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박 시장 발인 후 사과 언급
여성단체 “피해자와 연대하겠다”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이 발인식을 마치고 영면에 들어가면서 그와 관련된 의혹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피해 주장 여성이 고인의 일부 지지자들에게 2차 피해를 당하고 있는 가운데, 시민사회계는 물론 여권에서도 해당 여성에 대한 공격을 멈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3일 오후 김재련(오른쪽)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가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3일 오후 김재련(오른쪽)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가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3일 이날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성추행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여성 측의 변호인은 사건에 대해 “성폭력특례법상 통신매체이용음란·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형법상 강제추행 죄명을 적시해 이달 8일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했다”며 “다음날 고소인에 대한 1차 진술 조사를 마쳤다”고 설명했다.

변호인은 박 시장의 일부 지지자들에 의해 자행되는 2차 피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같은 날 가해자가 실종됐다는 기사가 나갔고,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며 “오늘 오전 피해자에 대해 온·오프라인 상으로 가해지고 있는 2차 가해 행위에 대한 추가 고소장을 서울지방경찰청에 제출했다”고 덧붙였다.

박 시장에 대한 의혹은 지난 10일 고인이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고 실종되면서 불거졌다. 같은 날 지상파 뉴스에는 그가 2017년부터 수년 동안 여성 비서를 성추행해왔다는 의혹이 보도됐다. 피해 주장 여성은 박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으나, 그가 사망하면서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은 종결됐다.

고인이 사망하고 서울특별시장(葬)으로 5일간 장례가 치러질 동안 온라인상에서는 피해 주장 여성에 대한 2차 피해가 이어졌다. 박 시장의 지지자로 추정되는 한 누리꾼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억울한 누명으로 돌아가신 시장님을 위해 고소장을 넣은 여성을 색출해 무고죄로 고발하고, 신상 공개를 요청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상에 여성의 사진이 게재되기도 했다. 사진 속 여성은 박 시장을 고소했다는 당사자로 지목됐다. 올라온 사진들이 해당 여성인지 진위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사진 속 인물의 진위를 떠나 고소인에 대한 2차 피해가 도를 넘어서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가 마련됐다. (사진=이별님 기자)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가 마련됐다. (사진=이별님 기자)

2차 피해 우려 목소리 커져

피해 주장 여성에 대한 2차 피해가 심각해지면서 여권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일어났다. 같은 날 오전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피해 호소인에 대한 비난과 2차 가해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며 “향후 당 소속 고위 공직자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당 차원의 깊은 성찰과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주민 최고위원 역시 “당연한 일이지만 고소인에 대한 비난과 공격은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형석 최고위원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낼 고소인이 2차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무분별한 신상털이 등에 대해 자제를 부탁드린다”고 박 시장과 관련한 의혹 당사자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당부했다. 여권 관계자들이 공개적으로 의혹에 대해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발인이 끝나기 전까지만 해도 여권 인사들은 박 시장에 의혹에 대한 해명에 소극적이었다. 특히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고인의 빈소 현장에서 의혹에 대해 묻는 취재진에게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욕설을 하는 등 거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비슷한 목소리는 정치권보다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먼저 나왔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10일 자신의 SNS에 “모두가 고인을 추모할 뿐 피해 여성이 평생 안고 가게 될 고통은 말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목수정 작가 역시 “덮어놓고 추모하고 명복을 빌 뿐. 그들이 서둘러 떠나야 했던 이유를 추적하지 않아 생기는 모호한 결말은 사회를 갉아먹는다”고 말했다. 

특히 여성계에서는 피해 주장 여성을 지지하는 연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전날인 12일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단체들이 연달아 성명문을 발표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자신의 피해 경험을 드러낸 피해자의 용기를 응원하며 그 길을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서울시는 진실을 밝혀 또 다른 피해를 막고, 피해자와 함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여기자협회는 “고인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피해호소인 보호가 우선”이라며 “현행 법체계는 이번 의혹 사건에 공소권 없음을 결정했지만, 진상을 규명해야 할 사회적 책임을 면제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한국여성의전화는 “고인의 성추행 피소 후 또다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편에 선 우리 사회의 일면에 분노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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