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발 부족 文정부 부동산 대책부터 항공업계 재편까지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2019년 기해년(己亥年)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1997년 이후로 이어진 보통의 나날이었다. 산업은 어려웠고, 기업은 살고자 했다. 다만 올해 산업결산에서 특기할 점은 기업의 생존 전략이 점차 정당 정치의 모습을 닮아간다는 것이다.

흩어지면 죽는다는 정치의 날선 불문율이 산업에선 뭉치면 산다는 명제로 바뀌었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에서 촉발된 항공업 재편은 오는 2020년 저비용항공사 인수합병전의 서막을 열었다.

유료방송 인수합병 시장도 뜨겁다. 불과 3년 전인 2016년 방송·통신 시장의 독과점을 이유로 SK텔레콤의 CJ헬로 인수를 반대하던 LG유플러스가 2019년 12월 13일 정작 본인이 CJ헬로의 인수를 마무리했다. 업계에선 향후 SK텔레콤이 현대HCN을 인수할 것이라고 전망했고, KT도 딜라이브 인수에 다시 한 번 몸이 달았다.

그런가하면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족적을 남긴 상남(上南) 구자경과 주산(宙山) 김우중이 올해 숙환으로 별세했다. 큰 별들이 삶을 마치고 역사 속으로 스러졌다.

<뉴스포스트>가 일곱 가지 이슈를 통해 2019년 한 해를 되짚어봤다.
 

① 까고 까고 또 까고...‘약발 없는 마트료시카식 부동산 대책’

서울 아파트값이 23주 연속 상승하며,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등 정부의 각종 부동산 규제 정책을 모두 거스르고 있다. (자료=뉴시스)
서울 아파트값이 23주 연속 상승하며 분양가 상한제 등 정부의 각종 부동산 규제 정책을 모두 거스르고 있다. (자료=뉴시스)

2019년 12월 16일 문재인 정부가 네 번째 강도 높은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17년 6월 19일 첫 번째 부동산 정책에 이어, 같은 해 8월 2일 두 번째 부동산 정책을 발표했고, 2018년 9월 13일에 세 번째 부동산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6.19 부동산 대책’은 이른바 핀셋 규제로 불리는 대책으로, 청약조정대상지역에 대해 LTV를 70%에서 60%로, DTI를 60%에서 50%로 낮췄다. 단 부부 합산 연 소득이 6,000만 원 이하일 경우에는 해당 규정을 적용하지 않았다.

‘8.2 부동산 대책’에선 투기과열지구와 투기지역에 대한 LTV와 DTI에 제한을 뒀다는 점이 특징이다. 주택담보대출을 1건 이상 보유한 사람은 투기과열지구와 투기지역에 LTV와 DTI가 30%로 제한됐다. 주택담보대출 미보유시에는 각각 40%, 무주택세대주 등 서민실수요자는 50%까지 늘어났다. 또 주택임대사업자로 등록 시 재산세와 양도소득세 등에서 혜택을 줬다.

‘9.13 부동산 대책’은 종합부동산세 인상과 유주택자의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핵심이었다. 3주택 이상일 경우 종합부동산세 상한이 종래 150%에서 300%까지 2배로 증가했다. 또 실거주 목적 외 공시가격 9억 원을 초과하는 주택의 경우 주택담보대출이 금지됐고, 장기보유특별공제도 2년 거주 요건이 추가됐다.

최근 발표된 ‘12.16 부동산 대책’에선 대출규제와 세금규제 등 여러 부분에 걸친 강도 높은 규제가 발표됐다. 우선 투기과열지구에 한해 LTV가 40%였던 것이 9억 원 이상 아파트라면 20%로 강화된다.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의 15억 원을 초과하는 고가 아파트의 경우 다주택자만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했던 것을 모든 차주에 대해 주택 구입 목적의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한다. 또 실거래가의 70% 수준인 공시가격을 80%까지 높이고, 종합부동산세의 세율도 최대 3배 이상 인상한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2년 반 동안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만 네 차례, 자잘한 부동산 대책까지 합하면 모두 18차례 부동산 관련 대책을 내놨다. 문제는 정부가 수차례 마트료시카 인형을 열듯 부동산 안정화 대책을 내놓았음에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서울시의 부동산 가격이 40% 가까이 폭등해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정부가 집중적으로 부동산 안정화 정책을 쏟아 부은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값 상승이 가팔랐다. KB부동산 리브온이 발표한 <월간 KB주택가격동향>의 주택 평균매매가격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난 2017년 5월부터 2019년 11월까지 서울 지역 아파트의 평균매매가격은 39.6% 올랐다. 같은 기간 서울 주택(아파트+단독+연립) 평균매매가격도 23.3% 증가했다.
 

