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살 만큼 살았지” 어르신 한마디가 ‘황혼 자살’ 징후
[인터뷰] “살 만큼 살았지” 어르신 한마디가 ‘황혼 자살’ 징후
  • 이별님 기자
  • 승인 2020.07.31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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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택수 한국자살예방센터장 인터뷰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를 이야기할 때 자살 문제를 뺄 수 없다. OECD 국가 중 가장 자살을 많이 하는 나라라는 불명예가 십수 년째 대한민국의 꼬리표처럼 따라온다. 최근에는 특히 노년층의 자살이 눈에 띈다. 무엇이 문제일까. 세월의 풍파를 모두 견딘 이들이, 굴곡진 현대사를 몸소 체험한 이들이 왜 생의 끝을 스스로 마감하는 것일까. <뉴스포스트>는 노년층의 자살 즉 ‘황혼 자살’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이야기해보는 기획 보도를 준비했다.

지난 2018년 4차 산업시대 인간관계를 주제로 열린 인문학 콘서트에서 한국자살예방센터장 정택수 우석대 교수가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정택수 한국자살예방센터장 제공)
지난 2018년 4차 산업시대 인간관계를 주제로 열린 인문학 콘서트에서 한국자살예방센터장 정택수 우석대 교수가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정택수 한국자살예방센터장 제공)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발표한 ‘2020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자살자 수만 1만 3,670명이다.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은 26.6명으로 OECD 회원국 평균 자살률 11.5명의 2배를 훌쩍 뛰어넘는다. 세계 경제 규모 11위 수준의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오늘날에도 대한민국은 세계 최악의 자살 대국의 오명을 쓰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황혼(黃昏)’이라고 비유되는 65세 이상 노년층의 자살률은 특히 심각하다. 같은 해 노년층 자살자 수는 3,593명이다. 자살률은 48.6명으로 대한민국 전체 연령대 자살률 26.6명의 약 1.5배에 달한다. 노년층의 높은 자살률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65세 이상 자살률은 2014년 55.5명, 2015년 58.6명, 2016년 53.3명, 2017년 47.7명, 2018년 48.6명으로 최소 5년 이상 45명 선을 넘어섰다.

노인 자살률이 유독 높다는 점은 현재 대한민국이 노인들이 불행한 나라임을 증명해 준다. 세계 최악 자살 대국이라는 오명을 썼다고 하지만 한국은 세계 기준을 놓고 볼 때 ‘잘 사는 국가’다. 이곳에서 어쩌다 노인들이 살기 힘든 나라가 됐을까. 통계는 노년층 자살 원인 1위를 육체적 질병 문제라고 꼽았다. 하지만 통계가 이들의 자세한 사정까지 담아내지는 못했다. 이에 <뉴스포스트>는 자살 고민을 겪는 노년층의 이야기와 이를 막기 위한 방법 등을 알아보기 위해 현장에서 황혼 자살 문제를 피부로 느끼는 이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국자살예방센터장 정택수 우석대학교 교수는 2010년부터 민간전문 기관을 설립해 자살 위기에 놓인 사람들을 상대로 전화, 온라인, 대면 상담을 통해 새 삶을 찾아주고 있다. 또 교육기관과 사회복지시설, 군부대 등 각종 기관과 단체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자살 예방 교육도 진행한다. 정 교수는 지난 29일 본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황혼 자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현장에서 피부로 많이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자살예방센터장 정택수 우석대 교수. (사진=정택수 한국자살예방센터장 제공)

자살 원인, 하나만으로 설명 안 돼

정 교수에 따르면 한국자살예방센터(이하 ‘센터’)를 찾는 노년층은 하루 평균 1~2건이다. 통계처럼 센터에서도 노년층은 육체적 질병으로 신변을 비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노년층 자살 원인을 단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게 정 교수의 입장이다. 육체적 질병이 경제적 문제와 정신적 질환을 야기하고, 심해지면 신변 비관과 자살 생각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어르신들이 상담을 받으실 때) 나이가 들면서 노인성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호소하지만, 육체적 질병만이 자살의 원인이 될 수 없다”며 “경제적 문제가 있기 때문에 병원 치료도 어렵고, 이로 인해 신변 비관으로 이어진다. 육체적 질병에서 경제적 어려움, 신변 비관으로 인한 노인 우울증, 자살 생각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와 전화 상담을 진행했던 A(73)모 씨 역시 육체적 질병에서 자살 생각까지 이어진 사례다. 7년간 중풍을 앓아온 그는 치매 증상까지 겹쳤다. 경제적 어려움까지 더해 삶을 비관했다. 아들과 함께 산다는 이유로 A씨는 기초생활보장수급 혜택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아들 역시 척추 건강 문제로 1천만 원에 상당의 값비싼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돈 안 들고 확실하게 죽는 방법이 있는가. A씨가 정 교수에게 한 질문이었다.

