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응선 논설고문

[뉴스포스트 전문가 칼럼=강응선] 일본은 80년대 중반에 경제가 너무 잘 나가다 보니 세계경제는 미국, 유럽, 그리고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3축(軸)체제로 돌아간다고 호언장담한 적이 있다. 지금 G2(미국,중국)시대에 들으면 웃을 일이지만 당시에는 그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의 폐허에서 다시 일어나 40여년 만에 세계경제를 호령할 정도로 국력(경제규모)이 커졌기 때문에 그런 자신감을 보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던 일본경제가 스스로의 버블 붕괴(부동산 버블이 대표적)에 의해 90년대 중반부터 시름시름 앓더니만 201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는 소위 ‘일본경제의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퇴락의 길을 오랫동안 지속해 왔다. 설상가상 2011년 3월에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원전사고까지 겹쳐지자 일본이 이대로 주저앉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극도의 불안감과 자괴감마저 팽배해지고 있었다.

이러던 차에 2012년 말에 집권한 현 아베총리는 소위 ‘3개의 화살’이라는 경제회복촉진책을 구사해 일단 수렁에 빠진 일본경제를 구원해 냈지만 예전 잘나가던 80년대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궁금했는데, 최근 동향을 보면 본 궤도에 올라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나라의 경제 상황을 가늠하려면 일단 거시적인 경제지표, 즉 경제성장율, 고용률, 주가지수, 부동산가격지수 등을 살펴보는 게 일차적이겠지만 보다 심층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에서 시민들의 경제활동을 보는 게 중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90년대 초반에 3년간 동경에 거주한 적이 있는 나로서는 1-2년에 한번 꼴로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시민들의 일상생활을 나름대로의 경험과 기준을 가지고 관찰하면서 일본경제의 현황을 가늠하곤 한다.

이번에도 설 연휴 전에 동경을 5일간 방문했는데 그 체감(體感)이 2-3년 전과는 너무도 달라 이 글을 쓰게 됐다. 정부 발표나 매스컴의 보도만으로는 추정할 수 없는 확연한 현장을 보고 왔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렇게 이전의 관찰과 다르게 보였을까. 한마디로 곳곳에서, 많은 사람에게서 활기가 넘친 것을 보았다. 분명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먼저 길거리, 지하철, 상점, 번화가 등에서 본 시민들의 인상이 너무 밝게 보였다. 30년 전 거주할 때 보았던 일본인들의 자신만만한 모습이 내 머릿속을 오버랩하면서 스쳐갈 정도다.

특히 젊은이들의 표정과 행동이 너무 자신감 넘쳐 보였다. 몇 년 전부터 일본 주요기업들이 일손부족으로 고민하고 있다는 점과 최근 일본통계에도 유효구인배율(채용희망자 숫자를 구직희망자 수로 나눈 비율로서 1이 넘으면 일자리가 넘친다는 의미)이 1.57에 이르렀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일본 현지에서 젊은이들이 보여준 행태는 30여 년 전의 잘 나가던 때와 흡사했다. 단적으로 유흥가, 백화점 등 번화가에서 소비 증가가 눈에 띠었다. 일자리가 확보되고 소득이 늘어나니 소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여기엔 젊은 층 인구가 30년 사이 줄었다는 인구학적 혜택도 있었겠지만 거시적인 일본경제 활황이 주된 요인이다. 어지간한 대졸생이면 3-4군데 입사 합격 통지를 받고 어디를 선택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하니 청년실업률이 8%대에 이르는 우리 젊은이들에겐 마냥 부러울 뿐이다.

작은 변화일지 모르지만 지하철 광고가 다시 꽉 차게 되고,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줄서서 택시를 기다리는 모습 또한 수십 년 만의 일이다. 저녁 식당거리에도 단체 손님들이 넘치는 모습 또한 오랜만에 보면서 일본경제가 지금 완연한 봄 날씨를 즐기고 있음을 확신했다. 한편으론 우리의 현실을 비추어 볼 때 씁쓸함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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