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인 취업지원 사업...노동자, 실적 압박에 극단적 선택
장애인 단체, 강력 항의...노동부 vs 기재부 책임 떠넘기기?
“다양한 직무의 중증장애인 일자리 마련이 근본적인 대책”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다사다난 한해를 뒤로하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할 준비하는 연말. 2019년 한해가 단 한 달도 남지 않은 지난달 5일 전남 여수에서 다른 장애인들의 자립을 돕던 故 설요한 씨는 전날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망 당시 그의 나이는 고작 25세. 누군가는 한해를 정리하고 희망찬 새해를 기대했을 연말. 무엇이 꽃다운 청춘을 죽음으로 몰아갔을까.

지난달 11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장애인 단체 관계자들이 故 설요한 씨를 추모했다. (사진=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페이스북 제공)
지난달 11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장애인 단체 관계자들이 故 설요한 씨를 추모했다. (사진=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페이스북 제공)

뇌병변 장애인인 설씨는 지난해 4월부터 여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동료지원가로 활동해왔다. ‘동료지원가’는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의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시범사업’을 통해 나온 중증장애인 일자리다. 상담과 자조 모임 등을 통해 실업 상태 또는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동료 중증장애인을 발굴하고 취업 의욕을 고취 시키는 게 동료지원가의 역할이다. 설씨와 같은 중증장애인들이 직접 동료지원가로 활동하는 것이다.

해당 시범사업이 탄생하게 된 배경은 2017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등 장애인 단체 관계자들이 공공부문 일자리 1만 개 도입 등을 촉구하며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을 점거하면서다. 계속된 투쟁으로 2018년 노동부와 전장연은 공공부문 장애인 일자리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논의해왔다. 그 결과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시범사업’이 탄생했다. 시범사업은 이듬해 4월부터 전국의 30여 개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대상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장애인 단체 관계자들은 시범사업이 도리어 설씨를 죽음으로 몰아갔다고 주장한다. 전장연과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이하 ‘한자협’) 관계자 등은 설씨의 죽음에 항의하며 새해 벽두부터 이틀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을 기습 점거하기도 했다. 이들은 왜 시범사업이 설씨의 사망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뉴스포스트>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이달 15일 서울 종로구 한자협 건물에서 박현 동료상담위원회 부위원장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박현 동료상담위원회 부위원장. (사진=이별님 기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박현 동료상담위원회 부위원장. (사진=이별님 기자)

실적제와 환수, 청년 노동자를 죽음으로

박 부위원장에 따르면 동료지원가는 발달장애와 정신장애, 신체 외부 및 기타 장애 등을 가진 중증장애인 중 일정 부분 자격 요건을 갖춘 이들이 신청할 수 있다. 설씨와 같은 뇌병변 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이 동료지원가로 주로 활동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동료지원가들은 한 달에 자신과 같은 동료 중증장애인 4명을 발굴하고, 자조 모임이나 상담 등의 방법으로 1인당 5번씩 총 20번을 만나야 했다.

동료지원가들은 참여자 1인당 20만 원의 수당을 받는데, 한 달에 4명을 만나면 총 80만 원의 ‘기본운영비’가 나온다. 기본운영비는 노동부가 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같은 수행기관에 지급한다. 4대 보험을 제외하면 약 66만 원이다. 참여자가 취업에 성공할 시 1인당 20만 원이 추가된다. 박 부위원장은 “식비나 교통비 등이 따로 나오는 게 아니다. 모두 60만 원 선에서 해결해야 한다”며 “60시간에 60만 원이 합당하다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안 보이는 근무시간까지 합하면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동료지원가들의 임금은 철저히 ‘실적제’로 지급되고, 실적을 달성하지 못할 시 수당을 ‘환수’한다는 점이다. 한 달에 상담 20번을 한 번이라도 채우지 못하면, 동료지원가는 1인에 해당하는 수당 20만 원을 반납해야 했다. 사실상 기본급 0원에 인센티브 100%이다. 박 부위원장은 “근본적인 세팅 자체가 잘못됐다”며 “(민간)보험회사에서 일하는 보험설계사의 임금체계보다도 못하다”고 지적했다.

