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에 우리 군을 파병하기로 결정했다. 아덴만 일대에 파견된 청해부대의 작전지역을 페르시아만 호르무즈 해협까지 확대하는 방식으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이란의 반발을 최소화하는 절충안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청해부대 31진 '왕건함'(DDH-Ⅱ·4400t급)이 지난해 12월 27일 오후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 부두에서 장병들의 환송을 받으며 출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청해부대 31진 '왕건함'(DDH-Ⅱ·4400t급)이 지난해 12월 27일 오후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 부두에서 장병들의 환송을 받으며 출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1일 국방부는 청해부대의 파견 지역을 아덴만 일대에서 오만만과 아라비아만 일대까지 확대해 우리 군 지휘하에 한국 국민과 선박 보호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해양안보구상(IMSC·호위연합)에 들어가지 않고 독자파병 노선을 택한 것.

이 같은 결정은 미국의 ‘모든 국가가 호르무즈 해협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는 요구에 부흥하면서도, 미국이 주도 호위연합체에 참여하지 않아 이란의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다.

다만 독자 파병이라도 필요한 경우 IMSC와 협력할 수 있다는 게 국방부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 청해부대 소속 장교 2명을 바레인에 있는 IMSC 본부에 연락장교로서 파견할 계획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청해부대가 독자적으로 우리 선박을 보호할 능력이 없을 때 IMSC에 협력을 구하겠다는 것”이라며 “청해부대 능력에 제한이 있으니 그 한도 내에서 하겠다”고 설명했다.

호르무즈 첫 임무 투입은 ‘왕건함’

청해부대의 작전 반경 확대는 이날 오후 5시30분부터 임무를 교대하는 청해부대 31진 왕건함(4천400t급)부터 적용된다. 왕건함은 특수전(UDT) 장병으로 구성된 검문검색대와 해상작전 헬기(링스)를 운용하는 항공대 장병 등 300여명으로 구성됐다.

왕건함은 이날 오후 5시30분 오만 무스카트항에서 30진 강감찬함과 임무를 교대한다. 임무를 교대한 이후 곧 실제 작전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왕건함은 호르무즈 해협 일대 임무 수행에 대비해 어뢰 등 대잠무기와 무인기 및 항공기 위협에 대비한 대공무기, 수중 위협에 대응해 음파탐지 센서 등을 보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왕건함 함장은 황종서 대령으로, 향후 호르무르 해협 일대에서 한국 선박을 보호하는 작전을 진두지휘한다. 국방부 관계자는 “다른 나라도 호르무즈 해협에서 자국 선박만을 호송한다”며 청해부대 역시 우리나라 선박만 호송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그동안 청해부대는 소말리아 아덴만 해상의 1천130㎞ 구역에서 선박 호송작전을 펼쳐왔다. 이번에 작전 지역이 확대되면서 오만 살랄라항을 기준으로 오만만과 호르무즈 해협, 아라비아만, 이라크 주바이르항 인근까지 2천830여㎞를 확장해 임무를 수행하게 됐다.

국방부는 이번 파견이 ‘한시적’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중동 상황이 좋아지면 철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 비준 필요 없어”

이번 청해부대 작전 지역 확대는 국회의 비준 동의가 필요 없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지난해 청해부대 파병 국회 동의안이 통과될 때 ‘유사시 작전범위 확대’에 대한 조항이 포함돼 있기때문. 안규백 국회 국방위원장은 “(작전범위 확대) 선례가 18차례 있었다”고 부연했다. 실제로 청해부대는 과거 리비아와 가나 등 국민 구출 작전에 투입된 바 있다.

정부의 파병 결정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대변인은 논평에서 “작전 지역 확대를 통한 지원 결정은 국민 안전과 선박의 안전 항해 등 총체적 국익을 고려한 조치로 이해한다”면서 “호르무즈 해협은 우리의 경제적 이해, 특히 에너지 안보와도 관련된 지역으로 최소 범위 내의 국제적 의무 이행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오랜 고심 끝에 해결방안을 찾은 만큼 그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 김성원 대변인 역시 논평에서 “프랑스를 비롯한 국가들이 상선 호위작전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뒷짐만 지고 있을 수는 없다”며 “전략적 중요성 등을 감안할 때 파병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국회 동의 부분에 대해서는 “파병 결정과정에서 제1야당이 철저히 배제된 점은 유감”이라며 국회 동의절차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정의당과 민주평화당은 정부의 결정에 유감을 표시했다. 김종대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파견지역 확대의 본질은 군사적 목표의 변경으로 새로운 파병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며 “국회 동의도 없이 파견지역 확대라는 애매하고 부정확한 절차를 통해 감행하는 정부의 행태는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박주현 평화당 대변인도 “미국이 이란을 상대로 벌이는 명분 없는 전쟁에 참전하는 일이고 전통 우방국가인 이란과 적대하는 것이어서 동의할 수 없다”며 “명분도 없고 국민과 장병을 위험에 빠뜨릴 염려가 큰 호르무즈 파병을 감행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호르무즈 파병 결정 전 이란에도 충분히 이해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번 파병이 미국 주도의 연합체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 선박을 지키기 위한 것임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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