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2019년 기해년(己亥年)을 관통하는 정치 이슈는 단연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이었다. 패스트트랙에 지정된 안건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수사처 신설안이 핵심인 검찰 개혁안이다. 워낙 첨예한 사안이다 보니 연초부터 여야 간 갈등이 극심했고, 역대 최악의 법안 처리율 ‘30.5%’를 기록하는 오명이 따라왔다. 여야가 패스트트랙 안건을 두고 옥신각신 하는 사이 수많은 민생 입법이 지연되기도 했다.

고 김민식 군의 부모 김태양 씨와 박초희 씨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1회국회(정기회) 제12차 본회의에서 어린이 교통안전 법안인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과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 주차장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자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고 김민식 군의 부모 김태양 씨와 박초희 씨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1회국회(정기회) 제12차 본회의에서 어린이 교통안전 법안인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과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 주차장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자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⑤ 동물국회의 부활

2019년 한 해 동안 여야의 극심한 대치를 불러왔던 패스트트랙 안건은 지난 4월30일 지정됐다. 선거법과 검찰 개혁안의 패스트트랙 지정은 그 과정부터 험난했다. 자유한국당의 격렬한 반대 속에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등 군소 야당은 선거법과 검찰개현안의 신속처리안건 지정을 강행했고, 한국당은 ‘육탄전’으로 이를 막아섰다.

국회 내 폭력사태는 국회 선진화법 도입 이후 사라졌지만, 패스트트랙 정국과 함께 화려하게 부활했다. 한국당은 사법개혁특별위원회와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등에서 패스트트랙 지정을 막기 위해 회의장 자체를 봉쇄하는 작전을 짰고, 패스트트랙 법안 발의 자체도 막기 위해 국회 사무처 앞을 몸으로 막아서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몸싸움이 벌어졌고, 결국 탈진한 의원들이 곳곳에서 응급 구조대에 실려 나갔다. 패스트트랙 처리를 위해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으로 보임된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한국당 의원들에 의해 자신의 사무실에 감금되는 웃지 못 할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편, 몸싸움방지법으로 불리는 국회법 165조(국회 회의 방해 금지)와 166조(국회 회의 방해죄)에서는 국회에서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 또는 그 부근에서 폭력행위를 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5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형이 처해진다. 선진화법을 위반할 경우 향후 출마도 제한된다. 공직선거법은 국회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경우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규정도 두고 있다.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고소·고발된 국회의원은 모두 108명이다. 소속당별로는 한국당이 58명으로 가장 많고 더불어민주당 40명, 바른미래당 6명, 정의당 3명 차례로 고발됐다. 문희상 국회의장도 고발된 상태다.

⑥ 분당, 또 분당…다당제 사실상 실패

새정치 바람을 일으켰던 안철수 전 의원의 국민의당은 결국 당내 화학적 결합을 이루지 못하고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으로 나뉘었다. 기해년은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모두 또다시 분당 사태를 겪으면서 국회 원내에서 영향력이 급격하게 쪼그라들었다. 사실상 다당제 정착이 실패한 것.

먼저 분열한 것은 평화당이다. 평화당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에 반발한 14명의 의원들이 만든 당이었다. 그러나 평화당은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극심한 내홍으로 창당 1년 6개월만에 갈라섰다. 평화당에 남은 것은 정동영 대표와 당권파 의원 2명이다. 박지원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비당권파 의원 9명은 지난 8월 12일 평화당을 탈당하고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대안신당)’로 신당을 창당하기로 했다. 현재 대안신당은 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총선 전 창당을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국민의당을 계승한 바른미래당 역시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균열을 봉합하지 못하고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 바른미래당은 당권파인 손학규 대표와 비당권파인 유승민계 의원들의 갈등으로 오랫동안 내홍을 겪어왔다.

결국 지난 9월 유승민계 의원들은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변혁)’ 의원모임을 출범시켰다. 변혁 모임에는 일부 안철수계 의원들이 합류하면서 손 대표의 사퇴를 압박했다. 그러나 손 대표 측은 변혁 모임 의원들에 당원권 정지 등 징계를 내리면서 강하게 대응했고, 변혁 모임은 결성 한달 만에 ‘신당 창당’을 공식화했다.

현재 변혁 모임 의원들은 신당 이름을 ‘새로운보수당’으로 정하고 2020년 1월 5일 창당 준비를 마친 상태다.

⑦ 태풍의 눈 패스트트랙과 민식이 엄마의 눈물

“왜 우리 민식이가 그들의 협상카드가 돼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난달 29일 통과가 예정됐던 ‘민식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신청으로 무산되자 고(故) 김민식 군의 어머니 박초희 씨가 뱉은 말이다. 박씨는 “정치에 대해 몰라서 이런 대접을 받는건 아닌지, 이렇게 양쪽에서 이용만 당하다 버려지는 건 아닌지, 제발 우리 아이들을 이용하지 말아달라”며 흐느꼈다.

민식이법은 나빠진 여론을 의식한 여야가 지난 12월 10일 본회의를 통과시켰지만, 교통사고 피해 어린이 부모들의 눈물은 여야 간 정쟁으로 인해 민생 법안까지 발목잡힌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실제로 20대 국회는 역대 최악의 식물국회로 평가받는다. 26일 현재 국회 법안 처리율은 30.5%. 지난 19대 국회 법안 처리율이 41.7%, 18대는 44.4%인 것을 고려하면 초라한 수치다.

우후죽순으로 발의되는 법안으로 법안 처리율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지만, 올해 본회의 법안 처리 건수는 다른 연도와 비교해도 특히 저조하다. 올해 본회의에서 처리된 법안은 모두 1647건으로, 지난해 처리된 2723건과 2017년 처리된 2121건과 비교해도 매우 낮았다.

한편, 20대 국회에 접수된 법안은 총 2만3579건으로 역대 최대 규모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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