A씨의 사연이 너무 안타까워 베테랑 정 교수마저도 상담에 어려움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정 교수는 “얼마나 힘들까 충분히 공감해 주고 잘 경청했지만, 노인성 질환 및 경제적 어려움 등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는 데에는 난항이 있었다”며 “A씨를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129 보건복지콜센타’를 연계해 도움의 손길을 줬다”고 전했다.

황혼 자살, 막기 위해서는

육체적 건강 악화와 최악의 경제적 상황까지 겹쳐 극단적인 생각을 하던 A씨는 상담을 통해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A씨의 사례처럼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면 어르신들의 자살 시도를 더 많이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A씨처럼 상담을 받으려는 자살 고위험군 노년층의 숫자가 많지 않다는 게 문제다.

정 교수에 따르면 센터에서 상담을 받는 노년층은 청소년과 중년층에 비해 적다. 상담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인 인식이 타 연령대보다 높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노년층은 상담을 받는다고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 편견을 갖고 계시고, 생활고나 육체적 질병을 (자살 예방) 상담을 통해 해결될 수 없다고 본다”며 “이 때문에 노년층은 상담을 통해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황혼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이 중요하다. 정 교수는 상담을 통해 극단적인 생각을 하던 어르신의 소중한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유서를 작성해서 늘 소지하고 다녔다는 B(68)모 씨는 아내와 이혼 후 홀로 거주하며 외로움을 술로 달랬다. 엎친 데 덮친 격 딸과의 불화로 투신자살을 시도했던 B씨. 다행히 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정 교수에게 상담을 받게 됐다.

정 교수가 상담해보니 B씨에게는 자살 위험이 내제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딸이 자신의 힘든 사연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정 교수는 B씨의 딸의 연락처를 알아냈고, 그에게 아버지의 상담 내용을 전했다. 딸로서 아버지의 힘든 마음을 위로해주라는 당부를 했다. 상담 이후 B씨는 한층 밝아졌다. B씨는 현재 노인복지관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자살 위기에서 벗어나게 됐다고 정 교수는 전했다.

어르신들이 한국자살예방센터장 정택수 우석대 교수의 강의를 경청하고 있다. (사진=정택수 한국자살예방센터장 제공)
어르신들이 한국자살예방센터장 정택수 우석대 교수의 강의를 경청하고 있다. (사진=정택수 한국자살예방센터장 제공)

자살 징후, 황혼은 다르다

노년층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도움도 필요하지만, 가족 등 주변 지인들의 관심과 노력도 중요하다. 특히 황혼 자살의 경우 타 연령대의 자살과는 징후가 다르기 때문에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정 교수는 “노년층 자살은 잘 표현하지 않고, 혼자서 계획하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힘드시냐고 여쭤봐도 ‘괜찮다’라고 답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자살 징후를 완벽하게 감추는 것도 아니다. 정 교수는 “잘 표현하지 않는 게 특징이라 잘 알 수 없다”면서도 “간단한 한마디로 (자살 징후를) 표현한다”고 말했다. ▲ 갈 때가 됐지 ▲ 신세만 지고~ ▲ 자식들 부담만 되고~ ▲ 살 만큼 살았지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간단한 표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말을 하지 않아도 표정이 어둡고, 최근 행동에서 다른 모습을 보이거나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때 위험 징후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주변 어르신의 자살 징후를 눈치챘다면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고 정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위험 징후 혹은 자살 위험이 내재했다고 느낄 때 망설이지 말고 바로 가까운 전문 기관 및 자살예방센터(1577-0199, 1588-9191, 1393)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며 “휴대전화를 받지 않거나 큰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면 주저 없이 112에 신고해야 한다”며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 교수는 “어르신들은 정말 소중하신 분이다. 우리 모두가 소중한 존재”라며 “하나밖에 없는 생명, 하나뿐인 소중한 나”라고 말했다. 그는 “노인분들은 과거 힘들었을 때 경제 발전의 주역이시고, 고생을 많이 하신 분이다. 이런 분들이 마지막을 자살로 끝내서는 안 된다”며 “노인은 박물관과 도서관이라고 비유할 정도로 귀중하고, 소중한 존재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더욱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 희망의 전화 ☎129 / 생명의 전화 ☎1588-9191 /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별님 기자 leestarni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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