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핸드폰은 고가 기기...핫스팟 찾는 어려움 감내한다”
- 소비자 “싸게 파는 게 왜 위법인지...단통법 폐지해야”
- 이통사 “나도 핫스팟서 핸드폰 구매...단말기 팔아도 마진 안 남아”
- 방통위 “단통법 우려 공감...소비자 의견 수렴해 개정할 예정”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x발 왜 사지도 않으면서 자꾸 어슬렁거려” 30대 강모 씨는 며칠 전 이른바 ‘핫스팟’으로 통하는 곳에서 상소리를 들었다고 토로했다. 호객행위를 하던 직원이 강 씨가 눈길을 주지 않고 그냥 지나가자 그의 뒤통수에 대고 험한 말을 한 것이다. 애플 아이폰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는 소문이 무성한 곳이었다.

서울 강변역 테크노마트 휴대폰 집단상가 (사진=선초롱 기자)
서울 강변역 테크노마트 휴대폰 집단상가 (사진=선초롱 기자)

강 씨가 찾은 매장은 첨단 기기를 깔아놓고 파는 도떼기시장 같았다고 했다. 얇은 널빤지로 경계선을 그어놓은 그곳에서, 백여 개의 매장이 저마다 가장 싼 가격에 핸드폰을 판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가격은 소리 내지 말고 계산기에 두드리라”는 충고도 들었다. 핸드폰을 불법보조금으로 저렴하게 파는 ‘매장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한다.

강 씨는 “단통법 시행 전 동네 판매점에서 아이폰을 싸게 개통한 적이 있다”며 “단통법이 시행된 이후에는 ‘핫스팟’이라고 하면 거기로 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핸드폰이 100만 원 이상 고가이기 때문에 핫스팟을 찾는 어려움과 쾌적하지 않은 구매 과정도 감수하고 있다”고 했다.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하 단통법)’은 지난 2014년 10월 1일 시행됐다. 이동통신단말장치의 공정하고 투명한 유통 질서 확립을 위해 도입한 법이었다. 당시 미래창조과학부의 의뢰로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이 법안을 발의했다.

휴대폰 구매자 간 보조금 차별을 없애 혜택을 강화하고 보조금만큼의 가계 통신비를 완화하겠다는 게 목적이었다. 이에 따라 단말기의 판매 보조금이 공시지원금의 15%를 넘기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단통법 도입 6년이 지났지만, 아직 법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오히려 소비자의 권익을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통사가 제공하는 보조금 상한이 규제로 묶이면서 저렴한 핫스팟을 찾아 떠도는 하이에나 소비자가 늘어나는 부작용이 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뉴스포스트>가 소비자와 이동통신사 종사자, 방송통신위원회 등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들어봤다.
 


소비자, 누구를 위한 법인지 모르겠다


강 씨는 “단통법 도입 당시에는 사실 잘 몰랐는데, 핸드폰을 바꾸면서 단통법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그런데 지금 단통법은 도입 취지와 달리 소비자 모두가 핸드폰을 비싸게 사게 만드는 악법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소비자로서는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고 핫스팟을 찾는다”고 했다.

단통법에 대한 불만은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 8일 방송통신위원회가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 KT 등 국내 이동통신사에 512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에 대한 여론은 싸늘했다.

방통위는 이통3사의 119개 유통점에서 일부 이용자에게 공시지원금보다 평균 24만 6,000원을 초과 지급했다고 밝혔다. 유통점들은 △현금 지급 △해지위약금 대납 △할부금 대납 △사은품 지급 등의 방식으로 위법행위를 했다.

