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를 이야기할 때 자살 문제를 뺄 수 없다. OECD 국가 중 가장 자살을 많이 하는 나라라는 불명예가 십수 년째 대한민국의 꼬리표처럼 따라온다. 최근에는 특히 노년층의 자살이 눈에 띈다. 무엇이 문제일까. 세월의 풍파를 모두 견딘 이들이, 굴곡진 현대사를 몸소 체험한 이들이 왜 생의 끝을 스스로 마감하는 것일까. <뉴스포스트>는 노년층의 자살 즉 ‘황혼 자살’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이야기해보는 기획 보도를 준비했다.

(사진=픽사베이)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황혼(黃昏)이란 사람의 생애가 고비를 지나 쇠퇴해 종말에 이르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대개 노년층을 세련된 단어로 지칭할 때 사용되는 단어다. ‘100세 시대’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대한민국에서 황혼의 의미가 다시 쓰여야 한다는 지적이 있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만 65세 이상을 황혼에 비유한다.

100세 시대라는 말에 걸맞게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65세 이상 노년층이 많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일부는 생의 끝을 스스로 마감하는 경우도 있다. 불행하게도 노년층의 자살 문제가 심각하다는 게 최근 관련 통계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황혼이라는 말에 어울리지도 않는 ‘자살’이라는 단어를 붙인 ‘황혼 자살’이 각종 매스컴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이유다.

2020년 기준 만 65세 이상 노년층은 1950년대 중반 이전에 출생했다. 반세기 이상을 살아오면서 한국의 굴곡진 현대사와 세월의 풍파를 모두 견뎌냈다. 과학 기술은 물론 정치 제도와 시민의식 모두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한 현재 대한민국에서 황혼 자살을 택하는 이들은 어떤 사연이 있고, 또 얼마나 많은지 <뉴스포스트>가 관련 통계를 통해 알아보았다.

연령대 높아질수록 늘어나는 자살률

지난달 보건복지부는 ‘2020자살예방백서’를 발표했다.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자살자 수는 1만 3,670명이다. 하루 평균 자살자 수는 37.5명이고,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를 의미하는 자살률은 26.6명이다. OECD 회원국의 평균 자살률이 11.5명에 그친 데 반해 한국의 자살률이 무려 2배 이상 높다.

특히 황혼 자살의 수치가 심각하다. 같은 해 만 65세 이상 노년층 자살자 수는 3,593명이고, 자살률은 전체 연령대 자살률 26.6명의 약 1.5배에 달하는 48.6명이다. OECD 회원국의 노인 자살률이 평균 18.4명임을 고려하면 한국의 황혼 자살률 세계적인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노년층 자살률 2위 국가인 슬로베니아(38.7명)와도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구체적인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80세 이상이 69.8명으로 제일 높다. 70대 이상 자살률이 48.9명으로 뒤를 이었다. 50대 33.4명, 60대 32.9명으로 연령대별 자살률을 분석해본 결과 노년층 이상의 수치가 젊은 세대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10대는 5.8명, 20대 17.6명, 30대 27.5명, 40대 31.5명 순이다. 10대부터 50대까지 자살률이 증가하다가 60대에 소폭 감소한다. 70대에서 10명 이상 상승하고, 80대에서 또다시 큰 폭으로 높아진다.

2018 기준 연령대별 자살률.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자살률 역시 높아지는 경향이 보인다. (표=보건복지부 제공)
2018 기준 연령대별 자살률.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자살률 역시 높아지는 경향이 보인다. (표=보건복지부 제공)

여전히 황혼 자살률은 높지만, 이마저도 최근 수년간 감소한 수치다. 노년층 자살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자리매김한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만 65세 이상 자살률은 2014년 55.5명, 2015년 58.6명, 2016년 53.3명, 2017년 47.7명, 2018년 48.6명이다. 전반적으로 감소 추세라고 볼 수 있지만, 국제 사회의 기준을 놓고 볼 때 여전히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황혼이 스스로 생을 접는 이유

