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회장님 아들의 ‘미친’ 이야기”

<뉴스포스트>"평소 '미쳤다'는 말을 좋아해요. 그 말이 나에게는 칭찬으로 와 닿습니다. 내가 미친 듯이 빠져 들어서 그만큼 열중했다는 소리잖아요. 또 창의성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말로 들려요. 그래서 내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하고 또 앞으로도 미치고 싶습니다."
두산그룹 박용만(56) 회장의 장남이자 빅앤트인터내셔널 CEO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박서원(32) 씨가 '생각하는 미친놈'을 펴냈다.


박서원 씨는 학창시절 한 반 53명 중 50등을 할 정도로 '노는 데' 미쳤다.

"부모가 걱정을 많이 했다. 50등을 하면, 부모에게 성적표를 보여줘야 하는데 그게 너무 곤혹스러웠다. 그 때는 노는 게 좋아서 놀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좋지 않은 성적표를 보여줘야 했다. 하지만 부모는 '다음에는 잘할 수 있지? 다음에는 잘할 거라고 믿어'라고 말씀했다."

‘노는 데’ 미쳤던 꼴찌 아들

"6년 동안 한 번도 혼낸 적이 없다. 다음에도 잘할 거라는 생각은 더더욱 안 했다. 하지만 지금 못해도 20년 후에는 멋진 아들이 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정원 미달로 간신히 대학에 들어간 그는 퇴학 직전까지 갔다가 결국 미국으로 도피성 유학을 떠났다. 웨스턴미시간 대학에서 학사 경고를 2번 받고 재미있는 공부를 찾기 위해 전공을 4번 바꿨다.

"왜 노는 데 미쳤을까 고민했더니 너무 공부가 재미없었다. 최대한 많은 전공수업을 들으며 재미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경영학과로 입학한 박씨는 사회학과로 전과했다. 복수 전공으로 심리학을 하다가 인문과학으로 눈을 돌렸다. 급기야 이공계로까지 시야를 넓혀 기계공학과와 화학과 전공까지 배웠다. 그러다 찾은 게 디자인 공부였다.

"우연히 디자인과 친구가 과제를 하는 걸 봤는데 그때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처음 봤다. 그 과정이 내 눈에는 노는 것으로 보였다. 그때부터 전공을 바꾸고 수업을 들었는데 처음으로 올A 학점을 맞았다. 재미있는 공부를 하니 수업이 쉬워졌다."

대학 졸업 후 박씨는 친구 4명과 함께 빅앤트인터내셔널을 만들었다. 3년 만에 한국 최초로 국제 5대 광고제인 칸 국제 광고제, 뉴욕 페스티벌, 클리오 광고제, D&AD, 뉴욕 원쇼 석권과 3년 연속 수상을 기록하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주목받았다.

"내 일상에서 겪었던 일들이 아이디어가 되는 것 같다. 아이디어의 모든 중심은 호기심이다. 같은 생활이어도 최대한 많은 것을 겪으려고 노력한다. 가로수, 나무, 표지판 등 같은 거리를 걸어도 최대한 많은 것을 겪으려고 한다. 두 번째 단계는 기록이다.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는 데 어떤 형태로든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이름을 알릴 당시 두산 박용만 회장의 아들이라는 사실로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기도 했다.

"어느 정도 선입견을 예상했다. 내가 아버지가 누구라고 말하는 순간 아무리 내가 노력해도 아버지가 돋보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첫해 광고제에서 수상할 때는 집안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 번째 때 집안 얘기를 하자 댓글의 90%가 욕으로 바뀌었다"고 밝혔다.

“부모 후광, 덕 본다 소리 싫었다”

그는 "부모에게 도움을 안 받았다는 말은 안 했다. 도움을 받은 것은 분명 사실"이라면서 "만약 다른 환경에 태어났다면 이 자리에 서 있을 것 같은지, 질문을 많이 받는다. 3년 전 질문을 받고 1년 동안 생각해봤다. 솔직히 말해 지금 이 순간에는 여기 없을 것 같지만 5~10년 안에는 이 자리에 서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주위에 성공한 분들이 다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처음 동네가게 현수막, 전단, 간판디자인 일부터 시작한 빅앤트는 매일유업, 동화약품, 삼성카드, GM대우, 해태제과, 그랜드성형외과 등 상업광고는 물론 케이블채널 tvN, 뮤지컬 '주유소 습격사건'의 아트 디렉팅 음반, 전시회 기획까지 맡았다.
 

'생각하는 미친놈'은 박씨가 디자인을 시작하게 된 과정에서 프로젝트 결과물들, 직원들과 겪은 일들을 정리한 책이다. 크게 이벤트 회사를 차리게 된 과정과 그 안에서 공부를 하게 된 계기, 회사를 차린 후 작업을 하면서 겪은 일들이 결과물로 나오기까지 과정을 전한다. 인세는 사회에 환원한다.

"인세 중 70%는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사용된다. 내가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친구들, 부모, 선생님 등의 도움 때문이다. 내가 받은 게 많아서 이렇게 정착을 했다. 받은 만큼 다른 사람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30%는 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젊은 학생들을 위해서 장학금을 줄 예정"이라고 전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꾸준히 새로운 시도를 할 예정이라는 박씨는 “규모적으로는 소규모를 유지하고 그 외 새로운 영역을 다루고 싶다”면서 “광고와 디자인은 누군가를 위해 아이디어를 내는 역할이다. 누구를 위해 해줬을 때 잘되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스스로 하면 어떨까 싶다. 내년에는 자체적인 제품을 하나 만들어 볼까 생각 중"이라고 귀띔했다.

박서원 씨 수필집 <생각하는 미친놈>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