 때까지의 시간
간격 단축, 자살 충동 및 행위, 신경적 이상 반응 등이 있다. 위약 대비 10% 이상 발생한 이상 반응으로는 졸음과 어지럼증, 피로, 복시, 두통 등이다.

부분발작을 보이는 성인 환자에서 엑스코프리의 장기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한 글로벌 임상시험은 현재진행형이다. 엑스코프리를 다른 종류의 발작 치료제로 가능성을 검증하기 위한 추가 임상시험도 진행되고 있다.

한편, SK바이오팜은 지난 26년간 중추신경계 관련 질환 치료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그러면서 해당 분야에서 차별화된 파이프라인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에는 항암 신약개발에 착수해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 중이다. 현재 경기도 판교 테크노밸리에 위치한 SK바이오팜 연구소에서는 혁신 신약개발을 위한 기초 연구를 수행하고 있고, 미국 뉴저지의 현지 법인 SK라이프사이언스에서는 임상 개발한 엑스코프리의 상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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