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텔레그램 메신저에서 미성년자 등의 성 착취 불법 촬영물과 신상정보를 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 사건’의 핵심 피의자 ‘박사’에 대해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지난해부터 공론화된 텔레그램 비밀방 내 성폭력에 대한 신속한 수사와 강력한 처벌에 여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DB)
(사진=뉴스포스트 DB)

 

18일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는 텔레그램 박사방 피의자 4명 중 일명 ‘박사’라고 불리는 핵심 피의자 20대 남성 A모 씨에 대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A씨 외에 나머지 피의자들에 대해서는 수사를 계속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A씨는 이른바 ‘텔레그램 박사방’의 운영자인 일명 ‘박사’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텔레그램 박사방 사건은 여성과 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성 착취 범죄를 자행한 일명 ‘텔레그램 N번방 사건’과 비슷한 계열이다. 이 때문에 각종 매체에서는 N번방 사건과 박사방 사건을 혼용해서 부르기도 한다.

N번방 사건은 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벌어진 디지털 성범죄 및 성 착취 범죄를 말한다. 철저한 보안으로 유명한 텔레그램을 통해 비밀 단체방을 만들고, 가해자들은 이곳에서 피해자들의 신상정보와 성 착취 사진을 불법적으로 공유했다. 피해자는 성인 여성은 물론 미성년자까지 연령대를 가리지 않았다. 가해자는 최소 수만에서 26만 명까지 추산되며, 피해자 수는 알 수 없다.

남성 운영자가 여성들의 SNS 계정을 해킹한 뒤 경찰을 사칭해 상대 여성을 협박하고, 신체 사진과 동영상 촬영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강요로 얻어낸 촬영물들은 텔레그램 비밀방을 통해 또 다른 가해자들에게 유포된다. 운영자가 촬영물 구매를 원하는 이들에게 돈을 받고 유포·유통하는 방식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사방도 N번방과 마찬가지로 운영자가 여성들을 협박하고,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올리게 했다. 운영자는 일명 ‘박사’라는 명칭으로 통용됐다. 특히 박사방은 촬영물의 가학성이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더욱 문제가 심각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신상공개와 불법 촬영물 유출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N번방, 박사방 국회 청원까지

텔레그램 N번방, 박사방 사건으로 통용되는 일련의 디지털 성 착취 범죄 사건들은 지난해 말 온라인상에서 여성 누리꾼들을 중심으로 공론화됐다. 올해 초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가해자들을 처벌하는 청원이 올라와 약 22만 명의 동의를 얻은 바 있다. 한겨레 신문의 기획 보도 역시 공론화에 큰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언론인들은 가해자들로부터 협박을 당하기도 했다.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수사 당국이 나섰다. 경찰은 지난달 9일까지 비밀 단체방 운영자 등 관련자 66명을 검거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청와대 청원 답변에서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장을 팀장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 수사 TF를 구성하여 조직적, 체계적으로 단속 활동을 진행하겠다”며 “외교 경로를 통한 국제형사사법공조 뿐만 아니라 해외 민간 기관·단체와의 협력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검거와는 별개로 가해자들의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국민이 직접 법을 만들 수 있는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는 ▲ 엄격한 양형기준을 설정 ▲ 경찰의 국제공조수사 ▲ 수사기관의 디지털성범죄 전담부서 신설 ▲ 2차 가해 방지를 포함한 대응 매뉴얼 신설 등을 촉구하는 청원이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청원 덕분에 국회에서는 이달 5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가 개정됐다. 하지만 정작 N번방, 박사방 같은 사건은 근본적으로 뿌리 뽑지 못한 졸속 입법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 텔레그램 성 착취 공동대책위원회 이달 11일 성명서에서 이번 개정안이 디지털 기반 성 착취에 근본적으로 대응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성적 이미지를 텔레그램방 등에 전시하거나 공유하는 경우 ‘집단 성폭력’ 등으로 가중처벌해야 한다”며 “디지털 기반 성 착취는 1차 가해자가 제작한 성적 촬영물을 불특정 다수가 함께 관람하고 재촬영을 공모하기 때문에 ‘집단성폭력’의 성격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그 밖에도 ▲ 불법 촬영물 소지죄 처벌 ▲ 불법 촬영물 삭제 불응 시 처벌 ▲ 온라인서비스 제공자의 성폭력 피해 방지 의무화 등을 촉구했다.

텔레그램 비밀방에서 발생한 성 착취 사건이 공론화됐지만, 가야 할 길은 멀다. 국민동의청원까지 올라 법 개정까지 이뤄냈지만, 개정안에는 디지털 성 착취를 근본적으로 뿌리 뽑을 만한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 심지어 여전히 제2의, 제3의 박사방까지 여전히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수사 당국의 신속한 수사와 가해자 처벌 강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피해자의 속출을 막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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