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중등임용고시는 시험 시작부터 끝까지 전적으로 ‘검은 상자’예요. 고시생들은 내가 문제를 잘 풀었는지 아닌지도 모르고 시험에 매달리죠”

(그래픽=김혜선 기자)
(그래픽=김혜선 기자)

지난달 29일 경기도 모 카페에서 만난 A씨(30·여)는 임용시험을 두고 ‘검은 상자’로 표현했다. 올해로 6년 째 사회과목 관련 임용고시에 도전한 A씨는 “이번엔 정말 포기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생각이 든다”며 “교원 임용시험은 교육과정에 대한 심도 깊은 지식을 가진 교원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현 시험 제도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는 임용시험을 응시하면서 ‘기만 당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평가원에게 맡긴 시험이라고 보기엔, 공정성이 떨어진다”면서 “시험을 보고 나면 모범답안이나 채점 근거가 되는 정보가 수험생에게 전혀 제공되지 않는다. 가채점은 개인적으로 하거나 추측을 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모든 문항이 객관식이 아닌 서술형이나 논술형으로 출제되기 때문에, 시험을 치고 난 후에 자기 점수를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초·중등 임용고시를 관장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시험 후 모범 답안이나 채점 기준을 발표하지 않는다는 지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돼왔다. 올해도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교원임용 답안 및 채점기준 공개 법안 개정 요구한다’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와 4일 현재 2,568명이 서명했다. 이 청원자 역시 “일반 공무원 객관식 시험은 답안 공개를 하면서 교원임용은 명확한 답도 없이 강사들의 답안에 의존하여 평가를 하고 점수화한다”며 “출제자 보호와 기준의 모호함때문인지 수험생으로서는 운으로 붙는 불공정한 시험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가장 중요한 교육을 하는 교사를 선발하는 과정이 먼저 공정하고 투명해야하지 않나”고 말했다.

3년차로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B씨(28·여)도 현 임용고시 제도의 공정성에 의문을 품었다. B씨는 “매년 시험마다 ‘문제 유출’ 의혹이 고시생들 사이에서 돈다. 그만큼 임용시험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을 친다”며 “노량진 학원가의 소위 ‘스타 강사’들은 출제위원과의 인맥을 넌지시 자랑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9일 경기 모 카페에서 만난 A씨. 그는 “물론 고시가 운이다. 하지만 평가는 운을 줄이고 공정하고 타당하게 해야 하는 게 아니냐. 이번엔 그런 느낌을 못 받았다”고 말했다. (사진=김혜선 기자)
지난달 29일 경기 모 카페에서 만난 A씨. 그는 “물론 고시가 운이다. 하지만 평가는 운을 줄이고 공정하고 타당하게 해야 하는 게 아니냐. 이번엔 그런 느낌을 못 받았다”고 말했다. (사진=김혜선 기자)

 

B씨는 “내가 준비하는 과목은 학원가에서 ‘2년 주기’로 출제경향이 바뀐다고 말한다”고 했다. 평가원에서는 출제위원이 누군지 공개하지 않지만, 한달동안 어떤 교수가 사라지면 누가 출제위원으로 선정됐는지 짐작이 가능하다는 게 B씨의 설명이다. 그는 “나는 그 다음 출제자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출제자가 매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B씨의 말대로 임용시험 출제위원의 인력풀 문제는 지난해 감사원에서도 평가원의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감사원 조사에 따르면, 평가원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인력풀은 정원의 평균 19.6배수를 확보했지만 중등임용시험은 3.52배수(2018년 4월 기준)에 불과했다.

그나마 있는 인력풀도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다. 2018년도 임용시험 출제위원 선발은 47.1%(213명)만 인력풀 내에서 선발됐고, 나머지 52.9%(237명)는 평가위원의 지인 등을 섭외하는 방식으로 선발됐다. 감사원은 “평가원이 출제위원 인력풀을 갖추려는 노력이 부족해 무작위 추첨이 가능할 정도로 인력풀 규모가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며 “그마저도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투명하고 합리적인 절차가 아닌 개인적인 인맥 등에 의존하여 출제위원이 선발돼 인력풀 등록 여부와 상관없이 특정인을 출제위원단에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참여시키는 사례가 되풀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평가원 관계자는 4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모범 답안과 채점 기준은 공공기관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비공개 원칙을 준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평가원에 따르면, 중등임용시험과 비슷하게 ‘주관식·서술형’으로 출제되는 사법시험과 행정고시도 똑같이 모범답안과 채점기준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인력풀 부족 지적에 대해서도 “2년마다 평가위원이 바뀐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이 관계자는 “평가위원은 적합성과 공정성에 따라 확보할 수 있도록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과 원칙에 따라 엄격히 정해서 구성하고 있다”고 원론적인 내용을 답했다.

지난해 감사원에서 인력풀 부족을 지적한 사안에 대해서는 “평가원은 인력풀 규모의 적정배수를 확보하기 위해 대학 학회와 초중고 학교를 대상으로 (인력) 확충을 노력 하고 있다”고 했다. ‘인력풀 배수가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는 “기밀사항이기 때문에 배수를 안내해드리기는 어렵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평가원은 감사원 감사 조치사항으로 2022년까지 출제위원단 수의 30배 이상을 인력풀로 확충할 계획”이라며 “2018년 10배수, 2019년 15배수, 2020년 20배수, 2021년 25배수 등 순차적으로 인력풀을 확충하고 있다. 올해 인력풀 확충 목표도 도달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다만 평가원은 감사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적했던 전문·비교수 교과 과목의 인력풀 문제는 이같은 인력풀 확충 계획에서 탄력적으로 적용할 방침이다.

그러나 평가원의 이같은 답변은 임용시험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여달라는 고시생들의 호소를 잠재우기는 어려워보인다. 

A씨는 “평가원이 우리나라 최고의 평가 전문가들이라면, 공정성과 투명성을 위해 시험 출제 목적과 의도, 근거 등 가이드라인 정도는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평가원이 모범답안 등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쉽게’ 가려는 변명같다. 만약 임용고시가 수능만큼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시험이라면 이랬겠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물론 ‘붙는 사람은 붙는다’라고 말하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현 임용시험은 전혀 공정경쟁이라고 생각 안 한다. 정말 똑똑하고 마인드도 훌륭한데 현실의 벽에 부딪쳐 포기하는 분도 많다”며 “명확한 답과 채점기준을 시험 끝나자마자 제시해주면 공정에 관한 의구심이 풀리지 않을까”라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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