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강한 살균작용으로 표백·소독 등 용도로 사용되는 락스에는 특이한 주의사항이 기재돼 있다. 바로 락스를 ‘참깨’에 사용하지 말라는 문구다. 최근 온라인에서는 이러한 주의 문구가 검은 깨를 흰 깨로 탈바꿈하는 ‘식품 사기’ 때문에 들어간 것이라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락스에 표기된 주의사항에 참깨에 사용금지 문구가 쓰여있다. (사진=김혜선 기자)
락스에 표기된 주의사항에 참깨에 사용금지 문구가 쓰여있다. (사진=김혜선 기자)

이러한 주장은 국내 락스 원조 회사인 유한·크로락스 공식 홈페이지 질의응답 게시판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11월 한 소비자가 “락스 뒷면 사용법에 참깨에 (식품공전상)사용을 금한다고 나와있는데 참깨에 사용하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질문하자 유한락스 측은 “해당 지침의 취지는 식약처에 문의하시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한 누리꾼이 “참깨와 락스가 만나도 아무런 유해 성분이 나오지 않는다”며 또 다른 댓글을 달아 화제가 됐다.

이 누리꾼에 따르면, 락스를 참깨에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문구는 ‘식품 사기’ 우려 때문이다. 1971년도에 일본에서는 검은 깨를 락스에 담가 희게 탈색시켜 흰 깨로 판매하는 식품 사기가 성행을 부렸다는 것. 이에 일본 후생성에서는 락스를 깨에 사용하지 말라는 지침을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이 누리꾼은 참깨 사용금지 문구에 대해 “이미 일본에서는 후생성의 지침서에서 삭제된 지 오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식약처에서는 그때 번역한 자료를 거의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서 그렇다”고 지적했다. 또 “게다가 이미 일본에서는 차아염소산나트륨을 식품에 뿌리고 나서 잔류물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물로 씻거나 하지 않고서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개정된 자료가 나온 지 오래”라고 덧붙였다.

락스 ‘참깨엔 사용금지’ 어디서 왔나

실제로 식약처 식품첨가물 공전에서는 락스의 원료인 차아염소산나트륨(NaClO)의 사용기준으로 ‘참깨에 사용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문구가 기재돼있다. 공전에 따르면, 차아염소산나트륨은 과일류, 채소류 등 식품의 살균 목적에 한해서만 사용해야 하고 최종식품의 완성 전에 제거해야 한다는 기준이 명시돼있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12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차아염소산나트륨은 식품첨가물 공전에 참깨에 사용할 수 없다고 되어있고, 일본 후생성에서도 동일한 기준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당 문구가 왜 공전에 실렸는지에 대해서는 “너무 오래 전 이야기라 알 수 없다”고 답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관련 부서 분들도 ‘흑깨를 표백하는 범죄 때문에 들어갔다’는 내용은 들어서 알고 있지만, 워낙 오래된 일이라 명확하게 규정을 넣은 이유는 찾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락스를 참깨에 사용할 수 없는 규정이 정말 식품사기 때문인지 명확한 근거를 찾을 순 없지만 추측은 가능하다. 일본 후생성은 지난 1971년 10월 ‘식품, 첨가물 등의 규격 기준’ 일부를 개정했는데, 당해 11월 개정 내용을 관계 기관에 알리면서 “착색 또는 표백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는 식품에 착색료 또는 표백료의 사용을 금지하기로 한 것”이라는 취지를 설명했다. 특히 개정안에는 ‘깨’에 사용이 금지된 첨가물에 ‘차아염소산나트륨’이 포함됐다.

1971년 11월 일본 환경위생국 공문. 깨에 금지된 첨가물을 특정하면서 차아염소산나트륨을 포함했다.
1971년 11월 일본 환경위생국 공문. 깨에 금지된 첨가물을 특정하면서 차아염소산나트륨을 포함했다.

차아염소산나트륨을 이용한 식품 표백 등 문제는 지난 1986년 9월 일본 생활위생국이 각 현으로 내린 공문에서도 확인된다. 생활위생국은 ‘신선한 야채 등에 대한 식품 첨가물의 사용에 대해’ 공문에서 “식품 첨가물을 사용 기준을 위반하고 신선한 야채 등에 사용하는 사례가 있으며, 이들 이외의 식품 첨가물을 신선 야채 등의 발색, 표백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보인다”며 표백을 목적으로 차아염소산나트륨 사용을 지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러한 내용을 봤을 때 우리나라 식품첨가물 공전에 들어간 참깨 사용금지 규정은 범죄 예방을 목적으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식약처 관계자는 “경제적 이득을 목적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있다 보니 (참깨 사용금지 규정이) 들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이 누리꾼이 주장한 ‘일본에서는 차아염소산나트륨 참깨에 사용금지 규정이 후생성의 지침서에서 삭제된 지 오래’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후생성 고시 제 370호 ‘식품, 첨가물 등의 규격 기준’에 따르면 차아염소산나트륨(次亜塩素酸ナトリウム)은 ‘참깨에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고 나와 있다. 우리나라와 후생성 규정의 차이점은 ‘잔류물 제거’ 규정이다. 우리나라에는 차아염소산나트륨을 살균 목적으로 사용한 뒤 ‘최종식품의 완성 전에 제거하여야 한다’는 문구가 나와 있지만, 후생성 규정에는 없다.

일본 후생성 ‘식품, 첨가물 등의 규격 기준’. 차아염소산나트륨(次亜塩素酸ナトリウム)에 ‘참깨에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는 규정이 나와 있다.
일본 후생성 ‘식품, 첨가물 등의 규격 기준’. 차아염소산나트륨(次亜塩素酸ナトリウム)에 ‘참깨에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는 규정이 나와 있다.

한편, 차아염소산나트륨은 식품 세척 등 목적으로 식품첨가물로 허용되고 있는 만큼 참깨와 락스가 만나도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게 식약처의 설명이다. 그러면서도 식약처 관계자는 “차아염소산나트륨은 기구 등 살균소독제, 식품용 살균소독제, 공중위생용 등 크게 세 가지 용도로 사용된다”며 “특히 식품용으로 사용되는 차아염소산나트륨은 식품에 사용되는 만큼, 기준규정에 참깨에 사용하지 말라는 내용이 있으니 그 부분을 (제품에) 표시를 하고 쓰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식품첨가물 공전에) 규정을 하고 있으니 따라주시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해당 문구에 대해 “식약처 규정을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공전 상 기재되어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제품에도 넣은 것”이라며 “저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고 말했다.

검증결과

대체로 사실

 

※참고자료

1. 식약처 식품첨가물공전

https://www.foodsafetykorea.go.kr/portal/safefoodlife/foodAditive/foodAdditiveRvlvDetail.do

2. 일본 후생성 식품첨가물 사용기준(링크 내 ‘使用基準R01.06.06)’ pdf파일 참조)

https://www.ffcr.or.jp/tenka/list/post-17.html

3. 일본 환경위생국 1971년 11월 8일 통지문

https://www.ffcr.or.jp/tsuuchi/1971/11/25A5F042553177D749256949001CE8D6.html

4. 일본 생활 위생국 1986년 6월 5일 통지문

https://www.ffcr.or.jp/tsuuchi/1986/06/5A166F76F5070D6C492567C4000DB236.html

5. 식약처 인터뷰

6. 유한락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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