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종 관련 작품 多...연구는 아직 부족
-박 소장 “현실 정치, 세종 리더십 따라가야”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2019년 올해는 유독 세종대왕 관련 대중문화 콘텐츠가 많았다. 지난 7월 훈민정음 창제설을 다룬 ‘나랏말싸미’를 시작으로 이달 26일에는 세종 대 관노 출신 과학자 장영실을 다룬 ‘천문’까지 총 2편의 영화가 개봉됐다. 약 600년 전 인물이 여전히 화제인 이유는 무엇일까.

박현모 세종리더십연구소 소장. (사진=이별님 기자)
박현모 세종리더십연구소 소장. (사진=이별님 기자)

영화 등 대중문화 콘텐츠는 당대 사회를 반영한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정가에서 유독 매서운 칼바람이 불었다. 지난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성공했지만, 올해는 북미 간 긴장만이 고조되고 있다. 옆 나라 일본의 적반하장 적 행태는 정점을 찍었다. 또한 여의도에서는 상반기부터 검찰 개혁과 선거법 등을 둘러싸고 갈등이 연말까지 폭발하고 있고, 청와대에서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 인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국내외 정치 상황이 바람 앞 등불처럼 위태로웠던 2019년. 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뽑히는 세종대왕이 재조명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조선 전기 태평성대와 조선 최고 전성기를 일군 세종대왕을 국민들은 은연중 그리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약 600년 전 인물을 그리게 되는 현실 정치 상황. 그 어느 때보다도 세종대왕의 리더십이 필요한 요즘 <뉴스포스트>는 이달 24일 경기 여주 세종대왕역사문화관에서 박현모 세종리더십연구소 소장을 만났다.

세종리더십연구소는 세종대왕 리더십 관련 ▲ 학술연구사업과 여주대학교 재학생들의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는 ▲ 대학 교양교과목 개발사업, 청소년 등 일반 시민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 사회교육사업을 하고 있다. 한국 정치사상을 전공한 박 소장은 2001년부터 올해로 19년째 세종대왕과 그의 리더십을 연구하고 있다. 자타공인 세종대왕 전문가인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세종대왕에 대한 연구가 10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지난 24일 경기 여주 세종대왕역사문화관에서 박 소장과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사진=이별님 기자)
지난 24일 경기 여주 세종대왕역사문화관에서 박 소장과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사진=이별님 기자)

 

-세종대왕은 온 국민이 다 알고, 존경하는 인물이다. 아직도 연구할 게 많이 남아있는가.

“장영실을 예로 들면 ‘장영실이 자격루를 발명했다’ 이런 부분은 연구가 됐다. 하지만 장영실이 어떤 어려움을 극복했는지, 많은 이들의 반대에도 어떻게 성과를 냈는지 등은 연구가 잘 안 돼 있다. 세종대왕이 어떻게 힘을 실어줘서 장영실이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성과를 내게 했을까. 이런 걸 리더십 과정이라 할 수 있는 데 이 부분이 연구가 안 됐다. 우리가 진짜 관심이 있는 부분은 연구가 안 돼 있고, ‘세종대왕이 얼마나 훌륭했다더라’ 이런 부분만 연구가 됐다”

“많은 사람은 세종대왕의 업적이 훌륭했다는 사실을 넘어서서 그가 어떻게 ‘훌륭한 사람’이 됐는지를 궁금해한다. 중요한 것은 세종이 읽었던 책들이다. 세종 하면 떠오르는 게 ‘독서’인데, 세종의 ‘생각’을 만들어낸 문헌에 대한 연구는 안 돼 있다. 제가 과거에 3년간 세종 관련 문헌 연구를 한 적이 있다. 엄청난 책들이 있었다. 세종에 대한 연구는 실록 연구가 주였다. 10분의 1은 바로 세종실록에서 나왔다. 나머지 9는 연구도 안 됐다.”

-세종 때 편찬됐던 수많은 책도 포함되는가.

