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만 채식 인구...젊은층서 비건 관심도 증가
기업에서 정부 부처까지...비건 맞춤 식자재 제공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 충남 아산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이(27)모 씨는 요즘 채식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가 선택한 채식은 비교적 엄격한 식단의 ‘비건’이다. 채식주의자로 전향할 계획은 없다는 이씨는 가끔씩 비건 식품을 섭취하면서 환경과 윤리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서울 종로구 인근 비건 식당에서 비건 음식이 판매되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서울 종로구 인근 비건 식당에서 비건 음식이 판매되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이씨와 같이 채식의 매력에 푹 빠진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채식비건협회에 따르면 국내 채식 인구는 2008년 15만 명 수준에서 2018년 150만 명으로 약 10년 동안 10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유제품이나 어류 등 특정 동물성 식품 섭취를 허용하는 유연한 채식주의자들까지 합친 규모다.

채식주의는 과일 등 열매만 허용하는 극단적인 채식주의인 ‘프루테리언’에서 평소에는 채식을 하지만 상황에 따라 육류를 허용하는 ‘플렉시테리언’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이들 중 젊은 층을 사로잡은 것은 과일과 채소 등 식물성 식품만 허용하는 ‘비건’이다. 비건은 비교적 엄격한 채식주의자다.

젊은 층들 사이에서 부는 비건 열풍은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신한카드가 홍대와 신촌 등 서울 소재 비건 식당 및 카페 90여 곳 매출을 2014년부터 2019년까지 분석한 결과 8억 원에서 21억 원 5년 새 163%나 늘었다. 20대 여성이 34%로 가장 많다. 이어 30대 여성 18%, 30대 남성 10%, 20대 남성과 40대 여성 8% 순으로 주로 젊은 층이다.

환경오염과 동물권 보호 문제를 배우면서 자란 청년층이 비건 열풍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육식의 종말’의 저자 제러미 리프킨은 목축지나 가축 사료 생산 농지를 위해 숲이 심각하게 파괴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씨는 <뉴스포스트>에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가끔씩 비건 식단을 실천하면서 환경과 동물 문제를 생각한다”고 전했다. 

비건 열풍, 시장이 먼저 움직이다

채식주의자가 증가할 뿐만 아니라 이씨와 같이 간헐적인 비건을 체험하겠다는 젊은 층이 생겨나면서 시장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공장식 축산 등으로 지적을 받았던 패스트푸드점 업계는 식물성 패티를 이용한 비건 버거를 선보였다. 롯데리아는 지난해 두 차례 비건 버거를 출시하며 업계에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유통 업계 관심 역시 뜨겁다. 농심은 비건 식품 브랜드 사업을 본격화하고, 이마트에서는 전국 28개 점포에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코너를 마련했다. 식품 업계 1위 CJ제일제당도 대체육 원천기술 연구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편 비건 열풍은 식품에서 멈추지 않았다. 먹거리뿐만 아니라 실생활에 사용하는 제품까지 비건의 영향이 뻗쳤다. 동물성 원재료를 식물성으로 대체한 제품들을 기업들이 속속 출시하고 있다. 동물성 성분과 동물 실험을 하지 않은 화장품이나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은 의류 등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해 11월 1일 세계 비건의 날을 맞아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광주청소년비거니즘네트워크 등 비건 및 동물권 관련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공동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11월 1일 세계 비건의 날을 맞아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광주청소년비거니즘네트워크 등 비건 및 동물권 관련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공동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 사회, 비건 열풍에 얼마나 준비됐나

비건 열풍이 지속하면서 ‘채식 불모지’로 꼽혔던 한국 사회 역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 6월 서울시교육청는 ‘생태전환교육 중장기 발전계획’을 통해 채식을 원하는 학생들을 위해 ‘채식 선택제’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경상남도교육청과 울산시교육청, 전라북도교육청, 인천시교육청 등이 채식 급식 관련 정책을 추진 중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구의 용량 안에서 생산과 소비를 하면서도 지금보다 나은 삶의 질을 유지하자는 목표를 위해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며 “지난 10년간 이룬 혁신 교육의 성과에 생태적 관점을 강화하는 것이 생태전환교육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보수적인 군부대 내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국방부는 올해부터 채식주의자나 무슬림 등 특정 음식을 먹지 않은 병사들을 위한 급식을 따로 마련해 제공한다. 채식주의자 현황을 파악해 동물성 단백질을 제외한 비건 식단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또한 내달 17일 병역판정 검사에서 장병들의 신상명세서에 ‘식문화 채식주의’라는 항목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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