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턴 회고록 전격 출간 “북미외교는 한국 창조물”
文대통령 판문점 남북미 회동 참석 끈질기게 관철
아베 총리 ‘종전선언’ 막기 위해 직접 트럼프 설득

[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눈에 비친 제1차 북미회담은 남측의 ‘창조물’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기를 쓰고 막으려 했던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록은 ‘대북 강경파’로서 북미 회담에 회의적이었던 그의 심경이 그대로 담겼다.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 (사진=뉴시스)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 (사진=뉴시스)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은 오는 23일(현지시간) 출간된다. 약 570페이지에 달하는 회고록은 최근 2년 간 남북미 비핵화 회담에 관한 이야기가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다. 볼턴 전 보좌관은 그동안 북미회담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왔기에 회고록 내용과 관련해 여론의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특히 볼턴 전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불화로 인해 지난해 9월 국가안보보좌관 직에서 전격 경질당한 ‘개인적인 원한’도 있는 상태다.

회고록에서 주목할 점은 볼턴 전 보좌관이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차 북미회담 등 북미 대화 성과가 ‘한국의 창조물’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볼턴 전 보좌관은 싱가포르 북미회담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초로 제안한 것이 아니고,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제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2018년 4월 12일 백악관에서 한국 측 카운트파트인 정 실장을 만났다면서 “(2018년) 3월에 집무실에서 정 실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만나자는 김 위원장의 초청장을 건넸고 트럼프 대통령은 순간적인 충동으로 이를 수용했다”며 “역설적으로 정 실장은 나중에 김 위원장에게 먼저 그런 초대를 하라고 제안한 것은 자신이었다고 거의 시인했다”고 전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이 모든 외교적 판당고(스페인의 열정적인 춤 이름)는 한국의 창조물이었다”며 “김정은이나 우리 쪽의 진지한 전략보다는 한국의 통일 어젠다와 보다 관련이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치밀한 전략으로 이뤄졌기 보다는, 남측의 제안과 트럼프 대통령의 ‘충동적’ 결정으로 도출된 결과라는 얘기다.

한반도 비핵화 논의 과정에서 벌어진 ‘국가 원수급 외교’ 막전막후도 이번 회고록에 담겼다.

볼턴 전 보과좐은 지난해 6월 판문점에서 이뤄진 ‘남북미 정상 회동’에서는 북한과 미국이 ‘양자회동’을 원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끈질기게 동행을 요청했다고도 밝혔다. 남북미 정상이 판문점에서 ‘깜짝 회동’을 하기 직전에는 이미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회담이 결렬된 후였다. 이후 문 대통령은 판문점 또는 해군 군함 위에서 남북미 정상이 만날 것을 제안했다고 볼턴 전 보좌관은 전했다. 그러면서 “그(문 대통령)에게 최대 관심사는 자신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만남에 합류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볼턴 전 보좌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만남을 갖는 것이지만 ‘김 위원장이 한국 땅에 들어섰을 때 자신이 그곳에 없다면 적절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어 북한 측이 문 대통령의 동행을 거절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참석하길 바라지만 북한의 요청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볼턴 전 보좌관은 썼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DMZ내 오울렛초소까지 동행하겠다면서 그다음에 무엇을 할지는 그때 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관철시켰다고 한다.

남북미간 비핵화 회동이 숨 가쁘게 진행될 무렵, 일본 아베 총리의 적극적인 ‘방해공작’도 눈에 띈다. 싱가포르 북미회담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전쟁을 자신이 끝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 측에서 종전선언에 대해 대단한 관심을 보였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직접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을 방문해 ‘너무 많은 양보를 하지 말라’고 설득했다는 게 볼턴 전 보좌관의 주장이다.

볼턴 전 보좌관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인들은 살아남은 자들(survivors)로, 그들은 자기네 체제에 목숨을 걸었다. 그들은 매우 거칠고 약삭빠른 정치인들이다. 이게 다시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으로 생각하면 그들은 옛날 방식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 싱가포르 북미회담에서는 북미 종전선언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한편, 청와대 측은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록에 대해 “정확한 사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며 유감의 뜻을 보였다. 22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입장문을 내고 “볼턴 전 보좌관은 그에 회고록에서 한국과 미국 그리고 북한 정상들간의 협의 내용과 관련한 상황을 자신의 관점에서 본 것을 밝힌 것”이라며 “상당 부분 사실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 실장의 입장문은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이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대독했다.

정 실장은 “정부간 상호 신뢰에 기초해 협의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한 것은 외교의 기본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향후 협상의 신의를 매우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면서 “미국 정부가 이러한 위험한 사례를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기대한다. 이러한 부적절 행위는 앞으로 한미 동맹 관계에서 공동의 전략을 유지 발전시키고 양국의 안보 이익을 강화하는 노력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다”고 전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볼턴 전 보좌관이 가장 심각하게 왜곡한 사실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정상 간 대화 또는 외교 관계에 있어서 협의 과정은 밝히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볼턴이 여러가지 (왜곡)를 했지만 하나하나 사실 관계를 다투는 것조차 부적절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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