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문화유산, 전 세계에 알리고 ‘영면’

<뉴스포스트>역사학자 박병선(1923 - 2011) 박사가 향년 83세를 일기로 지난 11월 23일 타계했다. 고(故) 박병선 박사는 먼 프랑스 땅에서 잠들고 있던 세계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을 찾아내 ‘직지대모’라는 칭호를 얻은 분이다. 그는 또 병인양요 때 빼앗긴 외규장각 의궤를 되찾아 온 공로도 인정받고 있다. 최근까지도 ‘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의 저술 작업을 계속했을 정도로 한국사 연구에 헌신적이었다. 프랑스에 남아 있던 소중한 우리 기록 유산을 찾는 데 일생을 바쳤던 고 박병선 박사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고(故) 박병선 박사는 1923년 서울에서 5남매 중 셋째딸로 태어났다. 서울대 사범대 사회생활학과(현 역사교육학과)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스물일곱살이던 1955년 한국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프랑스로 유학했다. “사학도로서 프랑스로 유학을 가니 병인양요 때 빼앗긴 책을 찾아보라”는 스승 이병도 박사의 말에 따라 프랑스에 남아 있던 소중한 우리 기록 유산을 찾는 데 헌신했다.

세계 최초 ‘금속활자 보유’ 증명

그는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서 석·박사를 마친 뒤 1967년부터 프랑스국립도서관(BNF) 사서로 일하면서 독일의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0년 앞선 금속활자인 '직지심체요절'을 발견했다. 1972년 파리 '책의 역사 종합전람회'에 '직지'를 출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임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그 결과 '직지'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로 인류문화사에 끼친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박 박사는 ‘직지’ 발견 이후에도 끊임없이 한국 문화유산에 대한 실증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20년 동안 3,000만권이 넘는 도서관의 책들을 일일이 확인했다. ‘병인양요 때 가져온 도서는 모두 프랑스국립도서관에 기증’이라고 적힌 모리스 쿠랑의 조선서지 기록을 단서로 한 것이었다.

그는 결국 1975년 파리국립도서관 베르사유 별관 창고에서 외규장각 도서를 찾아냈다. 어이없게도 외규장각 의궤는 파손서적 보관창고에서 중국서적으로 분류된 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고인은 당시를 기억하며 생전에 “잊을 수 없다”고 말했었다.

박 박사는 외규장각 의궤의 존재를 확인한 후 한국대사관에 “파지로 분류되어 있으니 돌려받기도 간단할 것이다. 어떻게든 좀 힘을 써달라”며 반환협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프랑스국립도서관으로부터 "비밀을 누설했다"는 질책을 받고 해임 당했다. 게다가 한국 정부도 한-프 관계 악화를 이유로 협상에 냉담했다.

박 박사는 차가운 냉대 속에서도 10년간 연구에 매진해 190종 297권의 외규장각 의궤 목록을 정리해 발간했다. 이는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이 2개월 간 강화도 강화읍성에 주둔하면서 약탈해간 문화재 중 일부다. 박 박사의 열정에 프랑스 직원들은 “파란 책(외규장각 도서)에 파묻힌 여자”라고 불렀다.

박 박사의 노력은 결국 수십년 세월이 흘러 올 6월에서야 결실을 맺었다. 그의 열성적인 연구 노력은 곧 외규장각 의궤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1991년 정부차원의 반환운동까지 이어졌다. 이후 한-프 양국 대통령이 5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임대형식으로 대여하기로 지난해 합의하면서 145년만에 외규장각 의궤가 한국땅으로 돌아왔다.

▲지난 6월 11일 경복궁 근정전에서 열린 외규장각 의궤 귀환 환영행사에서 박병선 박사가 이명박 대통령의 격려를 받는 모습.