설령 상담 20회를 채웠다고 해서 반드시 수당을 보장받는 것도 아니다. 박 부위원장은 “참여자 1인당 작성해야 하는 8가지다. 이 중 단 하나라도 누락되면, 그동안의 노력이 모두 수포가 된다”며 “서류에는 참여자의 주민등록번호 등 민감한 개인정보도 기재해야 하는데, 참여자가 개인정보를 밝히지 않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럴 때면 동료지원가들은 (수당이 환수되는 걸 막기 위해) 참여자한테 간, 쓸개 다 빼고 사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당을 환수하는 방법은 2가지다. 박 부위원장은 “할당량을 못 채우면 연말에 내 임금을 도로 토해내야 한다”며 “당사자가 뱉어내는 방법이 있고,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즉 사업기관이 물어 주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 사업기관이 물어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자신의 1년 치 임금을 다 가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며 “결국 센터가 (정부에) 물어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설씨가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남기고 목숨을 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게 박 부위원장의 주장이다.

박 부위원장에 따르면 많은 동료지원가들은 자신의 실수로 실적이 환수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꼈다. 그는 “설요한님도 (연말에) 서류를 정리하다 보니 자신이 놓치고 간 부분이 보였을 것”이라며 “빼먹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문제가 보이니 동료들에게 미안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설씨에 대해 박 부위원장은 “고인이 센터를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들어간 게 아니다. (센터 직원들과) 원래 알고 지낸 사이다. 그동안 일하면서 이들과 관계가 좋았다고 한다”며 “자신 때문에 동료들이 피해를 볼지 모른다는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거 같다”고 설명했다.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이틀간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등 장애인 단체 관계자들은 故 설요한 씨 사망 사건에 대해 항의하면서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을 점거했다. (사진=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페이스북 제공)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이틀간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등 장애인 단체 관계자들은 故 설요한 씨 사망 사건에 대해 항의하면서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을 점거했다. (사진=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페이스북 제공)

기재부vs노동부, 누구의 과실?

25세 중증장애인 청년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간 실적제는 어떻게 탄생하게 된 것일까. 전장연 등 장애인 단체와 노동부가 TF까지 구성해가면서 탄생한 시범사업을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가 틀어버렸다고 박 부위원장은 주장했다. 그는 “시범사업을 노동부가 올렸는데, 기재부는 ‘실적이 남지 않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들었다”며 기재부가 장애인 일자리에 대한 이해 없이 당장 가시적인 성과만을 요구했다고 지적했다.

박 부위원장은 “장애인 단체가 요구했던 월급제와 직무의 다양성에 대해서는 얘기가 되지 않고, 분석하기 좋게 숫자만 가지고 설계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산이 기대보다 적게 통과되다 보니, 노동부도 ‘우리는 싸웠지만 졌다’라는 반응이었다”며 “기재부가 약 15억 원의 예산을 주고, 노동부가 예산에 맞춰서 이런 식으로 세팅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가 예산이 투입되다 보니 기재부는 눈에 보이는 실적을 원했고, 각종 서류를 요구했던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설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또 다른 원인인 환수 조치는 어디서 나왔을까. 박 부위원장은 실적 환수는 동료지원가 사업뿐만 아니라 ‘장애인인식개선지원사업’에서도 이뤄지고 있다고 증언했다. 그는 “지난해 새로 만든 중증장애인 직종인 장애인식개선교육 강사 역시 실적제”라면서 “기업들을 상대로 중증장애인 강사가 직접 장애인식개선 교육을 하는 것인데, 1년에 몇 건 이상 강의를 하지 못하면 환수한다”고 말했다.