“세종이 읽었던 책과 세종 대에 편찬된 책들 모두를 말하는 것이다. 세종 관련 문헌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다. 중국에도 있고, 미국 버클리 대학교에도 있다. 일본에도 정말 많다. 우리나라에도 전국에 흩어져 있다. 저는 세종 전집을 만들려고 한다. 미국에서는 링컨 전집이 1948년도에 나왔다. 전집이 만들어지니까 링컨 관련 연구가 2만 2천 건 정도 더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세종이 훌륭하다고 하는데, 정작 세종 전집 조차 만들지 못했다”

-현재 학계에서 세종대왕과 관련해 집중하고 있는 연구 주제는 무엇인가.

“제가 지난해 국제학술대회에서 세종대왕 관련 연구 동향을 발표했는데, 대부분 한글과 ‘아래아(ㆍ)’의 용도에 대한 연구가 많았다. 그다음은 과학 기술에 대한 연구다. 제가 앞서 말씀드린 세종의 사상이라던가 이런 부분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약하다. 다만 세종의 리더십에 대한 연구는 학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사항이다”

-아직도 세종에 대한 연구 과제가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세종대왕에 대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부분이 또 있다면 무엇인가.

“대표적으로 세종의 회의 방식이다. ‘경연(經筵)’이라는 회의인데, 많은 신하가 아이디어를 내놓고 자유롭게 토론한다. 세종은 경연에서 나온 신하들의 아이디어를 단순히 말로 끝나게 하지 않고 일로 연결하도록 했다. 그의 독특한 대화법이 이를 가능케 했다. 세종의 어록 중 ‘부디 자세히 듣고 충분히 살핀 다음 말하라’라는 게 있다. 한자로는 상문숙찰(詳聞熟察)이다. 상세히 듣고, 충분히 익힌 다음 살피라는 내용이다. 세종의 말씀은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와 사회는 물론 가정에서도 통한다”

“2020년 집현전 창설 600돌을 앞두고, 지난주 대전의 대덕 연구단지를 다녀왔다. 이곳에는 2만여 명의 박사들이 있는 반면 집현전 학자들은 20명이다. 어떤 박사님이 제게 ‘집현전 학자들은 대덕 연구단지 박사 인구 1천분의 1밖에 안 되는데 더 효율적이다’라고 말했다. 이곳의 박사들은 세종의 ‘정신세계’에 관심이 많다. 대체 어떤 멘탈리티를 추구하길래 이렇게 (효율적으로) 일했는지 궁금해한다.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연구가 잘 안 돼 있다”

-세종대왕에 대해 알면 알수록 위대함이 느껴진다.

“올여름 3개월 동안 세종이 읽었던 책 중 세종이 실제로 활용한 단어를 독서 카드로 모아봤다. 제일 많이 나온 게 ‘자기 절제력’이었다. 한자로 적중이지(適中而止)다. 적당히 중간에서 그친다는 의미다. 술도 중간에 그칠 수 있는 힘. 스스로 내려놓는 힘이다. 세종실록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상이다. 세종 때 많은 인재 중 실패한 이들은 절제력을 놓친 사람들이고, 성공한 이들은 자기를 절제하고 성장한 사람들이다”

“대단한 사상이 아니다. 한자로 그칠 지(止)라는 뜻이다. 어떻게 보면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인 교수들이 가장 위험하다. 말을 적당히 절제하고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더 위험하다. 세종이 훌륭한 천재라서 또는 타고난 집안이 좋아서가 아니다. 그는 자기를 부단히 바꿔온 사람이다. 성장하면서 절제하는 그런 사람이다. 세종이 이렇게 되기까지 어마어마한 독서량과 공부량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세종의 공부량은 대략 어느 정도인가.

“저는 세종을 보면 공부라는 게 대체 뭐였나 생각이 든다. 시험을 보기 위해 공부를 해왔는데, 진짜 공부는 안 했구나 싶다. 진짜 공부는 인사(人事)다. 사람을 알아보는 것. 일을 제대로 하는 방법. 인사에 대한 공부를 우리가 제대로 안 한 거 같다. 세종은 이 부분에서 다른 사람들을 뛰어넘었다. 공부를 엄청나게 많이 했기 때문에 신하들이 무슨 말을 해도 대강은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는 티를 내는 분은 아니다. 임금이 모른다고 하니 신하들이 더 신나게 이야기하는 거다. 세종의 리더십은 바로 이런 것이다”

-현실 정치가 많이 어지럽다. 정치인들이 세종의 어떤 점을 본받았으면 하는가.

