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차 전력수급계획서 국내 원전 6기 백지화...8조 규모 먹거리 사라져
- 친환경 전력 시장 준비한다던 정부...풍력설비 용량 계획 대비 32% 불과
- “풍력·가스터빈 글로벌 경쟁력 있음에도...당장의 수주 절벽에 명예퇴직 한 것”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사업 및 재무 현황에 맞춰 조직을 재편하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명예퇴직을 시행합니다. 글로벌 에너지 시장 추세에 맞춘 사업 다각화, 신기술 개발, 재무구조개선 등 다양한 자구노력을 펼쳐왔습니다.......임원 감축, 유급순환휴직, 계열사 전출, 부서 전환 배치 등 강도 높은 고정비 절감 노력을 해왔지만, 경영 정상화 과정에서 인력 구조 재편이 불가피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두산중공업 창원 본사에서 진행한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 최종조립 작업 모습. (사진=두산중공업 제공)
두산중공업 창원 본사에서 진행한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 최종조립 작업 모습. (사진=두산중공업 제공)

위 내용은 지난 18일 두산중공업이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다. 두산중공업은 출입기자들에게 “최근 수년 간 세계 발전 시장의 침체가 이어지면서 글로벌 발전업체들이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국내 시장의 불확실성도 상존해 두산중공업 역시 사업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고도 했다.

명예퇴직 대상은 기술직과 사무직을 포함한 만 45세 이상 직원 2,600여 명이다. 두산중공업은 명예퇴직 신청을 지난 20일부터 받고 있다. 신청 기한은 내달 4일까지다. 명예퇴직자에게는 법정 퇴직금 외에 근속 연수에 따라 최대 24개월에 해당하는 임금을 지급한다는 설명이다.

또 20년 차 이상 직원에게는 위로금 5000만 원도 추가로 지급된다. 사측은 최대 4년 간 자녀 학자금과 경조사, 건강검진도 지원할 계획이다.

두산중공업의 명예퇴직 발표가 나온 다음날, 산업통상자원부는 5페이지에 달하는 보도자료를 통해 두산중공업의 실적 하락과 인력구조조정이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여러 언론이 탈원전 정책 탓에 두산중공업의 실적이 악화돼 구조조정을 감행했다고 보도한 까닭이다.

과연 산업부 발표처럼 두산중공업의 인력구조조정이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관련이 없을까? 아니면 두산중공업은 탈원전이라는 섣부른 정부 정책의 희생양이 된 것일까? <뉴스포스트>가 산업부의 주장을 짚어봤다.
 


산업부 “두산중공업의 어려움은 석탄화력 발주 감소 때문”


두산중공업이 준공한 초대형 발전 플랜트 문드라 석탄화력발전소. 인도 5개 주에 전력을 공급하는 4000MW급 규모다. (사진=두산중공업 제공)
두산중공업이 준공한 초대형 발전 플랜트 문드라 석탄화력발전소. 인도 5개 주에 전력을 공급하는 4000MW급 규모다. (사진=두산중공업 제공)

산업부는 19일 출입기자를 대상으로 두산중공업의 구조조정이 탈원전 정책 때문이라는 언론보도를 반박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5페이지 분량에 이르는 자료였으나, 산업부의 주장은 다소 긴 보도자료 제목에 모두 나타나 있다.

<두중은 최근 수년간 세계 석탄화력 발주 감소로 인해 어려움을 겪어 왔으며, 두중의 국내 원전 매출(추정)은 에너지전환 정책 이후에도 큰 변화 없음. 정부는 가스터빈·풍력 등 새로운 시장을 육성하는 한편, 원전기업들의 어려움을 지원하기 위해 보완대책 등을 지속 추진·강화해 나가겠음>이란 제목이 그것이다.

산업부는 해당 주장의 근거로 한국수력원자력이 두산중공업에 지급한 금액이 과거 대비 변화가 없다고 설명했다. 두산중공업은 수의계약 형식으로 한국수력원자력에 원자력 발전소 기기를 납품한다. 때문에 한수원이 두산중공업에 지급하는 금액으로 두산중공업의 원전 매출을 살펴볼 수 있다.

산업부에 따르면 한수원은 △2013년 6,355억 원 △2014년 7,440억 원 △2015년 7,871억 원 △2016년 6,559억 원 △2017년 5,877억 원 △2018년 7,636억 원 △2019년 8,922억 원 등을 두산중공업에 지급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올해까지 두산중공업의 원전 수주에 큰 변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산업부의 주장에는 두산중공업의 미래 먹거리인 국내 신규 원전 6기에 대한 계산이 빠져 있다.
 


두산중공업, 최대 8조 규모 국내 원전 먹거리 사라졌다


신고리원자력발전소 3, 4호기. 우리나라가 독자 개발한 제3세대 원전 모델인 APR1400 노형을 최초로 적용한 프로젝트다. 두산중공업이 핵심 기자재를 제공한다. (사진=두산중공업 제공)
신고리원자력발전소 3, 4호기. 우리나라가 독자 개발한 제3세대 원전 모델인 APR1400 노형을 최초로 적용한 프로젝트다. 두산중공업이 핵심 기자재를 제공한다. (사진=두산중공업 제공)

두산중공업의 수주와 매출, 영업이익, 순이익 등이 모두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공교롭게도 2017년부터다.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을 중심으로 하는 에너지 전환 정책을 추진했다.