② 2조5,000억원짜리 날개...‘HDC현대산업개발 날았다’

정몽규 HDC 회장이 11월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HDC현대산업개발 본사 대회의실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몽규 HDC 회장이 11월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HDC현대산업개발 본사 대회의실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을 품었다.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두고 지난 11월 7일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과 제주항공(애경그룹)-스톤브릿지 컨소시엄 등이 매각 최종 입찰에 참여했다.

금호산업은 11월 12일 이사회를 통해 최종 입찰에 참여한 컨소시엄 가운데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은 아시아나항공 매입 금액으로 약 2조 5,000억 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제주항공(애경그룹) 컨소시엄은 매입 금액으로 약 1조 5,000억 원을 제시해 최대 1조 원 이상의 차이가 났고, 이에 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이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2019년 내 마무리될 전망이다. 금호그룹과 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은 주식매매계약 체결에 연내 서명하기로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아시아나항공 매입에 실패한 제주항공(애경그룹)은 12월 18일 국내 5위권 저비용항공사인(LCC) 이스타항공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절차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LCC 1위인 제주항공과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겠다는 복안이다.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또한 연내 주식매매계약 체결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인수합병에 따라, 오는 2020년 국내 9곳에 달하는 LCC 업계의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③ 삶에서 역사로...‘상남(上南)·주산(宙山) 卒’

故 구자경 LG 명예회장. (사진=LG 제공)
故 구자경 LG 명예회장. (사진=LG 제공)

상남(上南) 구자경(具滋暻)과 주산(宙山) 김우중(金宇中)이 2019년 기해년 숙환으로 별세했다. 1925년생인 상남은 향년 94세, 1936년생인 주산은 향년 83세였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신화이자 산증인이었던 큰 별들이 올해 역사 속으로 스러졌다.

상남은 구인회 LG 창업주의 장남으로, 1925년 경남 진주시 지수면에서 태어났다. 구 명예회장은 LG그룹 창업 초기이던 1950년 스물다섯의 나이에 모기업인 락희화학공업주식회사에 입사해 명예회장으로 경영일선에서 은퇴할 때까지 45년간 기업 경영에 전념했다. 구인회 회장이 62세를 일기로 1969년 12월 31일 타계함에 따라 구 명예회장은 45세가 되던 1970년 1월 9일 LG그룹의 2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故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25년간 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LG그룹은 매출이 260억 원에서 30조 원대로 약 1,150배 성장했고, 임직원 수도 2만 명에서 10만 명으로 증가했다. 주력사업인 화학과 전자 부문은 부품 소재 사업까지 영역을 확대해 원천 기술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수직계열화를 이루며 지금과 같은 LG그룹의 모습을 갖출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주산은 1936년 12월 대구에서 태어났다. 6남매 중 4남이었다. 6.25 전쟁 중 부친이 납북돼 15세부터 가장으로 생계를 도맡았다고 전해진다. 25세가 되던 1960년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1966년까지 섬유 수출업체인 한성실업에서 일하다, 1967년에 자본금 500만 원을 공동 출자해 대우실업을 세웠다.

1970년대부터 대우전자와 대우건설, 대우조선 등을 일궈 업역을 확장했다. 1981년 45세에 대우그룹 회장에 올랐다. 그다음 해인 1982년 대우그룹은 재계 4위에 올랐다. 주산은 1998년 대우그룹을 41개 계열사를 가진 재계 서열 2위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대우그룹은 1997년 IMF 구제금융을 계기로 유동성 위기를 맞는다. 1999년 부채가 500억 달러에 이른 대우그룹은 41개 계열사 가운데 16개를 매각했고, 12개가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같은 해 故 김우중 회장은 회장직을 사퇴하고 경영을 포기했다. 이후 검찰 수사를 피하기 위해 해외 도피생활을 하다가 지난 2005년 6월 14일 입국해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듬해 징역 8년 6개월과 추징금 17조 9,253억 원의 형을 구형받았다. 2007년 대통령 특사로 사면됐으나, 17조 8,000억 원에 달하는 추징금은 고스란히 남은 상태다.

대우그룹의 해체의 배경에 대해 당시 김대중 정부의 탄압이라는 설과 정치 상황과 무관한 경영 실패라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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