임금 환수는 일반적인 것일까. 박 부위원장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실적 환수 조치는 처음 겪어봤다”며 “보건복지부에서 하는 장애인 복지 관련 일자리는 비록 계약직이란 문제가 있지만, 모두 월급제다. 딱 이거 두 개만 수당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2017년 장애인 단체의 투쟁으로 만들어낸 중증장애인 대상 일자리 2개가 모두 실적을 올려야만 인건비를 가져갈 수 있는 구조다”라며 “이게 다 기재부에서 틀어버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 부위원장은 비단 기재부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봤다. 그는 “비장애인 대상 일자리 사업이 수당제로 운영된다 생각해봐라 어떻게 되겠냐”며 “다른 일자리와 달리 왜 장애인 일자리만 실적제가 됐는가. 노동부가 기재부에 적극적으로 (월급제를) 요구하고, 맞서야 했다”고 비판했다. 박 부위원장은 “두 기관 모두 ‘장애인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고 생각했던 거 같다”며 “장애인 노동력을 못 믿겠으니까 각종 증빙서류를 요구한 거고, 그것이 수당제가 됐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중증장애인에 다양한 직무의 일자리를

비판이 커지자 노동부는 올해부터 동료지원가들이 채워야 할 실적 건수를 줄이고, 수당을 올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실적 건수를 연간 48명에서 20명으로 완화하고, 1인당 실적 수당을 20만 원에서 48만 원으로 올린다”며 “향후 제도 개선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저희도 월급제로 해야 할 필요성에 동의한다”며 “지난해에는 기재부와 논의가 잘 안 됐는데, 내년도에 월급제 전환을 목표로 기재부와 협의하겠다”고 덧붙였다. 다만 논란이 가장 큰 ‘환수 조치’에 대해서는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노동부 방침에 장애인 단체 측은 월급제 전환 없는 실적 건수 완화와 수당 인상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박 부위원장은 “노동부 관계자들은 월급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기재부를 설득하는 데에는 자신 없어한다”며 “예산 문제에 대해서는 내년도에 가서 얘기하자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희는 지난해 예산안 통과 전부터 월급제 전환을 요구해왔다. 사실상 수수방관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제가 지속되자 많은 장애인자립생활센터들이 올해에는 시범사업을 포기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해 시범사업에 참여했던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올해 사업권을 반납했다. 박 부위원장은 “동료지원가도 중증장애인이지만, 참여자도 중증장애인이라 서로 만나기 어렵다. 서울에서 활동한 동료지원가는 강남구에서 강북구, 강서구 등 서울 전 지역을 돌아다니느라 야근과 주말근무까지 했다”며 “이렇게 고생한 동료지원가들도 자신 때문에 센터가 돈을 물어내야 할까 봐 연말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고 증언했다.

한편 장애인 단체는 실적 완화와 월급제뿐만 아니라 다양한 직무의 중증장애인 일자리를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다. 중증장애인 일자리 부족 문제를 두고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이라고 비유한 박 부위원장은 “누구나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자리가 필요하다. 장애는 둘째 치고”라며 “동료지원가 같은 업무도 있지만, 다양한 영역의 직무를 만들어서 중증장애인들이 일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라고 요구 중이다”라고 말했다. 그 밖에도 ▲ 중증장애인에 적용되는 ‘최저임금 제외’ 조항 삭제 ▲ 설씨의 죽음 대한 이재갑 노동부 장관의 공식 사과 등을 촉구하고 있다.

박 부위원장은 “설요한 님이 돌아가신 거에 대해 사람들은 ‘힘들면 때려치우면 되지 왜 목숨을 끊느냐’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면서 “장애인 노동 문제를 안다면 이런 말은 안 나왔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선택지가 많으면 때려 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다”며 “중증장애인이 일을 그만둬도 다시 일하기 쉬운 사회가 아니다. 그래서 고인처럼 힘들어도 참고, 그러다 보니 이런 불행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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