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 문제 국제화...대학에서도 대자보 갈등
중국인 유학생 경찰 조사...대학, 조용한 대처 일관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범죄인 송환법 사태로 촉발된 홍콩 시위가 수개월째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홍콩 시위는 더 이상 중화권 내부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사태에 이르렀다. 국내 대학에서도 홍콩 시위 지지를 둘러싸고 한국인 재학생과 중국인 유학생 간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지만, 대학의 반응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화 시위 관련 게시물이 부착된 홍콩 거리. (사진=독자 제공)
민주화 시위 관련 게시물이 부착된 홍콩 거리. (사진=독자 제공)

29일 홍콩을 방문 중인 A씨에 따르면 현재 홍콩 거리에는 ‘홍콩을 구해달라’는 내용의 낙서와 홍콩 시위 지지 메시지가 담긴 유인물들이 빼곡히 붙어있다. A씨는 <뉴스포스트>에 “시위가 일어나는 장소를 제외하면 조용한 분위기”라면서도 “시위가 자주 열리는 동네 근처에만 가도 매운 냄새가 나 들어갈 수 없을 지경”이라고 설명했다.

수개월째 이어지는 홍콩 시위는 홍콩 정부가 올해 4월 범죄인 인도 법안인 이른바 ‘송환법’을 추진하면서 시작됐다. 홍콩 시민들은 송환법이 통과되면 민주화 인사들이 중국 본토로 송환될 거라고 우려하며 반대 시위를 벌여왔다. 9월 초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송환법 철회를 공식 발표했지만, 시민들이 시위대 석방과 행정장관 직선제 등을 요구하면서 시위는 현재까지 이어가고 있다.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한국도 홍콩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국내 대학에서는 홍콩 시위 지지 찬반을 둘러싸고 한국인 재학생과 중국인 유학생들의 갈등이 표면화하고 있다. 재학생들이 홍콩 시위대 지지와 관련한 현수막 및 대자보를 교내에 게재하면 중국인 유학생들이 이를 훼손하거나 철거하는 상황이다.

전남대학교 인문대 캠퍼스 주변에 중국인 유학생으로 추정되는 이가 홍콩 시위 지지를 비판하는 글을 적었다. (사진=뉴시스)
지난 14일부터 16일 사이 광주 북구 전남대학교 인문대 캠퍼스 주변에 중국인 유학생으로 추정되는 이가 홍콩 시위 지지를 비판하는 글을 적었다. (사진=뉴시스)

경찰까지 부른 학내 한중 갈등

연세대학교는 홍콩 시위 지지를 둘러싼 학내 한중 학생들 간 갈등의 시작점이다. 지난달 24일 교내 게재된 ‘홍콩을 해방하라’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중국인 유학생들에게 하루 만에 훼손됐다. 이달 4일 다시 게재했지만, 하루도 가지 못했다.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연세대학교 재학생들은 이에 대해 이달 12일 중순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비슷한 일은 타 대학에서도 있었다. 전남대학교에서는 홍콩 지지 대자보와 현수막 훼손을 한 중국인 유학생을 18일 경찰에 신고했다. 서울대학교 학생들도 중앙도서관 건물 벽면에 마련된 레넌벽 일부가 훼손돼 경찰에 20일 고소했다. 부산대학교 학생들 역시 레넌벽 대자보가 철거돼 27일 고소장을 접수했다. 레넌벽은 2014년 홍콩 우산혁명 당시 시위대를 지지하는 메모를 붙였던 장소 이름에서 유래된 참여형 대자보를 뜻한다.

이용표 서울경찰청장은 25일 기준 5개 대학에서 7건의 신고가 접수돼 수사에 착수했고, 중국인 5명을 입건했다고 밝혔다. 이 청장에 따르면 중국인 5명은 재물손괴 혐의로 입건됐다. 목격자 탐문이나 CCTV 영상 분석 등을 통해 관련자가 있다면 추가 입건할 방침이라고 이 청장은 설명했다. 28일 부산 경찰도 부산대학교에서 벌어진 대자보 훼손 사건에 대해 철거자를 파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자보를 훼손한 이에게 재물손괴 혐의 적용도 검토 중이라 전했다.

일부 중국인 유학생들은 단순히 대자보나 현수막 훼손에서 그치지 않고 한국인 학생에게 직간접적으로 폭력을 가하는 경우도 있었다. 14일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는 중국 유학생으로 추정되는 이가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한국인 여학생의 사진을 모욕적인 말과 함께 교내에 게재해 물의를 일으켰다. 동국대학교에서는 15일 교내 건물 내 대자보를 훼손하려는 중국인 유학생과 한국인 학생 사이의 다툼으로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지난 21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학교 본관 앞에서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를 철거한 한국외대를 규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21일 노동자연대 한국외대모임 등 단체가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학교 본관 앞에서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를 철거한 학교 당국을 규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자보, 학교 측이 철거도?

홍콩 시위 지지 문제로 한중 학생들 간 갈등의 장소가 돼버린 국내 대학교. 하지만 한국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를 대학이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재학생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노동자연대 한국외대 모임에 따르면 19일 학교 당국이 홍콩 시위 지지 관련 게시물을 철거하고, 관련 게시물을 부착하지 말라는 안내문을 발표했다.

안내문에는 외부단체의 홍콩 시위 관련 대자보 교내 부착 및 관련 활동을 제한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표현의 자유도 존중돼야 하지만, 학내가 혼란에 빠지고 질서가 훼손되는 걸 지켜만 볼 수 없다는 게 학교 측 설명이다. 이에 노동자연대 한국외대 모임은 21일 교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학교 측이 홍콩 항쟁 지지 대자보 부착이 문제를 유발한 것인 양 주장했다”며 “학생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제약하려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중국인 유학생도 아닌 학교 당국이 대자보를 철거한 사례는 한국외국어대학교뿐만이 아니다. 대전 지역 대학에서도 대자보가 학교 측에 의해 철거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정의당 청년당원모임 모멘텀 대전 지부는 26일 목원대학교와 충남대학교, 카이스트에서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가 부착 1주일 안에 학교 측에 의해 훼손됐다고 비판했다.

한편 한국외국어대학교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학교 구성원들의 안전과 면학 분위기를 위해 외부 단체가 게재한 게시물에 한해서는 철거했다”면서 “재학생들이 부착한 대자보는 현재 교내에도 있다”고 말했다. 철거된 대자보 역시 한국외국어대학교 재학생들이 부착한 게 아니냐는 반론에는 “학교 측에서 특정 정당이나 노동 등의 단체 이름을 내걸면 외부 단체로 보는 경향이 있다”며 “재학생 명의나 학내 동아리 명의라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목원대학교 관계자는 학교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대자보를 철거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학교 당국에 심의와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해당 게시물은 그러지 못했다”며 “과거에도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무허가 게시물이 부착돼 논란이 된 적 있어 철거 했었다”라고 말했다.

충남대학교 측은 게시 장소가 문제였다고 전했다. 관계자는 “해당 게시물이 부착된 장소는 승인 없이는 게재가 불가능하다”면서 “학내에 마련된 자유 게시대에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대자보를 부착할 수 있다. 현재에도 홍콩 지지 대자보가 부착돼 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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