OECD 자살률 1위 국가라는 꼬리표가 붙는 한국에서도 황혼 자살률은 타 연령대보다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 65세 이상 노년층이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하기까지에는 여러 요인이 있었을 것이다.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인지는 보건복지부가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경찰청 변사자료 자살 통계에 따르면 2018년 전체 사망자의 자살 동기 중 가장 높은 것은 정신적·정신과적 문제(31.6%)다. 경제 문제가 25.7%로 뒤를 이었다. 육체적 질병 문제가 18.4%, 가정 문제 7.9%, 원인 미상 6.4%, 직장 또는 업무상 문제 3.7%, 남녀 문제 3.2%, 기타 2.5%, 사별 문제 0.8% 순이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주요 사망 원인 순위는 거의 뒤바뀌지 않았다. 5년간 정신적 문제와 경제적 문제가 자살의 주요 원인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노년층의 사정은 달랐다. 61세 이상의 자살 동기는 육체적 질병 문제가 41.6%로 가장 높았다. 정신과적 문제가 29.4%로 뒤를 이었다. 생활고는 11.9%, 가정 문제는 6.9%였다. 10~30세 자살 동기 1위는 정신과적인 문제, 31~60세는 경제 문제다. 반면 육체적 질병 문제로 인한 자살 비율은 51~60세에서 10%를 넘더니, 61세 이상에서는 무려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육체적 질병 문제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이 증가했다.

2018년 기준 연령대에 따른 동기별 자살 비율 그래프. 61세 이상 노년층의 자살 동기 1위는 육체적 질병 문제다. (표=보건복지부 제공)
2018년 기준 연령대에 따른 동기별 자살 비율 그래프. 61세 이상 노년층의 자살 동기 1위는 육체적 질병 문제다. (표=보건복지부 제공)

육체적 질병 문제가 노년층의 주요 자살 요인이 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통계청이 2009년 발표한 ‘2009고령자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중 7.6%가 지난 1년 동안 자살 생각을 해 봤다. 이들이 자살하고 싶었던 가장 큰 요인은 질환 또는 장애로 육체적 질병 문제가 40.8%로 가장 많았다. 경제적 어려움이 29.3%, 외로움과 고독으로 자살 생각을 해봤다는 이들이 14.2%다. 약 10년 전에도 육체적 질병 문제가 황혼 자살에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육체가 노쇠할수록 건강이 나빠지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해 발표한 ‘2018년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 노인 연간 진료비는 2018년 41조 8,235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10년 전인 2011년 15조 3,894억 원보다 2.1배가 늘었다. 1인당 평균 진료비도 2011년 294만 8천여 원에서 2018년 456만 8천여 원으로 크게 늘었다. 2018년 전체 1인당 평균 진료비 152만 8천여 원보다 약 3배가 많았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약 709만 명으로 전체 대상자의 13.9%였다. 하지만 건강보험 진료비에서 노년층 진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40%를 넘는다. 암과 희귀·난치, 심장혈관, 뇌혈관, 중증화상 등 중증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 중에 노년층이 많다. 같은 해 중증 질환 환자 수는 209만 1,680명인데, 60대 이상이 110만 1,700명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문제는 신체적 질병 문제가 황혼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결과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문재우 한세대학교 간호복지학부 교수가 올해 4월 발표한 학술논문 ‘노인 자살의도 영향 요인 ―연소노인과 고령노인의 차이를 중심으로―’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층은 투병 기간이 길고, 우울 수준이 높을수록 자살 의도가 높았다. 가족이나 사회적 관계 만족도가 낮은 집단 역시 자살 위험에 노출됐다.

논문은 “노년층의 자살 의도를 줄이기 위해서는 만성질환에 대한 차별적이고, 집중적인 예방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며 “만성질환과 우울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질환 관리는 노인층의 자살 의도를 감소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 희망의 전화 ☎129 / 생명의 전화 ☎1588-9191 /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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