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한부모 가정은 약 153만 9천여 명(2018년 기준)으로 전체 가구 수의 7.5%를 차지하는 만만치 않은 숫자다. 이 중 77%가 ‘이혼’으로 인한 한부모 가정이다. 아이를 키우는 싱글대디, 싱글맘이 증가하면서 양육비 분쟁도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양육비 미지급 문제 해결 단계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 <뉴스포스트>는 양육비 미지급 문제로 고초를 겪는 한부모 가정에 대한 기획 보도를 준비했다. -편집자주-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이민우(가명·14) 군이 고소장을 들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7일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이민우(14·가명) 군이 고소장을 들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양육비 지급 이행 소송 과정에서 아버지가 새 가정을 꾸리고 다른 아이를 키운다는 걸 알게 됐어요. 우리는 버려지고, 양육비도 제대로 못 받는데 아이를 키운다니. 비상식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했어요”

올해 중학교를 입학했다는 이민우(14·가명) 군은 자신의 친부를 고소‘할 수밖에’ 없었다. 아홉 살 무렵 이군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폭행하는 장면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목격했다. 자신을 키우는 ‘양육비’를 요구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아홉 살 때 겪은 사건 이후 이군에게 아버지란 공포와 분노의 대상이 됐다.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에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이른바 분노조절 장애가 발병했다. 이 때문에 그는 어린 나이에 심리치료를 받기까지 했다.

순탄치 않은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이군은 단순히 아버지에 대한 분노에서 멈추지 않았다. 부모님의 이혼 후 양육비를 받지 못했다는 이군은 자신의 친부를 아동학대죄로 고소하기로 마음먹었다. 분노를 담아두기보다는 직접 행동함으로써 과거의 상처를 씻어내기 위함이었다.

“고소를 하겠다고 해서 처음에는 고민했어요. 무엇이 정답인지 몰라 아이와 많이 이야기했어요. 이야기해보니 아이가 화를 참다 보면 나중에 더 큰 상처가 될 수 있을 거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이가 어린 나이에 상처를 이겨내려고 하면, 성인이 됐을 때 도리어 문제가 되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가 자라서 친부에 대한 분노를 다른 방향으로 푸는 거 보다 지금 털어내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 최민정(가명) 씨-

곪았던 상처를 털어내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는 이군. 하지만 아직은 두려움이 앞선다고 한다. 두려움과 의지가 맞물린 상황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아동학대로 고소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사연은 무엇이었을까. <뉴스포스트>가 지난 6일 이군의 양육자인 친모 최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알아보았다.  

아빠에 대한 기억이 없는 두 자녀

최씨에 따르면 두 자녀는 어린 시절부터 아빠에 대한 기억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자영업을 한다는 이유로 친부는 이군이 4~5살 때부터 양육을 소홀히 했다. 그는 “집에 자주 들어오지 않았다. 일주일에 3번 들어오면 많이 오는 것”이라며 “하루는 집에 있던 친부와 마주친 아이들이 아빠에게 ‘우리 집에 웬일이냐’고 물은 적도 있다. 애들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군이 아홉 살이 된 2015년에는 양육비를 문제로 부부가 다투다가 친부가 최씨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양육비를 제때 주지 않은 문제를 최씨가 따지자 친부가 폭행을 가한 것이다. 최씨는 “양육비를 줄 때도 있고, 주지 않을 때도 있어 이에 대해 따졌다. 이 때문에 얼굴을 맞고, 멱살을 잡혔다”며 “밥상이 엎어지고, 그릇이 깨졌다. 이 장면을 당시 9살이던 첫째(이군)와 4살인 둘째가 봤다”고 증언했다.

폭행 사건으로 최씨는 정신과 진료를 받기 시작했고, 둘째는 분리 불안 장애를 얻었다. 이듬해 친부는 집을 나갔고, 2017년 이혼을 하게 됐다. 그는 “너무 무서웠고, 정신과 약을 먹기 시작했다”며 “둘째의 분리 불안 장애는 지금도 심하다. 퇴근 후 1분이라도 늦으면 수십 통씩 전화한다”고 전했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고 자란 이군 역시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았다. 최씨는 “양육비를 받지 못해 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걸 하지 못하고, 참아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며 “화를 참지 못해 애가 몸을 부들부들 떠는 등 분노조절 장애가 생겨 심리치료도 받았다. 그런 점이 참 힘들었다”고 이야기했다.

7일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양육비회원모임 관계자들과 이민우(가명·14)군이 고소장 제출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이별님 기자)
7일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양육비회원모임 관계자들과 이민우(14·가명)군이 고소장 제출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이별님 기자)

 

아빠를 신고할 수밖에 없던 이유

이군이 본격적으로 친부를 고소하겠다고 결심한 때는 어머니의 양육비 이행지급 소송 준비 이후부터다. 이혼 후 생계와 두 자녀의 양육을 모두 책임지던 최씨는 양육비를 받지 못하자 지난해 법률구조공단을 통해 양육비 지급 이행 소송을 준비했다. 이 과정에서 연락도 되지 않던 친부의 거주지를 알게 됐다. 올해 상반기 최씨는 이군과 함께 양육비 문제를 논의하러 친부를 찾아갔으나 도리어 주거침입죄로 신고를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최씨에 따르면 친부는 그와 이혼 후 새 가정을 꾸렸다. 최씨는 “양육비 지급 이행 소송 과정에서 친부가 다른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운다는 사실을 이군이 알았다. 그래서 폭발했다”며 “(이군은) 우리는 버려지고,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사실이 비상식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군은 친부에게 합당한 벌이 내려지길 바라고 있다고 최씨는 전했다. 이군은 직접 고소장을 제출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성인에게도 어려운 법률과 복잡한 고소 과정을 찾아봤다. 이 과정에서 아동복지법을 발견한 A군은 ‘방임’ 역시 아동학대라는 것을 알게 됐다. 방임으로 인해 자신이 성장 과정에서 정서적 발달에 해를 입었기 때문에 친부가 이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게 A군의 입장이다.

어려운 결단을 내린 A군이지만,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양육비 미지급 문제에 대한 국가의 인식도 여전히 안일하다. 이에 B씨는 “아들이 무섭다는 이야기도 한다. 언론 보도가 나가면 일이 커질 거라고 생각한다. 행여 친부가 위해를 가할까 봐 두려워한다”면서도 “두려워하는 아이에게 제가 ‘그러면 엄마가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안심시켰다. 또한 “아이의 뜻대로 재판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양육비 지급 이행소송을 끝까지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군은 7일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양육비 미지급 문제 관련 시민단체 양육비해결모임(이하 ‘양해모’)의 도움으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양해모는 이혼한 상대가 양육자에게 양육비를 주지 않는 것은 아동학대라고 주장하며 지난 2018년 11월부터 미지급 비양육자를 대상으로 집단 고소를 접수 중이다. 현재 8차까지 집단 고소가 들어왔지만, 피해 아동이 자신의 부모를 직접 고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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