일부 소비자들은 단통법이 오히려 권익을 침해한다고 지적한다. (편집=이상진 기자)
일부 소비자들은 단통법이 오히려 권익을 침해한다고 지적한다. (편집=이상진 기자)

방통위의 처분에 대해 소비자들은 단통법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싸게 파는 게 왜 위법인지, 국민 등쳐먹는다” “단통법 폐지하라, 누구를 위한 법인가” 등 단통법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이날 참여연대도 방통위의 512억 원 과징금 부과가 통신사 봐주기의 전형이라고 규정했다. 본래 933억 원이었던 과징금이 시장안정화와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대규모 재정지원을 약속한 이통3사의 노력을 이유로 512억 원으로 감경된 까닭이다.

참여연대는 “과징금 처분에 그치지 말고 분리공시제를 도입해 불법 보조금만큼의 금액을 단말기 출고가와 이동통신요금 인하로 이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도 핫스팟 가서 핸드폰 사요” 이동통신사 관계자들도 푸념


단통법 도입 이후 핸드폰이 저렴한 '핫스팟'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사진=선초롱 기자)
단통법 도입 이후 핸드폰이 저렴한 '핫스팟'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사진=선초롱 기자)

소비자들의 지적에 대해 이동통신사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이동통신사 관계자 A씨는 “단말기 가격은 계속 오르는데 통신비는 계속 내려가고 있다는 건 수치로 확인되는 부분”이라면서 “이통사에서 단말기를 아무리 팔아도 전혀 마진이 남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그는 “삼성전자나 LG전자, 애플 등 제조사에 마진이 모두 돌아가는 구조인데, 이런 상황에서 단통법으로 이통사만 배부르다는 소비자들의 지적은 다소 억울한 지점이 있다”고 했다.

단통법 자체가 문제라는 데 동의하는 의견도 있었다. 이통사 관계자 B씨는 “핸드폰이 요즘은 필수재적 성격을 가져서 국민적 관심이 높다는 게 단통법 문제가 도드라져 보이는 데 한몫하는 것 같다”며 “예를 들어 자동차의 경우 딜러의 역량에 따라 수백에서 천만 원까지 가격이 달라지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문제 삼는 법은 없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저도 핸드폰을 구매할 때 핫스팟을 찾는데, 이통사 다니는 사람도 하이에나처럼 성지를 찾아 떠도는 마당에 일반인들은 당연하지 않겠냐”면서 “구매 당시 핸드폰으로 녹취하고 있지는 않은지 등을 검사받는 등 불쾌한 경험을 했지만, 핸드폰이 고가인 까닭에 불편을 감수했다”고 말했다. ‘핫스팟’ 종사자들이 과기부나 방통위, 이통사 관계자들이 암행 조사를 나온 것을 경계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절차라는 설명이다.

B씨는 핫스팟을 찾아 핸드폰을 구매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가끔 “이통사 서버 문제로 며칠 뒤에 개통해야 한다”면서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을 맡기고 며칠 뒤 핸드폰을 찾으러 오라”는 매장이 있는데, 절대 동의하지 말라는 것이다. 개인정보유출의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방통위 “단통법, 소비자들의 권익을 위해 개정해 나갈 생각”


방통위 측도 단통법을 둘러싼 소비자와 이통사의 불만에 공감하고 있었다. 방통위는 지난 7일 과기부와 방통위, 시민단체 관계자, 이통3사 관계자, 유통망 관계자 등이 참여한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협의회’의 마지막 회의를 끝냈다.

방통위 관계자는 “단통법 자체가 되려 소비자들의 권익을 저해한다는 주제가 협의회의 가장 첫 번째 논의주제였고, 이에 대해서 소비자단체와 유통단체에서 공감했다”며 “하지만 이통사에서는 출혈경쟁 심화와 번호이동과 기기변경 간에 차별이 심화될 수 있다며 반대하는 입장이었다”고 했다.

이어 “개선협의회의 회의 내용을 10일 공개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청취한 뒤에 이달 또는 늦어도 다음달까지 단통법 개선안을 마련할 예정”이라며 “공시지원금을 15%로 규제한 것을 확대할지, 차별 지원을 허용할지 등에 대해 그게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의견이 모이면 이통3사를 설득해가면서 추진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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