원전과 석탄화력 발전 비중을 줄이고 태양력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의 비율을 높이겠다는 계획이었다. 문제는 정부의 갑작스런 에너지 전환 정책으로 두산중공업의 실적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두산중공업은 지난 2010년 발전과 담수 수주 증가로 사상 최대 수주기록과 순이익을 달성했다. 이후 일회성 비용이 반영된 2015년을 제외하곤 두산중공업의 순이익은 모두 흑자였지만, 2017년 에너지 전환 정책의 여파로 휘청이며 순이익이 내리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2018년까지 두산중공업 순이익 추이. 2019년 실적은 3분기까지만 발표된 상태다. (편집=이상진 기자)
두산중공업 순이익 추이(단위: 억 원). 2017년을 기점으로 하락세를 보인다. (편집=이상진 기자)

2017년 정부는 신고리 5·6 호기 건설 여부에 대해 시민들의 의견을 종합한다며 ‘공론화위원회’를 발족한 바 있다. 정부의 예상과 달리 공론화위원회가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재개하라는 결론을 내려 공사는 재개됐지만, 3개월에 걸친 공사 중단으로 인해 두산중공업은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감소하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해 10월 22일 문재인 대통령은 “3개월에 걸친 공론화 작업이 마무리돼 정부는 조속히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재개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신고리 5·6 호기 건설을 재개한다면서도 “탈원전을 비롯한 에너지 전환 정책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며 “더 이상의 신규 원전 건설계획을 전면 중단하고, 에너지 수급의 안정성이 확인되는 대로 설계수명을 연장하여 가동 중인 월성 1호기의 가동을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정부는 신한울 3·4호기와 천지 1·2호기, 대진 1·2호기 등 신규 원전 6기의 계획을 전면 백지화했다. 업계는 탈원전 정책으로 두산중공업이 수천 억 원의 손실을 보게 됐다고 보고 있다. 두산중공업이 신한울 3·4호기 공사에 4,900억 원 상당 투자를 한 데다가, 기자재 보관 비용 등 매몰비용만 7000억 원 이상이라는 분석이다.

매몰비용에 더해 미래 먹거리도 사라졌다. 계획이 백지화된 국내 신규 원전 6기는 모두 8.8GW 규모다. APR 원자력 발전소 1기 당 매출이 1조 3,000억 원 규모인 까닭에, 두산중공업은 최대 8조 원 이상의 수주를 놓친 셈이다.
 


미래 먹거리 지속적 감소...탈원전에 비좁은 친환경 설비 시장까지 이중고


두산중공업의 수주 추이. 2017년을 기점으로 하락세를 보인다. (편집=이상진 기자)
두산중공업의 수주 추이(단위: 억 원). 2017년을 기점으로 하락세를 보인다. (편집=이상진 기자)

가장 큰 문제는 두산중공업의 수주 실적이 2017년 이후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부는 두산중공업의 수주 실적 감소가 해외 석탄화력 발전 수주 감소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는 복합적 원인 가운데 일부분이다. 수주 실적 하락을 이끄는 주요 원인으로는 미래 먹거리인 원자력 발전소 계획 백지화와 더불어, 풍력 등 정부가 추진하는 친환경 에너지 사업의 저조한 설비 실행률이 꼽힌다.

전력통계시스템(EPSIS)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국내 풍력설비 용량은 1,511MW였다. 계획 풍력설비 용량 대비 32% 수준에 불과하다.

두산중공업도 IR을 통해 “8차 전원 개발 계획을 근거로 신재생에너지 사업 관련 투자와 수주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며 “하지만 풍력사업 등 계획 대비 저조한 실행률 등으로 인해 계획 달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산업부가 19일 보도자료를 통해 “두산중공업이 사업다각화를 추진 중인 가스터빈·풍력 분야에 대해 정부가 수요창출 등을 지원해나가겠다”고 한 공언이 무색해지는 상황이다.

발전 산업계 관계자는 25일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두산중공업의 명예퇴직 시행의 배경에 탈원전 정책이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며 “두산중공업은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까지 포함됐던 국내 신규 원전 6기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발표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갑자기 백지화되면서 수주 절벽을 견디지 못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가 전력수급기본계획의 말머리를 갑작스레 신재생에너지 육성으로 돌리면서, 두산중공업이 원전 수주 절벽으로 선제적인 인력구조조정을 단행했다는 설명이다.

이어 해당 관계자는 “두산중공업은 지난 2013년부터 석탄화력 발전 수주 감소 등 세계 전력 시장 변화에 따라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준비하고 있었다”면서 “풍력과 가스터빈 등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게 된 두산중공업이지만, 아직 신재생에너지 전력 시장이 원전과 석탄화력 발전 수주를 대신할 정도로 규모가 성장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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