박 박사는 직지심체요절과 외규장각 도서를 발굴하고 외규장각 도서 반환운동을 촉발, 모두 돌려받는 계기를 만든 공로를 인정받아 2007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했다. 같은 해 여성의 사회적 역할 증진과 여성문화 창달에 기여한 공로로 제7회 비추미여성대상 특별상도 수상했다. 2009년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수여하는 제26회 가톨릭대상 특별상에 이어 지난달 외규장각 도서 반환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이 서훈됐다.

뒤늦게나마 수많은 공로를 인정받은 박 박사는 지난 6월 외규장각 도서 반환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아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는 기쁨의 한마디를 전하기도 했다.  다시 돌아가는 길이 고인의 마지막 귀국길일 줄은 아무도 몰랐다.

애도·추모 물결 이어져

박 박사의 타계 소식에 각계에선 애도와 추모 물결에 이어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11월 23일 프랑스 정부로부터 외규장각 의궤의 영구 귀환을 위해 노력한 고 박병선 박사의 유족들에게 조전을 보내 "숭고한 업적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며 애도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조전에서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을 대표하여 박병선 박사님 유족분들께 깊은 애도와 위로를 전한다"며 "가족 모두에게 깊은 위로를 드리며, 고인의 명복을 기원한다"고 위로했다.
또 "박사님은 머나먼 이국땅에서도 한평생 우리 역사와 문화 연구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셨다"며 "외규장각 의궤와 직지심체요절을 발견하시어 찬란한 우리 문화유산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셨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특히 "박사님의 노력으로 외규장각 의궤가 145년만에 고국의 품에 안기게 된 것을 우리 국민 모두 감격스럽게 지켜봤다"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은 우리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박사님의 깊은 애정과 숭고한 업적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밖에도 한범덕 충북 청주시장, 문화체육관광부(최광식 장관), 정병국 한나라당 의원, 손인석 한나라당 중앙청년위원장 등 많은 인사들이 고인에 대한 애도의 뜻을 전했다.

특히 최광식 장관은 "고인이 국가 사회에 현저한 공헌을 한 업적을 기리고자 유족의 뜻을 들어 박병선 박사의 국립묘지 안장을 추진키로 하고 국가보훈처 국립묘지안장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박병선 박사는 먼지 더미 속에서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내고, 직지심체요절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임을 증명했으며, 프랑스 내 한국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등 해외에서 우리 역사와 문화적 진실을 밝혀낸 선구적 사학자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정병국 한나라당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고 박병선 박사에 대해 애도를 표했다. 정 의원(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트위터에 "박병선 박사님! 명복을 빕니다"라며 "남은 연구는 고국에서 하시고 싶으시다더니 결국 이국땅에서 운명을 달리 하셨습니다"라고 애도했다. 이어 정 의원은 "박사님이 저희에게 남기신 뜻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글을 남겼다.

손인석 한나라당 중앙청년위원장도 "직지의 대모 박병선 여사께서 타계하셨다"며 "1972년 세계최초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을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찾아내신 분, 청주시민들에게 길이 기억되실 겁니다"라고 밝혔다.

네티즌의 애도도 이어졌다. 네티즌들은 "부디 영면하시길" "하늘도 슬픈지 비가 내린다" "외규장각의궤 반환에 들이셨던 노력 잊지 않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전했다.

고인은 작년 1월 경기 수원 성빈센트 병원에서 직장암 수술을 받고 요양한 뒤 다시 파리로 가 수술을 받은 뒤 최근 병세가 악화됐고 끝내 우리의 곁을 떠났다. 고인은 “병인양요 속편을 꼭 마무리 지어달라”는 유언을 남기며 마지막까지도 한국사 연구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보여주었다.

 

<프로필>
박병선 (역사학자)
출생-사망 1929년(서울특별시) - 2011년 11월 23일
학력  파리제7대학교대학원 역사학 (박사과정 수료)
수상  2011년 제7회 경암학술상 특별공로상
      2011년 국민훈장 모란장
      2009년 26회 가톨릭대상 특별상
경력  콜레주 드 프랑스 연구원
      ~1980 프랑스 국립도서관 특별보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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