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금융과 거리 먼 이력…기재부 출신 퇴직자 챙겨주기 의혹

[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서민금융진흥원 이계문 위원장의 취임 1주년이 갓 지났다. 이 위원장은 지난 1년 동안 1만 km를 발로 뛰며 현장 중심의 소통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취임 때부터 제기된 ‘낙하산 인사’ 의혹이 꼬리표로 남아있고, 홍보 위주의 경영을 이어나갔지만 실제로 저신용자 서민에 대한 지원은 줄어 ‘보여주기 식 행보’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계문 신용회복위원회 위원장(오른쪽)이 서민금융 이용 희망자와 1:1 상담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신용회복위원회)
이계문 신용회복위원회 위원장(오른쪽)이 서민금융 이용 희망자와 1:1 상담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신용회복위원회)

‘서금원은 정부 관료들의 퇴직자 재취업 창구’ 오명 

서민금융진흥원은 미소금융과 햇살론, 바꿔드림론 등 여러 곳에 나눠져 있던 서민금융 재원과 조직, 기능을 하나로 통합시켜 지난 2016년 9월 출범했다. 

임기 3년의 서민금융진흥원장은 별도로 공모절차 없이 금융위원장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다. 신용회복위원회 위원장도 무보수로 겸임한다. 

초대 수장 김윤영 전 원장은 임기 1년을 앞두고 ‘일신상의 사유’로 돌연 사의를 표명했다. 새로 출범한 조직을 큰 문제없이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아온 김 전 원장은 원장직을 내려놓을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이에 정권이 교체되면 수장이 교체되는 고질적인 관행에 따른 외압에 의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됐다. 

또한 김 원장이 사퇴 의사를 밝힌 지 사흘 만에 이계문 원장이 후임으로 내정되며, 기재부 퇴직자의 자리 챙겨주기를 위한 ‘관피아’(관료+마피아), ‘낙하산 인사’가 아니냐는 논란도 나왔다.

김 전 원장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서민금융본부장과 신용회복위원장 등의 경력을 갖고 서민금융진흥원장에 임명된 반면 이계문 원장의 근무 이력은 서민 금융과는 별다른 관련이 없어 낙하산 인사 의혹은 더욱 심화됐다.

이 원장은 서울대 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 태국 아시아공과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제34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경제기획원(현 기재부)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했다. 재정경제부에서 금융정책실, 국제금융국, 기획관리실, 정책조정국 등을 기재부 예산실에서 문화-방송예산과장, 국방예산과장을 지낸 뒤 기획재정담당관과 기획조정실 정책기획관을 거쳐 최근까지 기재부 대변인(국장급)으로 일해 왔다.  

금융위는 “금융, 재정, 정책조정 등 경제 금융 정책 전반에 대한 폭넓은 경험과 대내외 협력, 조정 능력을 통해 향후 서민금융진흥원 및 신용회복위원회가 서민 영세업자 및 청년층을 위한 종합적인 서민금융 지원 기관으로서 확실히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어 적입자로 판단했다”라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 원장의 기재부 경력을 살펴보면 예산, 정책, 외환 쪽 근무 이력이 대부분으로 서민금융과는 거리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민금융진흥원에서 진행한 2017, 2018, 2019년 상반기까지 등급별 대출 현황. (자료=정태옥 의원실)
서민금융진흥원에서 진행한 2017, 2018, 2019년 상반기까지 등급별 대출 현황. (자료=정태옥 의원실)

서민 위해 발로 뛰지만, 지원은 축소?

낙하산 인사, 서민금융과는 거리가 먼 이력 등 각종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이계문 원장은 취임 후 1년 동안 ‘1만 386.7km’를 이동했다. 서민들의 애로사항을 듣고 실질적인 도움을 지원하고자 전국 곳곳에 있는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 25곳을 30회에 걸쳐 방문했다. 이 원장 취임 이후 서민금융지원센터 통합 콜센터인 ‘1397’ 고객상담 응대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2% 증가했고,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 방문자도 25.8% 증가하는 등의 성과를 보였지만, 기관 본래의 목적인 저신용자 대출 규모는 줄어 ‘보여주기 식 행보’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태옥 자유한국당 의원실에 따르면 서민금융진흥원의 미소금융지원은 2018년 3,549억에서 2019년 상반기 기준 1,576억 원(집행률 전년 대비 44.4%)에 그쳤다.

또한 2019년 상반기 기준 신용등급 1~5등급 고신용자의 미소금융 대출은 173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65억 원이 줄었다. 6등급 이하 저신용자 지원액은 1,404억 원으로 6개월 전보다 1,510억 원 감소하며, 저신용자에 대한 지원이 더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저소득·저신용 서민들의 실질적인 자립지원과 포용적 금융 수행을 위해 출범한 서금원이 당초 설립 취지와는 다른 반쪽짜리 공공기관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태옥 의원은 “서민금융진흥원이 100억 원에 가까운 기관 운영 손실을 줄이기 위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돌아갈 미소금융대출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특히 금융소외계층인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을 급격하게 줄이고 있어 우려스럽다”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서민금융진흥원 원장과 신용회복위 원장, 국민행복기금 이사장 겸직도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서금원과 신복위 등 두 기관은 서로 다른 업무를 하는 기관이지만 한 사람이 겸직하면서 지원 중복과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

서민금융진흥원은 박근혜 정부 시절 여러 군데 흩어져 있던 서민 금융 기관과 상품들을 한곳에 모아 비효율과 불편을 해소하고자 출범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업무의 이해충돌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신용회복위원회와 국민행복기금까지 통합했다. 하지만 당시 진흥원 설립 한 달 뒤인 2016년 10월 ‘국정 농단’ 사건이 터지면서 3개 기관의 통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서민금융 대출을 총괄하는 서민금융진흥원과 자회사로 소속된 국민행복기금은 서민 대상 대출과 관련한 의사 결정이 업무의 핵심인 반면, 신용회복위원회는 채무 감면이나 상환 기간 연장 등의 채무조정이 주된 업무다. 이에 서민금융진흥원과 국민행복기금, 신용회복위원회 내 의사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겸직하는 수장이 특정 조직 입장에 쏠릴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서금원은 서민 대출 등의 업무를 하고 신복위는 채무 조정을 담당한다”라며 “두 기관의 목적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업무의 이해 상충 소지가 있어 각각의 분리가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지난 정부의 산물인 서금원은 출범 당시에도 금융위가 진흥원의 인사권을 장악하고 있는 행태를 보여 ‘전관 문제’ 논란이 계속돼왔다. 이번 정부에서도 지난해 10월 임명된 이효임 부원장과 서흥영 이사 등이 각각 금융감독원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출신이었고, 상임감사에도 조성두 전 한국조폐공사 감사가 임명되며 악습이 반복되고 있다. 

서민금융진흥원과 신용회복위원회 원장 및 국민행복기금 이사장 겸직에 따른 이해 상충 문제도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다. 취임 1주년이 지난 이계문 원장은 낙하산 인사, 이력 논란 등 부정적인 시선을 뒤엎기 위해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 커다란 과제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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