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왜 1일 1깡을 합니까. 아침 먹고 깡, 점심 먹고 깡, 저녁 먹고 깡. 하루에 3깡은 해야죠” -가수 비-

‘깡’ 뮤직비디오 일부 장면. (사진=유튜브 ‘지니 뮤직’ 캡처)
‘깡’ 뮤직비디오 일부 장면. (사진=유튜브 ‘지니 뮤직’ 캡처)

최근 온라인상에서 ‘1일 1깡’이라는 신조어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다소 난해해 보이는 이 신조어는 국내 유력 제과 회사의 스태디셀러 ‘새우깡’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인기 가수 비가 지난 2017년 12월 발매한 EP 앨범 타이틀곡 ‘깡’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1일 1깡’은 하루에 한 번 씩 ‘깡’ 뮤직비디오 또는 음악 방송을 보는 것을 말한다.

25일 이날 오후 기준 ‘깡’의 뮤직비디오 유튜브 조회 수는 1천만 뷰를 넘었다. ‘1일 1깡’이라는 신조어처럼 대중들이 하루에 1번 이상 ‘깡’을 시청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숫자다. 비의 메가 히트곡 ‘잇츠 레이닝(It`s Raining)’의 뮤직비디오 조회 수가 10만 회를 조금 넘어선 것과 비교하면 큰 수치다. 왜 사람들은 발매한지 3년이 넘어가는 ‘깡’에 이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깡’ 열풍의 시작은 가수 비에 대한 조롱에서 시작됐다. 2017년 발매작이라고 하기엔 다소 유행에 뒤처진 의상과 안무.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네’, ‘타고난 이 멋이 어디가 30 sexy 오빠’, ‘수많은 영화제 관계자 날 못 잡아 안달이 나셨지’ 등 세련되지 못한 가사에 비를 놀리는 ‘댓글 놀이’가 온라인상에서 유행이 되면서 일종의 ‘B급 감성’ 콘텐츠로 자리 잡은 것이다.

‘깡’ 신드롬 원인은 B급 감성?

B급 감성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거의 쓰이지 않는 표현이지만, ‘A급 감성’이라는 말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B급 감성은 어딘가 모자라 보인다.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이야기를 담는다. 대체로 단순하고, 망가지고, 자극적이고, 재밌다.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우스꽝스럽거나 헛웃음이 나온다. 기존의 사회적 질서에 대한 소소한 저항이기도 하다.

이전보다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대체로 보수적이고 경직된 한국 사회에서 B급 감성은 대중들의 해방구 역할을 한다. 특히 보수적 성향이 강한 기성세대와는 성격이 다른 젊은 층에서 B급 감성이 크게 사랑받고 있다. ‘1일 1깡’이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현상 역시 젊은 층들의 B급 감성 사랑을 대변한다.

지난해 말 신드롬을 일으켰던 펭수. (사진=뉴시스)
지난해 말 신드롬을 일으켰던 펭수. (사진=뉴시스)

교육방송 EBS가 ‘펭수’라는 B급 감성 캐릭터를 내놓자 젊은 층은 어린아이들보다 열광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 리더 이특이 탈색 머리를 감추기 위해 가발을 쓰고 나왔던 EBS. 이곳에서 탄생한 펭수는 지난해 연말 신드롬을 일으켰다. 펭수의 인기 비결 역시 B급 감성. 귀여운 외모와 어울리지 않은 시크한 말투가 대중을 사로잡았다.

충북 충주시 공식 유튜브 채널 역시 B급 감성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충주시 홍보담당관실이 운영하는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는 담당 주무관이 ‘깡’을 패러디하거나 출근 브이로그를 올리는 등 B급 감성으로 무장한 동영상들이 즐비하다. B급 감성의 힘으로 충주시 채널은 같은 날 기준 구독자 수만 8만 명이 넘고, 서울시에 이어 지방자치단체 유튜브 중 구독자 수 2위다.

B급 감성이 젊은 층들 사이에서 사랑을 받다 보니 이들을 주 소비자층으로 두고 있는 기업들 역시 발 빠르게 무장했다. 식음료에서 가전, 화장품은 물론 딱딱하고 어렵다는 이미지가 강한 금융 상품까지 B급 감성을 녹여낸 광고로 대중들을 유혹하고 있다. 삼성화재와 국민은행, 저축은행중앙회 등이 고객 소통 창구로 유튜브를 활용해 B급 감성이 담긴 콘텐츠를 유통했다.

B급 감성, 누군가에겐 독?

하지만 지나친 B급 감성은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누군가를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는 특히 그렇다. ‘깡’ 열풍 역시 마찬가지다. 비에 대한 조롱이 열풍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중립성과 적절한 품위를 유지해야 하는 국가 기관의 경우 더욱더 그렇다. 실제로 지나친 B급 감성으로 부메랑을 맞은 사례도 있다.

이달 초 통계청 유튜브 채널이 ‘깡’ 뮤직비디오의 조회 수를 두고 가수 비의 출연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의 흥행 실패를 조롱하는 ‘UBD’ 이라는 신조어를 댓글에 써 공식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 국가 기관이 일개 개인을 조롱해서는 안 된다는 게 대중들의 지적이었다. 통계청은 “담당자를 엄중 훈계하고, 소속사를 통해 당사자에게 정식 사과했다”고 밝혔다.

한편 현재 가장 뜨거운 B급 감성의 대표 주자인 비는 ‘깡’ 열풍에 대해 놀랍도록 여유로운 반응을 보였다. 비는 이달 16일 방송된 MBC ‘놀면 뭐하니’를 통해 ‘깡’ 열풍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그는 “3년 전 노래인데 너무 서운하다. 왜 1일 1깡을 하냐”며 “하루에 3깡 정도는 해야 한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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