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코로나 19가 전 세계에 퍼지면서 각국의 보건 당국이 비상에 걸렸다. 전염병으로 세계 각국의 주요 도시들이 봉쇄되는 것은 물론 학교와 식당 등 일반 시민들의 일상생활까지 올스톱됐다. 세계를 마비시킨 코로나 19. 하지만 역사를 따져보면 코로나 19 이상의 피해를 입힌 전염병은 많았다.

코로나 19 환자를 돌보는 이탈리아 의료진. (사진=AP/뉴시스)
코로나 19 환자를 돌보는 이탈리아 의료진. (사진=AP/뉴시스)

31일(한국 시간)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이 제공하는 코로나 19 전 세계 현황 지도에 따르면 이날 오전 기준 전 세계 코로나 19 총 확진 환자는 78만 4,314명이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환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고, 사망자도 3만 7천 명이 넘었다.

2020년대 새해 벽두부터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시작된 코로나 19는 현재 전 세계 곳곳을 마비시켰다. 사망자가 가장 많은 이탈리아에서는 전국의 도시가 봉쇄돼 이동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주요 국가들의 국경도 차단돼 이들이 지향하던 ‘하나의 EU’라는 가치마저 위태롭게 됐다. 확진 환자 수가 가장 많은 미국에서는 전 국민에게 해외여행을 전면 금지했다.

코로나 19가 한 국가와 대륙은 물론 인류 전체를 위태롭게 하는 상황. 하지만 전염병으로 인류가 위기를 맞았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세계사를 살펴보면 전염병은 언제나 인류와 함께했고, 수많은 피해를 낳았다. 때로는 전염병이 사회 전반을 바꾸기도 했다. 인류의 역사를 바꾼 전염병은 무엇이 있을까.

유럽 인구 3분의 1 앗아간 흑사병

이름마저도 무시무시한 흑사병(黑死病)은 인류를 위협한 전염병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병 중 하나다. 피부가 새까맣게 변하는 증상 때문에 흑사병으로 불린다. 서울아산병원이 제공하는 의학정보에 따르면 흑사병은 쥐에 기생하는 벼룩에 의해 페스트균(Yersinia pestis)이 옮겨져 발생하는 전염병이다. 감염되면 흉부 외 통증, 기침, 각혈, 고열 등을 호소하다가 사망하는 게 일반적이다.

중세 유럽 흑사병을 상징하는 새 부리 모양의 마스크. 의료진이 착용했다고 전해진다. (사진=픽사베이)
중세 유럽 흑사병을 상징하는 새 부리 모양의 마스크. 의료진이 착용했다고 전해진다. (사진=픽사베이)

유럽 흑사병의 기원은 14세기 중반 몽골의 군대가 흑사병에 감염된 시신을 크림반도의 카파 지역에 던져서 전파됐다는 것이 가장 유력하다. 이곳에서 시작된 흑사병은 이탈리아로 올라왔고, 북부 스칸디나비아 반도 지역까지 퍼져다. 불과 3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부족한 위생관념과 열악한 의료 시스템이 피해를 더 키웠다.

흑사병은 엄청난 피해 규모 때문에 더 잘 알려져 있다. 전 유럽을 뒤덮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흑사병은 유럽 인구 최소 3분의 1을 감소시켰다고 전해진다. 수천만에서 수억 명이 흑사병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유럽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인구 감소로 노동자들의 임금이 자연스럽게 높아졌고, 공중위생 관련 보건 제도들이 정립됐다.

천연두, 세계 최악의 질병서 종식까지

‘호환마마(虎患媽媽)’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천연두(天然痘)는 호랑이만큼 무서운 질병이었다. 두창(痘瘡)과 마마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고대 이집트 미이라에서도 흔적이 발견됐다는 천연두는 18세기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의 백신 발명 이후 서서히 사라졌다. 고대 이집트 문명이 꽃 필 때부터 1980년 세계보건기구(WHO)가 공식적으로 종식 선언을 했기까지 인류의 역사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연두의 위력은 거대한 제국마저 쓰러트릴 정도다. 찬란했던 잉카제국이 스페인의 침략을 받으면서 무너진 이유, 2세기 로마 제국을 쑥대밭으로 많은 질병도 천연두라는 학설이 있다. 한국에서도 피해는 컸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따르면 천연두는 최소 신라시대 때부터 존재했고, 1959년까지 지속됐다. 1951년 한국전쟁 당시에도 최소 1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바이러스에 의한 급성 전염병인 천연두는 감염 시 오한과 발열, 두통, 요통, 피부 질환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 사망률은 무려 30%에 달한다. 운 좋게 완치하더라도 돌기 같은 흉터가 남는 게 큰 특징이다. 특히 얼굴 부위에 많이 나타난다. 하지만 종식 선언 이후에는 자연 발생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조금 심한 감기? 전쟁도 끝낸 독감

타미플루 등 다양한 치료제가 개발된 현재에는 독감(Influenza)을 ‘다소 심한 감기’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심폐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나 어린이, 임산부 등 위험군이 독감을 방치할 경우 심하면 사망에 이르게 되는 무서운 질병이다.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유행 일명 스페인독감은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으로 추정된다.

스페인독감은 흑사병과 더불어 인류의 목숨을 가장 많이 앗아간 질병으로 꼽힌다. 1918년부터 이듬해까지 적게는 2,500만 명에서 많게는 5천만 명까지 추산한다. 특히 인도에서 큰 피해를 입었고, 미국과 우리나라에서도 사망자가 십만 명 단위로 쏟아졌다. 명칭은 발원지가 아니라 제1차 세계대전에 참여하지 않아 언론이 통제되지 않은 스페인의 이름을 땄다. 스페인의 보도에서 독감 소식이 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WHO가 설립된 이후 첫 번째 팬데믹(Pandemic) 사례로 기록된 홍콩독감 역시 인류에 큰 피해를 입혔다. 1968년 홍콩을 중심으로 유행한 독감은 아시아와 북남미, 아프리카 등으로 퍼지면서 약 80만 의 희생자를 낳았다. 하지만 독감은 시대가 지날수록 백신과 치료제의 발달로 사망자가 줄어들었다. 2009년 두 번째 팬데믹 사례인 신종플루 사망자는 이듬해까지 약 1만 7,80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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