“가장 중요한 건 인사다. 인재 등용할 때 공사 구별을 해야 한다. 현실 정치에서는 겉은 공정해 보이는데, 사사롭게 사람을 쓴다. 우리나라의 그 많은 국책연구기관에 자기 사람을 내려보내는 일이 너무 만연하다 보니 진짜 인재들이 활약하지 못한다. 세종은 공을 크게 세운 사람에게 보상을 하지, 사람을 이끌어가는 직을 절대 주지 않았다. 조직을 이끄는 자리에 낙하산 인사가 내려가면 조직 전체가 망가지기 때문이다. 훈장이나 보상을 줘야지 직을 주는 것은 적절치 않다”

-국회에서 패스트트랙 법안을 두고 여야가 연일 충돌 중이다. 국회의원들은 필리버스터까지 했다.

“국회에서 필리버스터를 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남의 말을 듣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왜 저런 말을 했는지 입장을 바꿔 생각해본다. 이어 뭘 같이 할 수 있는지 이야기해봐야 한다. 꼰대와 멋진 선배의 차이가 무엇인가. 멋진 선배는 이야기를 듣고 살핀 다음 도움을 준다. 꼰대는 자기 할 말만 하고 반응을 살핀 다음 상대에게 ‘얘기 해 봐라’라고 말한다. 말하는 방식만 바뀌어도 정치권과 사회에서 엄청난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정당 이야기를 하자면, 현대 사회에서 정당을 무시할 수 없다. 대중들을 대표한 정당이 국회에서, 지방자치단체에서 활동한다. 문제는 정당 자체 이익이나 공천권 가진 사람의 눈치만 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그들을 대표하는 국민의 생각을 보는 이들은 적다는 것이다. 세종은 자기를 끊임없이 객관화해 보는 사람이다. ‘내가 이런 태도를 취하면 백성들이 어떻게 볼까’라면서 극기(克己)를 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감정이나 욕심을 이성적인 의지로 눌러 이기는 것이다”

“현대 정당에서는 자신을 관조하지 않는다. 당에서 하는 거니까 무조건 따라간다. 당 차원에서 스스로를 반성하고 비판해야 한다. 당을 넘어서 초당적인 정책 또는 외교적 협의도 해야 하는데, 그런 시도가 없는 거 같다. 당 자체는 똘똘 뭉치는데, 결과적으로는 국민들과 국가 이익과는 무관한 결과가 나온다.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고 자기를 넘어서는 세종의 리더십이 우리 정당 민주주의 체제에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하실 말씀이 남아있다면.

“좋은 책을 백번 읽으면 현인(賢人)이 되지만, 좋은 책을 백번 읽어 깨달은 것을 실천하면 성인(聖人)이 된다는 말이 있다. 쉽게 말하면 이것은 공부를 제대로 하는 걸 말한다. 사람 공부. 일 공부. 공부를 제대로 해서 이치를 아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현인들은 많지만, 정작 자기가 아는 걸 실행하지 않는다. 세종은 이를 실행한 사람이다. 저는 어떻게 하면 세종을 19년 동안 배운 걸 실행할 수 있을까 고민해 봤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청소년들에게 세종을 알리는 일이라 생각했다”

“제가 좀 더 일찍 세종을 알았더라면 (인생이) 달랐을 거 같다. 그래서 중학교에 강의를 하러 많이 간다. 처음에는 세종의 이야기를 한 시간 동안 하면 아이들은 지루해했다. 3년간의 시행착오를 겪고 난 후 아이들이 세종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어른이 되기 전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까지 세종의 이야기를 잘 알려주는 게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년퇴임까지 한번 부지런히 해보려고 한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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